많이 만들고 많이 버리는 인류, 버리면서 생산하는 역발상
‘소비욕구 자극’ 대신 합리적인 선택 필요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뉴스란에 ‘환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기사가 1천만건 이상 쏟아집니다. 인기 K-POP그룹 BTS(방탄소년단) 이름으로 57만건, ‘대통령’ 키워드로 890만건의 기사가 검색(4월 13일 기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경 문제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기업은 여러 대책을 내놓고, 환경운동가들은 ‘효과가 미흡하다’며 더 많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덜 쓰고 무엇을 덜 버리자는 얘기도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습관과 패턴은 정말 환경적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린포스트’에서는 매주 1회씩 마케팅 키워드와 경제 유행어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소비 시장을 흔들고 SNS를 강타하는 최신 트렌드 이면의 친환경 또는 반환경 이슈를 발굴하고 재점검합니다. 소비 시장에서의 유행이 환경적으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컬럼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버려지는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업사이클’입니다. [편집자 주]

삼성전자가 라이프스타일TV 포장재에 개념을 도입한 ‘에코 패키지’를 출시했다. 포장 박스 각 면에 도트 디자인을 적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잘라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산업 전반에 걸쳐 '업사이클'이 화두다. 삼성전자는 최근 라이프스타일TV 포장재에 개념을 도입한 ‘에코 패키지’를 출시했다. 포장 박스 각 면에 도트 디자인을 적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잘라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지난 4월 15일 남이섬에서 ‘사물 채집’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설치미술가 엄아롱의 업사이클링 작품전이다. 버려진 물건, 쓰임을 다한 물건이 예술 작품으로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시였다.

엄 작가는 어린 시절 재개발 등으로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짐을 꾸려 챙기고 일부는 버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일상적인 것들과 버려지는 것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엄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주춧돌 등을 가지고 뿌리 없는 식물을 표현하는가 하면 버려진 가구와 사다리, 거울 등을 가지고 ‘히말라야’라는 작품도 만들었다. 제주 바다의 부표로 사용된 플라스틱 조각은 소원탑처럼 쌓아 올렸다.

걸그룹 ‘이달의소녀’는 케이웨이브엑스 매거진 디지털 화보를 촬영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녹여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CJ오쇼핑은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ㅈ품을 팔아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했고 청주시립도서관은 찢어진 그림책과 불용 현수막 등을 가지고 ‘업사이클링 갤러리 도서관’을 만들었다.

◇ 많이 만들고 많이 버리는 인류...버리면서 생산하는 역발상

이 세상의 환경문제는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인류가 무언가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인류가 무언가를 너무 많이 버린다는 것. 버려지는 것에 가치를 부여해 다시 쓰는 ‘업사이클’은 이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새로운 가치는 아니다. 리사이클(재활용)이 인류의 주목을 받은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굳이 업사이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업그레이드’와 ‘리사이클’을 더해 버려지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해 새롭게 재사용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서의 가치는 대개 아이디어나 디자인, 또는 기술 등을 의미한다.

업사이클은 미술과 패션, 인테리어 등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며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출발은 버려진 물건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흥미로움을 느끼게 하고 쓰레기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데서 시작했다. 그 후 가방이나 패션, 잡화 등에서 관련 제품이 많이 생산됐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등의 분야에서도 널리 쓰인다.

덴마크 뉘보르시에는 ‘렌다저 아키텍터’사가 만든 재활용집이 있다. 버려진 선적용 컨테이너 박스를 재활용해 기본 골격을 세우고 외관 패널은 열처리를 통해 재활용한 과립 종이로 만들었다. 이 종이는 버려진 신문지에서 나왔다. 내부 자재는 재활용 석고로 만든 건식 벽체, 바닥은 샴페인 코르크 찌꺼기로 만들었다. 화장실 타일은 재활용 유리를 사용했고 건설 현장 등에서 모은 나무 조각이나 판자도 꼼꼼하게 재사용했다.

'2019서울디자인페스티벌' 방문객들이 래코드 부스를 찾아 에코백 업사이클링 워크숍 리테이블에 참가했다. (코오롱FnC 제공) 2019.12.6/그린포스트코리아
업사이클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만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폭넓게 자리잡은 문화 중 하나다. 사진은 '2019서울디자인페스티벌' 방문객들이 래코드 부스를 찾아 에코백 업사이클링 워크숍 리테이블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코오롱FnC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달라진 소비문화, 밀레니얼·Z세대가 윤리소비 이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노력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변화를 이끄는 제품도 있다. 삼성전자는 4월부터 전 세계에 출고되는 라이프스타일 TV ‘더 프레임’과 ‘더 세리프’ 그리고 ‘더 세로’ 를 대상으로 포장재 디자인을 전면 변경했다. 골판지로 구성된 포장 박스 각 면에 도트 디자인을 적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잘라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소비자는 도트를 활용해 가로나 세로 어느 방향으로든 원하는 대로 박스를 잘라 재조립할 수 있다. 여러가지 형태의 DIY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공하고 해당 박스를 활용한 제품을 대상으로 디자인 공모전 등을 개최해 적극적인 업사이클링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포털사이트에 ‘업사이클’ 또는 ‘업사이클링’을 검색해 최근 수개월 내 언론 보도 내용이 있는 기업이나 브랜드만 모아도 쟁쟁하다. 현대자동차, 아모레퍼시픽, 세븐일레븐, 효성, 동서발전, 빙그레, 알렉산더 맥퀸 등의 이름이 검색된다.

개인들도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제제상회’는 남편이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인화지 봉투가 대규모로 버려지는 것을 본 아내가 세웠다. 내구성 좋은 봉투가 버려지는 것을 우려해 가방이나 파우치, 필통 등 생활용품으로 만든다. 이 소식을 들은 또 다른 아날로그 사진관에서도 버려지는 인화지를 제공했다.

명동성당 복합문화공간 래코드에서는 2014년부터 주말마다 업사이클링 소품 만들기 강의가 열렸다. 버려진 카시트 가죽으로 카드지갑이나 여권케이스, 안경케이스를 만드는 수업 등 여러 공방 수업이 이어진다.

업사이클 문화의 확대는 주력 소비세대가 바뀌고 그 세대의 윤리관이 달라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사이클 제품을 실제로 다수 사용한다는 소비자 이모씨(42)는 “디자인이나 유행보다는 환경적인 이유로 업사이클에 관심이 많다”고 밝히면서 “또래 친구보다는 상대적으로 10대나 20대 소비자들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고 업사이클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자녀에게 업사이클 브랜드 ‘프라이탁’ 가방을 사줬다는 소비자 유모씨(52)는 “우리 부모 세대나 과거의 우리들은 소비 키워드가 절약이었지만, 지금은 버려지는 것을 줄이거나 환경적인 인식을 가지고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서용구 경영전문대학원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장에 가치에 중점을 두며 글로벌 브랜드나 유명브랜드를 선호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친환경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윤리적인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와 더불어 “소비 주축이 밀레니얼 세대로 넘어가면서 업사이클링과 같은 윤리 가치가 트렌드의 중심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 버려지는 것에 주목...‘소비욕구 자극’ 대신 합리적인 선택 필요

업사이클이 산업 전반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인식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업사이클 자체의 취지는 좋으나 그것이 디자인적인 유행 등으로 인식되어 또 다른 중복소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 사람이 직접 착용하는 제품 등의 경우에는 소재 등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가방을 예로 들어보자. 필명 주오일 여행자의 저서 <부칠 짐은 없습니다>에 업사이클 관련 일화가 나온다. 저자는 물건 대신 여행 자체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배낭 가득 채운 짐을 버리고 작은 가방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 세계여행을 한다. 저자는 프라이탁 가방에 작은 짐들을 모두 넣었다.

프라이탁은 스위스 그래픽 디자이너 두 명이 만든 브랜드로 트럭 방수포를 업사이클링해서 만든다. 두껍고 질긴 방수포 재질이라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내구성도 튼튼하다. 재활용 천을 활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저자는 이 저서에서 “가방을 사면서 고민했다”고 썼다. 최소한의 짐으로 여행을 하겠다면서, 새로 가방을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와 일행은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데 괜한 소비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다만 저자는 가방이 만들어진 과정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꼭 필요한 물건인지 꼼꼼히 고민하고 구입했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물론 책에 소개된 사례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어느 지점에서 고민했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했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썼다. 저자는 이 일화를 ‘미니멀리즘’에 대한 고민으로 소개했는데, ‘업사이클’ 관점에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이 내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버려지는 물건을 재사용하는 것은 훌륭한데, 만일 환경적인 이유가 아닌 소유욕이나 디자인적인 만족감 등으로만 소비를 결정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환경소비’와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점이다.

한국동서발전 직원이 본사 로비에 설치된 업사이클링 부스에 폐플라스틱을 넣고 있다. (한국동서발전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동서발전 직원이 본사 로비에 설치된 업사이클링 부스에 폐플라스틱을 넣고 있다. (한국동서발전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폐현수막으로 다용도 주머니 만든 부산시...“시민 위해 안전 검증”

업사이클은 여러 가지 물건 또는 소재를 가지고 이뤄진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용되는 소재에 대한 유해성 여부에 관심을 두는 의견도 있다. 특히 최근 총선 이후 현수막 등의 재활용이 늘었는데 일각에서는 안전성 여부 등을 꼼꼼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부분에서 눈여겨 볼 사례가 있다. 최근 부산시가 폐현수막으로 다용도 주머니를 만들어 부산진구와 연제구 초등학교 신입생에게 배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부산시는 폐현수막으로 만든 주머니가 안전하다고 밝혔다. 당시 부산시는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폐현수막 성분 시험을 의뢰한 결과 일반적인 세척만으로도 유해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안전성은 검증됐다”고 밝혔다.

부산시에 따르면 폐현수막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수선, 세척을 통해 다른 용도로 재사용할 경우 별도의 성분 분석·확인이 불필요하다. 바로 가봉하거나 재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부산시는 관내 어린이들이 직접 사용하는 물건임을 감안해 성분 시험을 의뢰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일반적인 세척이라는 것은 흔히 사용하는 세제를 가지고 세탁기에 돌린 경우 등을 포함한다”고 말하면서, “당시 집에서 직접 세제만 넣고 현수막을 세탁해 시험을 의뢰해서 나온 결과값”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시는 폐현수막 재활용 체계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는 부산진구, 연제구를 대상으로 학부모 단체와 긴밀히 소통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2021년부터는 부산시 전역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 에너지·자원 업계에서도 숙제...순환경제 키워드 될까

업사이클은 소비재뿐만 아니라 에너지나 자원 분야에서도 관심이 높다. 실제로 산업교육연구소는 지난 24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2020년 리사이클링&업사이클링 미래 신산업 전략과 사업화 방향 세미나’를

세미나에서 김택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재활용이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상 투입해야 하는 물질을 줄여야 하고 투입된 물질도 소재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관련 수요·공급 회사들이 집적된다면 산업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며 이를 위해 희토류가 포함된 제품을 간단한 장비로 확인할 수 있는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앞으로 늘어날 전기차 폐배터리를 미래 폐자원으로 인식하고 관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다. ‘EU에서는 제품에 일정이상 재생원료 사용의무율을 높이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나라도 폐배터리에서 확보한 유가금속 재생 원료를 재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타이타늄 스크랩 재활용 등과 관련해서 ‘재활용 시장이 점점 대형화·국제화되고 있어 관련 기술과 산업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속 가능한 재활용 산업을 위해서는 순환경제가 가능한 기업 생태계 구축과 함께 폐자원을 폐기물이 아닌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인류가 지구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자원과 물 등을 많이 사용하면서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그만큼 많이 버리기 때문이다. 업사이클이 디자인적인 ‘힙’함이나 트렌디한 소비유행이 아닌 ‘적게 쓰고 적게 버리는 움직임’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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