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이제 입지 않는다고 한다. 구찌, 샤넬, 프라다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동물의 털로 만드는 모피 의류 이야기다. 동물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와 더불어 동물 복지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이다. 

살아있는 동물의 몸에서 가죽을 벗겨내는 끔찍한 영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피 코트를 벗게하기에 충분했다. 산 채로 가죽이 뜯겨나가는 극한의 고통에 동물들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진짜 동물 모피를 삼가는 문화가 퍼지면서 떠오른 대안이 ‘에코 퍼’, ‘페이크 퍼’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인조모피다. 국내에서도 스튜디오 톰보이, 신세계인터내셔날, 삼성물산패션 등 여러 패션업체 등이 인조모피를 활용해서 만든 패션아이템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거나, 동물을 학대해서 만든 재화의 사용을 거부하는 신념이라 할 수 있는 비거니즘(Veganism)의 일환으로 비건 패션이 떠오른 것도 인조모피 붐이 이는 데 일조했다. 비거니즘을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다소 좁은 의미가 아니라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노력한다’라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인조모피와 비거니즘이 지향하는 방향이 어긋나는 지점이 나타난다. 

인조모피를 만드는 소재 때문이다. 인조모피 제작에는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소재가 주로 쓰인다. 이런 소재로 만들어진 인조모피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 영국 엑시터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해안에서 발견된 돌고래, 바다표범 등 해양 포유류 50마리 몸속에는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84%는 옷, 어망, 칫솔 등에서 나온 합성섬유였다.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물건이 으레 그렇듯이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인조모피도 만큼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하수도 정화처리 과정에서 미세섬유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실림 보고서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조모피로 만든 옷이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윤리적 패션은 맞지만, 합성섬유를 주요 소재로 쓰는 탓에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를 피해가기 힘든 모양새다. 동물을 위하면서,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진짜 동물모피가 아닌 인조모피로 제작된 옷을 산 자신을 바라보며 동물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라는 위안을 얻을 게 아니라, 또 하나의 그 옷이 정말 필요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의 답은 식상하다. 될 수 있으면 옷을 사지 않거나 조금만 사고, 내구성이 뛰어난 옷을 사서 잘 관리하며 오랫동안 입는 것이다. 동물에 해를 끼칠 가능성 자체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물과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 동물과 지구를 보호하는 패션의 방점은 소재보다 우리의 행동에 그 방점이 찍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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