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경택 경제연구원
이경택 경제연구원

2020년 코로나19가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시점에 1997년 IMF 사태를 그린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상황이 다를 뿐 1997년, 2020년 모두 ‘국가 위기’상태다. 위와 같은 상황을 놓고 1997년과 2020년의 국민들의 심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두 위기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 본인이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자살’ 앞에 놓여 있는 국민들의 안위 문제다.

자, 1997년과 2020년 국가위기 상황을 비교해 보자.

바야흐로 1997년 뉴스는 “대한민국이 부도가 났다”고 연일 떠들어댔다. 이에 아버지들은 공원이나 마포대교로, 엄마들은 파출부로, 딸들은 술집으로, 아들들은 군대로 가면서 경제위기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한국경제가 다 막히면서, 무려 42%라는 자살율을 기록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국가라는 빨간 딱지까지 얻게 된다.

20여 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국의 경제 상황이 all stop됐다.

아직 2020년 자료가 없어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자살율은 이미 1997년부터 유의미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코로나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최악의 단계까지 올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뇌리를 스친다.

왜 자살을 선택할까? 본인은 그 이유를 감히, 관계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을 만든 ‘한국문화’라고 답을 내려본다.

한국은 전쟁, 경제위기, 각종 바이러스 등 어렵고 심오한 고비를 여러 차례 겪어 왔다. 그에 살아남고 이기려면 타인의 눈치를 보며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타인에 의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기대지도 못하는 반 강제적 모순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것.

과연 이 안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아니, 더 나아가 ‘행복’의 정의를 아는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매스컴과 각종 종교인들을 통해 많이 접하고 있지만 정작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를 모르는 사람이 90% 이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복함에 대한 기준이 없기에 사회, 국가, 스스로가 어떠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쉽게 삶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행복함에 대한, 즉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감정의 기준이 정확히 서있다면 각종 위기에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범국가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원래 요리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때 요리를 하는 행복을 찾을 수 있겠고,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거리를 찾는 등.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이 위기를 지나가기 위해 내 기준을 찾는 것이 곧 행복을 찾는 첫걸음 일 수 있겠다.

이처럼 우리 삶에 '행복'은 중요한 원동력이다. 사실 행복함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습득했다면 1997년, 2020년의 경제위기에도 견고하게 잘 버틸 수 있다. 행복은 곧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현재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비대면을 촉진하고 국민 고립시키고 있다. 산업이 멈췄고, 소비는 절반 이상 끊겼으며 공급과 수요 모두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본인은 곧 들이닥칠 ‘집단패닉’에 대한 경고를 사회적으로 날려본다. 문을 열고 나가 타인과 비교를 하고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하는 국민들이 바이러스로 어떤 공간 안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는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스스로라는 존재 앞에 헐 벗고 서있게 된 것.

결국 인간은 정신적인 고통에 직면하게 되며 물질을 중요시 여겼던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정신’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얻게 된다. 고립된 공간 안에서 인간은 ‘아, 우울하다’, ‘슬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 하는가’ 등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게 안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면 패닉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오롯이 스스로에게 기댈 수 있게 행복과 존재의 기쁨에 대해 알아야 하고, 생명체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추상적일 수 있다. 먼미래고 이상향이다, 아니면 심오하고 종교인들이나 할법한 얘기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위기를 놓고 봤을 때 결코 이른 것이 아니다. 늦었다. 고립되어 자살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찾는 법이 키포인트다.

나는 돈과 경쟁, 타인과의 비교와 역경을 겪으려고 그 어려운 ‘탄생’을 하지 않았다.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는 일을 해보자. 단순히 영감에 대한 말이 아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 나의 소리를 듣는 방법, 책, 노래, 운동, 명상 무엇이든 기준이 ‘나’면 된다.

국가의 위기는 계속해서 반복할 것이다.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할 수 있게 만드는 의미는 국가와 사회가 찾아 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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