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자마자 쓰레기통 직행하는 선거공보물
불필요한 종이 낭비? 공정 선거 위해 꼭 필요한 장치?
자원순환사회연대 "공보물과 현수막 너무 많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어제 집으로 우편물이 왔다. 의아했다. 기자는 직업상 이유로 주간신문과 잡지 몇개를 정기구독하는데 그것 외에는 우편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고지서를 모바일로 받고 요즘은 편지를 주고 받는 시대도 아니어서 우편함에 무언가 들어 있는 날은 많지 않다.

배송된 것은 두툼한 서류 봉투다. 최근 받은 우편물 중에서는 가장 두꺼워보였다. 겉면에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안내문·선거공보’라고 적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 선거가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기자가 사는 곳은 여당과 제1야당에서 이른바 ‘격전지’로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승리를 서울지역 승패의 바로미터로 삼겠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지난번 선거에서도, 그리고 최근에도 이곳에서는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 바 있다. 봉투를 열어보니 총천연색 공보물들이 쏟아졌다. 세어보니 56매에 달했다.

기자와 가족들은 이미 누구에게 투표할지 마음을 정했다. 해당 후보자와 경쟁 후보자의 주요 공약과 발언, 과거 이력들도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공보물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았다. 다만, 이름이 낯선 한 후보자가 국민 1인당 1억원씩 주겠다고 공약한 내용을 보고 듣도 보도 못한 지원 규모에 웃음이 나왔다. 나머지는 그냥 스윽 한번 훑어본 것이 전부다.

기자는 선거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공약을 보지 않고 ‘묻지마 투표’를 하는 일방적인 지지자도 아니다. 평소 정치 관련 뉴스를 꾸준히 보아 왔고 후보자들의 공약과 발언을 인터넷과 모바일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이미 충분히 봤을 뿐이다. 그래서 배달된 공보물은 고스란히 재활용 수거함으로 갔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공보물을 꼼꼼하게 읽어볼까? 종이와 책자 형태로 배송되는 선거 공보물은 요즘 시대에 효과적일까?

뉴스 사이트를 검색해봤다. <선거공보물 받자마자 쓰레기통 직행>이라는 기사가 2018년 경인일보에 실렸다. 비슷한 시기에 <쓰레기로 전락한 선거공보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서울신문에도 게재됐다. 이 밖에도 ‘선거공보물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면서 자원과 혈세가 낭비된다’는 내용의 기사, ‘선거 후 남은 현수막이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기사가 재작년에도, 그리고 3년 전에도 있었다.

‘버려지는 선거 공보물이 수천톤이며 재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있었고, ‘뜯지도 않은 선거공보물이 재활용센터로 팔려나간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 내용의 기사들은 시기를 가리지 않았다. 10년 전 5월 연합뉴스 기사에 ‘아무개씨는 선거공보물을 펼쳐보지도 않고 재활용 수거함에 넣어 버렸다’는 구절이 있었고, <받자마자 쓰레기로 전락한 선거 공보물>이라는 제목의 충북일보 기사는 불과 하루 전 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본지 역시 <다가온 총선, '선거철 쓰레기' 대책없는 환경부와 선관위> 제하의 기사를 3월 18일에 송고한 바 있다.

◇ 자원순환사회연대, “종이 공보물과 플랜카드 문제...선관위 바뀌어야”

기자들만의 문제제기가 아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도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이사장은 “인쇄매체 홍보물을 가가호호 발송하는 것은 비용이나 환경 측면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종이 공보물과 플랜카드 사용 등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선관위가 꼼꼼히 따져보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받은 책자형 공보물 중 하나는 6매로 총 12페이지 분량이다. A4보다 다소 작은 사이즈로 중철 처리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책처럼 제본한 것이 아니라 두께가 얇아 인쇄물 가운데를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것을 말한다. 재활용을 위해서는 스테이플러 심을 모두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까?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기자 집 1층 재활용품 수거함에는 깨끗한 공보물들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김미화 이사장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재사용을 위해서는 종이를 물에 불린 다음 갈아서 처리하는 과정이 있는데, 스테이플러 심이나 이물질이 섞여 있으면 기계에 걸리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형형색색 컬러풀한 디자인도 문제다. 공보물은 각 정당이 내세우는 색깔을 사용하거나 후보자의 밝은 이미지 등을 강조하기 위해 색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김 이사장은 “인쇄물에 컬러가 많으면 처리 과정에서 색을 모두 빼기 위해 화학물질 등을 투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오염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인쇄 공보물을 무작정 없앨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IT기기로 빠르게 넘겨보는 대신 인쇄물을 꼼꼼히 읽어보기를 원하는 유권자도 많다. 군소정당이거나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후보자, 선거운동에 투입할 조직이나 자본력이 부족한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공보물 등에 주력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공보물을 만들어 찍어내고 배송하는 과정에 대부분 국민 세금이 투입 된다는 점, 인쇄매체의 기능을 대신할 플랫폼이 사회적으로 크게 늘었다는 점, 종이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사회적인 숙제 중 하나라는 점을 두루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신요금이나 공과금 고지서 등을 희망자들의 경우 이메일로 수신하는 것처럼, 공보물 물량 일부를 디지털로 대신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없던 대안이 지금은 가능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4년에 한번씩, 그리고 5년에 한번씩 치르는 주요 선거를 조금 더 환경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치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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