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와 차가 뒤석이기 쉬운 학교 근처 도로들
“불법주차 등 현실적인 문제 해결해야” 목소리도

 
'민식이법'이 본격 시행됐다. 쿨존 내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운전자들만 너무 많은 짐을 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그래픽=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민식이법'이 본격 시행됐다. 쿨존 내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운전자들만 너무 많은 짐을 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그래픽=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민식이법이 본격 시행됐다.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운전자들만 너무 많은 짐을 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이달 25일부터 시행된 이른바 ‘민식이법’은 크게 두가지 내용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단속카메라나 과속방지턱, 신호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개정한 ‘도로교통법’, 그리고 어린이 보호구역 안에서의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관련 규정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다.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낸 경우에 적용되는데, 어린이가 사망하면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상해를 입힌 경우 500만원~3천만원의 벌금이나 1년 이상(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특가법 개정안에 따르면 사망사고시 처벌수위가 2018년 시행된 이른바 ‘윤창호법(음주운전 특가법 개정안)과 같다. 음주운전 사고와 스쿨존 사고의 처벌 수위가 다르지 않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형평성 논란을 지적한다.

논란이 큰 부분은 운전자 과실에 대한 기준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제1항의 죄를 범한 경우’라고 명시되어 있다. 스쿨존 내 규정속도 (시속 30Km미만) 준수는 물론이고 전방주시나 사고 가능성 예측 등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 일부 운전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기만 하면 운전자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우려한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을 준수할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민식이법은 이제 시행 6일차로 아직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한 판례가 없다. 교통사고의 경우 각 사건마다 도로 사정이나 상황 등이 모두 달라 어떤 상황에서 무슨 결론이 내려질지를 명확하게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처벌수위 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보행자 보호 취지는 공감, 불법주정차 등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운전자들은 어떤 반응일까.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에 거주하는 운전자 이모씨(43)는 “어린이를 보호하며 안전운전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운전자 처벌만 너무 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스쿨존에서의 돌발상황이 운전자의 주의만으로는 완벽히 통제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초등학교와 맞닿은 주택가 도로들은 편도 2차선 정도로 좁고 일방통행 위주로 도로가 설계된 경우가 많아 매우 복잡하다. 게다가 학교 근처 점포에 물건을 배송하는 차량이나 주택가를 방문한 차량들이 불법 주정차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이 차 사이로 갑자기 뛰어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가 많으니까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건 당연한 얘기지만,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불법주차된 차량 사이로 아이들이 갑자기 나오면 운전자가 서행을 하더라도 사고가 날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운전자가 규정을 지켜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는데도 불의의 사고가 생겨 결과적으로는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교통사고 관련 법률가로 유명한 한문철 변호사도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본인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내가 잘못한 만큼 처벌받는 것이 원칙인데 과하게 처벌한다”는 이유를 들어 “민식이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다른 법은 내가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 되지만 이것은 그럴 수 없다”면서 “처벌이라는 것은 운전자가 얼마나 잘못했고 피해자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주차된 차 때문에 운전자와 어린이 보행자 모두가 서로를 못 봤다면 불법주차 차주도 해당 사고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학교앞 도로 풍경, 보행자와 차가 뒤석일 수박에 없는 곳

기자가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앞 도로를 직접 운전해봤다. 개학이 미뤄져 아이들이 거의 없었지만 드문드문 불법주정차된 차들이 보였다. 학교 교문을 중심으로 건너편은 마트와 상점, 안쪽은 주택가 골목이었다. 마트에 물건을 배송하는 차와 오토바이가 멈춰있었고 주택가 방향으로는 택배 차량이 진입했다. 마트와 상점들 사이에는 아이들이 자주 이용할만한 분식집, 그리고 카페 등이 자라잡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은 평소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정문 앞에서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통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도한다. 교문 앞 보행로에는 펜스도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맞은편 상점가나 주택가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늘 있다고 했다.

물론 아이들은 어디서든 뛴다. ‘차 조심 하라’는 말을 아무리 반복해도 관련 경험이 적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은 운전자 입장에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문제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불법주정차된 상태로 운전자와 아이들의 시야를 모두 가리는 차다. 개학 후 등하교 시간에는 불법주정차를 단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이 근처 주택가에 차를 불법주차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이 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살았다는 운전자 안모씨(43)는 “안전운전 관련 규정을 강화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스쿨존 내 불법주차를 엄하게 다스리는 법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씨는 “차와 보행자가 뒤섞일 수 밖에 없는 곳인 만큼 운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안전에 관해 인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등하교길 보행로 확보, 주차문제 해결, 어린이 안전의식 교육 필요

스쿨존 불법주청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시행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홍보처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에서 관련 내용을 준비하고 있으며 불법주정차 차량에 대한 시민제보를 확대하고, 스쿨존 내 불법주정차 과태료를 현재 일반도로 대비 2배에서 향후 3배로 상향하는 법안을 개정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 24일 “학교·유치원 등 주출입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에 있는 불법 노상주차장 281개소를 모두 폐지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오는 2022년까지 학교 내에 보행로가 없어 등하굣길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된 4,368개 학교를 대상으로 보행로 확보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부모와 어린이들 역시 보행자로서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한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배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린이들에게도 도로에는 차가 다닌다는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교안전 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학로 등 학교 주변 위험 요소들을 직접 찾아 지도에 표시하고 공유하는 체험 중심 프로젝트(안전맵핑)를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추진한다”고 밝혔다.

민식이법 처벌 수위 등에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의 복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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