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의 혁신이 430년전 영국의 편물기계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사진 Nottingham hidden history team 홈페이지 캡처)
(사진 Nottingham hidden history team 홈페이지 캡처)

 

손 뜨개질의 수고 덜어줄 편물기계를 만들었건만

손으로 하는 뜨개질을 기계화 해서 ‘양말 짜는 기계’, 즉 편물기계를 세계 최초로 만든 사람은 잉글랜드의 윌리엄 리(William Lee)다. 16세기 끝무렵인 1589년에 그가 편물기계를 고안해 세상에 내놓게 된 계기는 당시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1583년에 공표한 칙령이었다. “모든 백성이 늘 뜨개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 이 칙령에 따라 집집마다 여성 가족구성원들은 뜨개질을 하느라 침침한 등잔불 아래에서 밤을 지새우기 다반사였다. 어머니와 누이들이 뜨개모자를 만드느라 몇 날 며칠 동안 바늘 놀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는 어떻게 하면 이들의 고생을 덜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편물기계를 생각하게 된다. “바늘 두 개와 실 한 가닥으로 옷을 지을 수 있다면 여러 개의 바늘을 동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초 사제가 되려던 길을 포기하고 뜨개질하는 기계 생산에 전념한 리는 6년만에 편물기계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리는 이 편물기계를 들고 런던으로 가서 어렵사리 엘리자베스1세를 알현하게 된다. 리의 목적은 이 기계가 얼마나 유용한지 여왕에게 직접 시연해 보이고 특허권을 따낼 요량이었다. 설렘과 자부심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올랐던 리는 그러나 여왕의 반응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엘리자베스1세는 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리 명장의 의도는 높이 사겠소. 허나 그대의 발명품이 나의 가엾은 백성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해 보시오. 이런 기계를 만들면 백성이 일거리를 모두 빼앗기고 거지가 될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소.” 크게 낙담한 리는 이 편물기계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참조 및 인용)

이재웅의 타다가 혁신인 이유는

쏘카의 이재웅대표(이하 이재웅)는 ‘이동의 기본’에 충실한 서비스를 통해 모빌리티 시장의 혁신을 꾀했다. 일반인들이 택시를 이용하면서 경험한 불편 또는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혁신의 방법이라고 했다. 윌리엄 리는 누이와 어머니의 고생을 덜기 위해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는 방식으로 혁신을 이뤘고, 이재웅은 기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혁신의 출발점을 삼았다. 윌리엄 리가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세상을 바꿨다면 이재웅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변화의 시작으로 제시했다.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문제해결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여기서 무엇이 더 혁신적이고 어느 것이 덜 혁신적이냐는 물음은 우문(愚問)에 지나지 않는다. 이재웅의 방식을 혁신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똑같은 우문일 뿐이다. 기존의 서비스(택시)에서 이용객들이 보편적으로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기존 시장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고, 이를 해소하는 해결책을 내놓았다면 그것은 혁신이다. 윌리엄 리의 누이와 어머니가 손뜨개질로 모자를 짜는데 엄청나게 고생을 한 것은 당시 잉글랜드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였고, 편물기계는 그것의 해결책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재웅의 타다에 대해 기본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혁신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거꾸로 기존 모빌리티가 그만큼 기본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었으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힘을 잃는다. 타다가 혁신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들은 편안, 안전, 정직 등이다. 승차 거부 없는 쾌적한 차를 타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 그것이 이재웅의 타다가 표방한 혁신이다. 그러나 이재웅은 얼마전 ‘타다금지법’의 국회통과로 혁신에 실패했다. 앞서 법원에서는 이재웅의 손을 들어줬으나, 입법부인 국회는 사법부의 그런 판단을 여지 없이 뭉갰다. 이재웅 자신의 표현대로, 어쨌든 그는 졌다.

 

(사진. 타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사진. 타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공유경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잃다

이재웅의 타다서비스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추구했던 혁신의 목적지가 단지 이동의 기본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타다를 두고 “운전사가 쓸데 없이 말을 걸어오지 않아서 좋았다”거나 “깨끗한 실내에 안전한 운행이라 확실히 달랐다”는 시각 따위는 그야말로 택시의 대안으로써 타다를 바라보는 낮은 층위의 접근방식이다. 이동의 기준 제시는 시장진입의 교두보일 뿐이며, 공유경제 논란의 관문을 통과하면, 자율주행시대에 혁신적인 모빌리티 비즈니스 전개가 타다서비스의 최종 목표이자 본질로 봐야 한다.

자율주행차(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기존의 택시는 우버나 리프트 같은 카셰어링(car sharing)으로 급격하게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운전자가 따로 필요치 않은 자율주행차 비즈니스가 사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이용객에 대한 빅데이터를 얼마나 축적했느냐가 관건이다. 누가, 언제, 어느 경로로 이동했는지 수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이용객들에 따른 ‘맞춤형 배차’가 가능해진다. 즉 운영자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인 자율주행차를 효율적으로 배차해야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이용객들의 이용행태에 대한 데이터가 무조건 많아야 한다. 타다서비스는 그 데이터의 수집 창구인 것이다.

하지만 이 교두보가 부서지면서 공유경제 논란도 맥 없이 빛을 바랬고 모빌리티 혁신의 꿈은 춘몽이 됐다. 사실, 타다서비스를 계기로 우리는 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 공유경제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잡았었다. 타다서비스가 혁신적인 공유경제의 모델인지, 단순히 택시사업을 공유경제로 포장한 사기에 불과한지는 초점이 아니다. 공유경제로 이행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경제 사회적으로 반드시 규정하고 합의해야 할 쟁점을 추출할 완벽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타다서비스의 실패는 아쉬움이 크다. 

환경의 측면에서 공유경제는 반드시 가야할 경제시스템 

공유경제는 2008년 하버드대 로스쿨의 로렌스 레식 교수가 구체화한 개념이다. 한 마디로,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 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방식’을 뜻한다. 이는 상업경제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상업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 즉 과잉생산 과잉소비로 인한 자원의 낭비, 환경오염 같은 부작용을 공유경제가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듯 환경의 시각에서 공유경제는 우리 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도달해야 할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자동차 공유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글로벌 연구기관의 분석을 보면 카셰어링 업체가 운영하는 차량 한 대는 개인들이 소유한 차량 20개가 도로로 나오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는 물과 자원, 공구 등 자연자원을 보전하는데 이바지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 해 절약하는 물의 양이 유럽에서만 올림픽 규격 수영장 1100개 규모라는 연구도 있다.

특히 자율주행차 셰어링 시대가 도래하면 이용객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운전자 인건비가 없는 만큼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굳이 이동의 편의를 위해 차량을 소유할 필요성은 그만큼 적어지게 된다. 짧은 거리를 움직일 때는 공유형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이용하면 훨씬 편하게 주차의 스트레스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자동차 소유는 줄고 그에 따라 대기환경은 나아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나 카셰어링의 예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유경제의 핵심은 ICT플랫폼이 거래를 중개하는 경제시스템이다. 제4차산업혁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의 하나로 꼽히는 것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한대로 영역이 넓어지고 경제적 효율성도 증대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창조적 파괴를 두려하는 것은 백성이 가여워서가 아니다

엘리자베스1세에게서 퇴짜를 맞은 윌리엄 리는 편물기계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 갔으나 역시 똑같은 이유로 특허 등록에 실패한다.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윌리엄 리는 엘리자베스1세의 후계자인 제임스1세에게 특허를 부탁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거부당했다. 두 군주 모두 양말생산의 기계화는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리라 우려했던 것이다. 새로운 기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늘어나면 이는 정치불안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왕실의 권력마저 위협할 것으로 걱정한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등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두 저자는 정치권력이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혁신에 제동이 걸린다고 말한다. 기술혁신은 인류사회에 번영을 가져다 주지만, 혁신으로 촉발되는 창조적 파괴과정은 옛 기술을 사용해 일하는 이들의 생계를 불가피하게 위협하기 때문에 쉽게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양말짜는 틀 편물기계처럼 중대한 혁신은 정치권력의 판도마저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1세와 제임스1세가 특허를 거부한 것은 사실 일자리를 잃게 될 백성이 가여워서가 아니라 정치적 패자로 전락할 것이 두려웠던 것 뿐이다.”

결론적으로 창조적 파괴과정에서 잃을게 많은 세력은 혁신을 도입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혁신에 저항하고 막아보려 애쓰기 일쑤라는 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타다의 경우, 타다금지법을 발의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있었고 타다금지법의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한 국토교통부 최고위 관료들이 있었다. 이 법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등이 앞장섰고,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수장은 김현미장관이다. 그렇다면 번번이 혁신이 좌초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는 물론 답이 나와 있다. "사회에 가장 급진적인 혁신을 도입해줄 새로운 주역이 필요하다"고. 

타다는 조만간 멈춰선다. 타다가 타다 만 것은 ‘이동의 더 좋은 경험’일 수도 있고‘새로운 가치’일지도 모른다. 모빌리티 혁신은 이재웅의 개인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전동 킥보드와 따릉이를 애용하는 밀레니얼이 가고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다의 실패사례가 모빌리티 혁신을 오히려 앞당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걸핏하면 혁신성장을 구두선(口頭禪) 삼으면서도 각종 규제로 혁신안을 좌초시키는 기득권세력 또는 정치권력의 모진 방해를 뚫고, 마침내.

사족. 총선이 보름 여 남았다. 누가 창조적 파괴를 가장 두려워하고 이를 막았는지, 막고 있는지 잘 가려내야 한다. 430년전 윌리엄 리의 실패가 2020년 이재웅의 실패로 재현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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