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없는 계산대・밤에는 무인 점포
연령대 높아질수록 정보화 수준 떨어져
손주 같은 학생들이 가르쳐주는 디지털 

서울 건국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CU 바이셀프 100호점 (김형수 기자)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건국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CU 바이셀프 100호점 (김형수 기자)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알바생’이라는 말이 꽤나 익숙한 장소로 꼽히는 편의점이지만 조금씩 ‘알바생’도 그 ‘알바생’을 고용한 점주님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무인 계산대가 들어서고 무인화 기술이 적용되면서 직원이 필요하지 않은 편의점 점포가 속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면받은 편의점 무인 계산대

23일 오후에 방문한 건국대 경영관의 CU 매장은 입구부터 여느 CU 점포와는 달랐다. 이곳은 지난달 문을 연 바이셀프 100호점이다. 매장 입구 옆에는 계산대가 아닌데 카드를 삽입하거나 터치하는 기기가 설치돼 있었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이 매장이 무인 점포로 운영될 동안 이곳에서 물건을 사려면 신용카드, CU 앱, 카카오페이 등으로 인증한 뒤 들어가야하기 때문이다. 

매장 내부 곳곳에는 야간에 편의점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POS 모니터에는 셀프계산대라는 글씨가 적힌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셀프 계산대라는 이름이 붙은 기기도 설치돼 있었다. 해당 CU 매장 점주는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밤에는 무인편의점 방식으로 운영해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둘러보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을 찾은 유일한 손님이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은 유유히 물건을 구매해 사라졌다. 젊은 고객의 비중이 높은 대학가가 아닌 곳에 자리한 편의점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같은 날 서울 명동의 한 오피스 빌딩 안에 위치한 이마트24에 들어가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 두명이 바구니를 집어들고 과자 매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과자와 음료수로 가득찬 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바로 옆에 무인 계산 기기가 있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년 남성들이 다가오자 점원도 자연스럽게 계산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의 행동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손님이 무인계산대로 향하는 것을 보고도 손에 잡은 걸레를 놓지 않은 몇 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중년 남성 두 명은 “영수증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점원의 질문에 “아니요”라는 짧은 대답을 남기가 편의점을 떠났다.      

◇벌어진 연령별 정보이용 격차, 떨어진 삶의 만족도

편의점 무인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거나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데 애를 먹는 중장년층의 모습은 별로 낯설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정보화 수준을 100이라고 봤을 때 55세 이상 장노년층의 정보화 수준은 63.1%에 그쳤다.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살펴보면 20대(126.5%), 30대(121.7%), 40대(108.7%)는 100을 웃돌았지만 50대(92.8%), 60대(69.6%), 70대 이상(42.4%) 등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수치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나온 연령병 디지털정보화 수준 (최진모 기자)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나온 연령병 디지털정보화 수준 (최진모 기자)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디지털 정보 격차는 중장년층의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 2018년 ‘한국공공관리학회보’에 실린 논문 ‘노년층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심리적 안녕감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집필한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유재원 교수 연구진은 “고도화된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함께 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 더욱 복잡화 및 전문화되면서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성 방식에 적극하지 못한 노인층의 소외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디지털 리터러시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을 수록 자존감은 높아지고 우울감, 불안감, 고독감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재원 교수 연구진은 “노년층의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을 높이면 그들의 심리적 안녕감과 삶의 만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개연성이 있음을 암시한다”면서 “노인층의 정보격차와 사회적 소외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강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나이든 사람들을 위한 디지털 정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세미나 ‘키오스크 세상과 디지털 소외’에서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키오스와 같은 디지털 기술이 장애인, 고령자와 같은 어떤 사용자들에게는 벽을 만들고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포용사회를 이루기 위해 디지털 기술 사용은 동등한 기회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의원도 “최근에는 무인 단말기 키오스크의 사용 증가로 웹과 모바일 기기 외에 새로운 정보접근성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라면서 “누구나 정보 접근에 차별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보접근성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격차 좁히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정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정부도 움직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하 NIA)는 지난해 11월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55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어르신, 디지털에 반하다’라는 디지털 포용 시범사업을 운영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은평학습장에서 ‘디지털 시민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홈페이지 캡처)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자유시민대학 은평학습장에서 ‘디지털 시민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홈페이지 캡처) 2020.3.26/그린포스트코리아

시범사업에는 과기정통부와 NIA를 중심으로 한국철도공사 대구본부, 금융감독원, 사회보장정보원,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SKT 등이 참여했다. 어르신들의 디지털 소외 문제 해결을 위해 민과 관이 손을 잡은 셈이다. 두달 코스로 이뤄진 해당 교육 프로그램은 키오스크 활용법, 코레일톡 앱을 이용한 기차표 예매 방법, 인공지능 스피커 활용법, 금융앱 이용방법 등 실생활 위주의 수업으로 이뤄졌다.

NIA는 작년 12월 말로 끝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수료생 만족도 등을 분석하며 향후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장유영 NIA 선임은 “대구에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수료생들의 만족도가 좋았다”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해 운영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시민자유대학은 은평학습장에서 ‘디지털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장노년층의 디지털 소외에 따라 발생하는 세대 간 갈등 심화를 해소하고, 장노년층들이 디지털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방법은 물론 4차산업혁명, 디지털 윤리, 개인정보보호 같은 내용을 알려주며 장노년층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750여명에 달하는 수강생의 48.98%는 60대, 24.69%는 70대가 차지할 정도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올해 7월~10월경 시작될 ‘디지털 시민교육’에는 키오스크 실습,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 활용 강좌 등이 추가되고, 좀 더 수준별로 세분화된 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 만으로는 젊은층과 장노년층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정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포용본부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나온 '50+리포트 2019’에서 “정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고령층 ICT 사회참여활동 사업’ 등 정부의 지원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면서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젊은 학생들이 디지털 이주민인 50세 이상 세대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쳐 드리는 교육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ICT를 매개로 젊은층과 고령층간의 소통이 멀어지는 것이 아닌, 가까워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정현 연구원은 “다른 연령대를 이해하고 소통함으로써 이 시대 중요한 사회문제인 세대 갈등과 연령차별주의를 완화하고 세대간 소통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또 고정현 연구원은 “이런 디지털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교육 봉사활동에 참가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인들의 특성, 취약점, 화법 등에 대한 소양교육을 사전에 실시하고, 노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와 학교 선생님들이 참여해 프로그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lias@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