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제품 자주 구매시 오히려 환경 악영향 미치는 아이러니
텀블러 30회 이상 사용하면 종이컵 대비 환경 악영향 덜해
에코백, 비닐봉지보다 환경 영향 덜 미치려면 130회 이상 써야

워싱존에서 텀블러를 세척하는 모습. (김형수 기자) 2019.11.7/그린포스트코리아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환경적'이다. 그렇다면 텀블러를 닦는데 쓰는 물이나 세제, 플라스틱 텀블러를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나 그에 따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생각해도 충분히 환경적일까? 정답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김형수 기자) 2019.11.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일회용품 대신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흔히 ‘환경적 소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제품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미치려면 충분히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다회용품과 일회용품을 1:1로 비교하면, ‘환경 손익분기점’은 어느 지점에 있을까.

요즘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번 쓰고 버리면 환경 문제가 있으니 튼튼한 용기를 깨끗하게 씻어 계속 쓰자는 얘기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인데, 해당 내용에 관해서는 법적인 규제도 생겼다.

텀블러는 일회용 컵보다 무조건 환경적일까? 일각에서는 텀블러를 세척할 때 쓰는 물과 세제, 그리고 플라스틱 텀블러를 생산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적인 숙제 역시 많다고 지적한다. ‘종이컵 쓰고 재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환경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유행과 맞물려 ‘안전을 생각하면 일회용 컵이 훨씬 더 깨끗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두가지 요소만 가지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아서다. 텀블러 대신 사용하는 것은 종이컵만이 아니다. 카페에서 차가운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면 대부분 플라스틱컵에 담긴다. 먹고 남은 우유나 시럽, 휘핑크림 등이 잔뜩 묻어있는 플라스틱 컵이 여기저기 버려지면 재활용이 어렵다.

혼자서 가끔 카페를 이용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면, 여럿이 함께하는 회의나 야외촬영 등에서 대량으로 음료를 마시는 경우라면 플라스틱컵이 버려지는 문제를 더욱 예민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텀블러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텀블러는 ‘환경템’이지만 현실적으로 디자인 등을 다양화해 소유욕을 자극하려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기 카페 프랜차이즈에서는 시즌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출시한다. 플라스틱 컵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MD상품 매출을 올리려는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 텀블러, 플라스틱컵보다 환경적이려면 30번 이상 사용해야

‘리바운드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텀블러를 자주 구매함으로서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에너지 고효율 가전제품을 선택했는데 가전제품 전체 숫자가 오히려 늘어나 전기 사용량이 줄어들지 않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가 기존 차량보다 연비가 2배 좋은 친환경차를 구매했다고 가정하자. 운전을 해보니 기름값이 과거보다 싸게 들어 연료비 부담이 줄어든다면, 예전보다 승용차를 더 자주 이용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연비 개선으로 인한 연료소비 감축 효과는 기대보다 작아진다. 가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소비자가, 유지비가 저렴할 경우 사용량을 늘리는 경우는 실제로 존재한다.

비슷한 고민은 과거에도 있었다. 영국에서 천 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의 온실가스 배출을 분석한 적이 있다. 가격이 아닌 환경 영향에 대한 문제이므로 친환경차 사례보다는 텀블러 사례와 더 유사한 경우다. 당시 조사 결과 천기저귀를 세탁할 때 들어가는 물과 에너지 그리고 세제 등을 따져보면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텀블러의 경우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텀블러를 1개 생산하거나 없애는 과정에서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 1개보다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하지만 많이 사용하면 배출량은 역전된다.

KBS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300ml 용량 텀블러를 매일 1번씩 사용하면 2주 만에 플라스틱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한다. 한 달이 지나면 종이컵 온실가스배출량보다 적어진다. 6개월 후에는 플라스틱 컵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약 12배가 된다. 물론 플라스틱컵 또는 종이컵 역시 매일 1번씩 사용한다고 가정했을때다.

◇ 에코백 130번 써야 환경적? 다회용 제품 ‘환경 손익분기점’은?

요즘 이슈인 장바구니나 에코백도 같은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권장되지만, 정말로 환경에 덜 나쁜 영향을 미치려면 다회용 가방을 한 개만 구매해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해야 한다.

2011년 영국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종이봉투가 일회용 폴리에틸렌 비닐봉지보다 더 적은 환경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한 3번 이상 재사용해야 한다. 천 등으로 만든 에코백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즈는 지난해 “면화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비료와 살충제 등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수질오염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환경 영향을 적게 미치려면 에코백을 131회 정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애써 마련해놓고 충분히 사용하지 않으면 또 다른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비닐봉투를 줄이려고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은 좋지만, 평소 장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디자인 등에 혹해 가방만 많이 구입하면 그것은 환경적인 소비로 볼 수 없다.

실제로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한 소비자는 평소 사용하고 남은 비닐봉지를 3~4장씩 가지고 다닌다. 이 소비자는 “버려지는 숫자를 감안하면 비닐봉지가 환경에 가장 나쁘겠지만, 깨끗하게 관리하며 재사용하면 에코백을 여러 개 구매하는 것 보다 환경적으로 더 나을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한 소비자도 편의점 등에서 물건 사고 함께 구매한 비닐봉투 몇 개를 납작하게 접어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했다. 이 소비자는 “에코백을 안 가지고 외출하는 경우도 많고, 대량으로 쇼핑하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무거운 부직포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도 꺼려져서 비닐봉투를 재사용한다”고 말했다. 평소 카페를 자주 이용하는 이 소비자는 “음료 테이크아웃을 자주 하는 편이어서 텀블러는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다회용품을 얼마나 자주, 또 오래 사용하느냐다. 친환경 다회용 제품 구매시 반드시 따져봐야 할 ‘환경 손익분기점’이다. 그린포스트는 앞으로 친환경 제품이 정말로 환경적이려면 얼마나,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취재해 보도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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