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C, “SK이노 증거인멸 법정모독”…남은 카드는 '합의 뿐'
美 ITC, “SK이노 증거인멸 법정모독”…남은 카드는 '합의 뿐'
  • 김동수 기자
  • 승인 2020.03.23 14: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TC, SK이노에 대한 조기패소 판결 정당
판결문에 LG화학 내부 정보 공유 드러나
조지아 공장 걸린 SK이노…합의에도 장시간 소요될 듯
ITC가 21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배터리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ITC가 21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배터리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이른바 ‘배터리 전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소송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지 주목된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의 원문이 공개되면서 승자와 패자가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 美 ITC, “증거인멸 법정 모독”

ITC는 2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문을 공개했다. 해당 판결문에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 및 ITC의 포렌식 명령 위반에 따란 법정모독행위를 고려할 때 LG화학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패소 판결 신청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 측이 주장했던 무선 보안점검과 그에 따른 문서 삭제가 범행의도 없는 통상적인 업무과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SK이노베이션이 범행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증거를 인멸했으며 LG화학의 정보(영업비밀)를 탈취했다는 사실에 대해 입증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게 ITC의 설명이다.

만약 통상적인 업무과정에서 정당하게 문서 삭제가 진행됐다면 문서 삭제를 위해 발송된 지시 내용을 없애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수입품에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사용했는지 △LG화학의 정보가 실제로 영업비밀이 맞는지 △침해품 수입으로 인해 미국 내 산업에 실제로 상당한 피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모두 명백하다고 밝혔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문서를 삭제해 사실관계 자료의 확보 자체를 방해했다는 점을 꼬집었고 포렌식 명령을 고의로 위반해 법적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고 판결했다.

◇ 이직한 직원의 이메일 등 증거자료로 나와

판결문에는 2018년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의 이메일 증거 자료도 나와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내가 갖고 온 정리된 자료’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해당 메일은 “이런 것 가지고 있으며 안되나?”라는 내용과 함께 LG화학 소유의 양극재 및 음극재 관련 상세한 레시피가 첨부돼 있었다. 무려 57개에 달하는 레시피는 LG화학 소유의 양극재 및 음극재에 대한 믹싱, 코팅, 롤링 및 절단 관련 배합과 사양에 관한 자료가 포함됐다.

또한 판결문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출신 지원자들의 면접 과정에서 획득한 슬러리 조성, 코팅 속도 조절 등의 자료를 내부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자들의 파워포인트(PPT) 파일을 공유하며 ‘단시간에 L사 전극 고정 노하우 흡수 가능’, ‘경쟁사의 믹싱 기술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전쟁 일지(자료 언론보도‧하나금융경영연구소,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전쟁 일지(자료 언론보도‧하나금융경영연구소,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 수세에 몰린 SK이노, 합의점 찾나?…손해배상액 산정에도 장시간 소요 예상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조기패소 판결문의 공개로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 10월 5일로 예정된 최종결정이 나오기 전이지만 별다른 이변이 없는 경우 조기패소판결이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ITC 통계에 따르면 영업비밀 관련 소송의 경우 ITC 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사건 대부분이 최종결정으로 유지됐다. 결국 다음 달 17일까지 ITC가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최종결정에서 미국 관세법 337조(지식재산권 침해 관련)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2조원을 투자한 조지아 공장이 멈춰 미국 전기차 시장 진출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3일 ITC에 신청한 이의제기 역시 지금의 판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합의점을 도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앞서 말한 조지아 공장 때문에라도 최종결정이 나오는 10월 이전에 합의가 이뤄지는 게 SK이노베이션에도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종전과 같이 합의를 하나의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역시 합의를 하게 된다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길 희망하는 눈치다. 아직 구체적으로 합의 여부 결정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나온 판결문을 바탕으로 영업비밀침해와 관련된 손해배상액 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종전처럼 합의도 하나의 방법으로 보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이번 판결문을 바탕으로 손해배상액을 다시 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간은 다소 걸릴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합의가 이뤄진다면 조지아 공장 때문에라도 최종결정이 내려지는 10월 이전에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해당 합의가 신속하게 처리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 측이 ‘합의’라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해선 선제조건으로 피해액을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수년간 고의적·조직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건인 만큼 LG화학 측도 전체 피해규모를 산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선 두 회사가 합의하기 위해선 LG화학 측의 피해규모를 산정해야 하는데 수년간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는 등 피해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어 빠른 시간 안에 합의가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kds0327@greenpost.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