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으로 급성장한 사모펀드
은행에서 산 '고난도 사모펀드' 가입자는 손실에 발 동동
다시 ‘투자자 보호’ 골자로 한 ‘규제 강화’ 나서

'라임펀드' 가입자와 금융정의연대의 금융위 앞 규탄 시위(이승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라임펀드' 가입자와 금융정의연대의 금융위 앞 규탄 시위(이승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승리 기자] ‘사모펀드’가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예금보다 이율 높은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단연 ‘활성화 정책’이다. 하지만 양적 성장을 거둔 시장은 내실화에 실패했다. 불완전판매 여부를 다투는 ‘DLF 사태’가 터졌고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불러온 ‘라임 사태’도 연이어 발생됐다.

사태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보완’이 이뤄졌지만 이미 가입자의 손실은 발생됐고 이들은 ‘원금을 돌려 달라’고 항변한다. 분명 이뤄진 것은 ‘투자 행위’인데 이들은 이렇게 위험한 상품인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어떻게 이런 상품을 은행에서 팔 수 있었냐며 금융사와 금융당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들만의 놀이터 규제 완화를 거치니 ’나의 놀이터‘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사모펀드’는 누구나 가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지난 2011년 헤지펀드 도입 이후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의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으로 문턱이 낮아지면서 급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김종민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사모펀드의 리스크 점검 필요성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사모펀드 설정규모는 127조원으로 공모펀드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게 미미했던 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으로 그 확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 규제를 크게 완화하는 수준으로 헤지펀드가 도입됐다.

이후 2013년에 다시 '사모펀드에 대한 과도하고 복잡한 규제'를 문제 삼아 사모펀드 제도 개편이 예고됐다. 2012년 기준 GDP 대비 헤지펀드 순자산 비중 영국(11.8%), 미국(8.83%), 한국(0.09%)을 들며, 선진 외국에 비해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미흡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인 2013년 사모펀드의 시장규모는 △헤지펀드(전문투자형) 144조원 △PEF(경영참여형) 28.1조원 등 총 172.1조원이었다.

최근 '사모펀드 사태'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는 본격적 규제 완화는 2015년이다. 모험자본으로서의 순기능이 제고될 수 있도록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가 시작된 것이다.

우선 상품을 헤지펀드와 일반사모펀드는 통합되어 ‘전문투자형’과 ‘PEF’로 이원화됐다. 이에 따라 적격투자자 기준이 완화됐는데 헤지펀드가 전문투자형으로 바뀌면서 투자금액은 5억원에서 1억원(레버리지 200% 이상)으로 낮아졌다.

운영사 기준도 완화됐다. 집합투자업자를 인가제에서 요건을 갖추고 등록하는 ‘등록제’로 전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운용전문인력을 ‘금융회사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협회 운용 관련 교육을 이수한 자’ 요건만 충족하면 되도록 하고, 자기자본을 20억원으로 낮췄다.

이러한 완화기조에 힘입어 2013년 사모펀드의 시장규모는 △헤지펀드(전문투자형) 250.2조원 △PEF(경영참여형) 43.6조원 등 총 293.8조원으로 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혁신 성장’을 위해 2018년 다시 한 번의 진입규제가 완화됐다. 당시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을 구분하는 10% 지분보유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상품 일원화'를 주축으로 투자자와 운영사 기준이 완화됐다. 대신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를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전환해 개인투자자들이 ‘재간접펀드’를 통해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전문투자자 요건을 다양화하고, 금투자협회 등록에서 금융투자업자 자체 심사로 등록절차도 간소화시켰다.

그 결과 2019년 사모펀드의 시장규모는 △헤지펀드(전문투자형) 416.4조원 △PEF(경영참여형) 61.7조원 등 총 478.1조원으로 늘었다.

그래픽(최진모 기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최진모 기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사모펀드 놀이터’가 넓어졌는데ⵈ넘어지는 금융소비자는 어쩌나?

두 차례의 규제완화로 사모펀드에 대한 문이 활짝 열리면서 헤지펀드와 PEF 등 사모펀드의 수는 2013년 7,734개에서 2019년 1만1,1734개로 늘었다. 수탁고도 172.1조원에서 478.1조원으로 늘었다.

자산운용사 역시 성장했다. 전문사모운용사는 두 차례의 규제 완화 직후인 2016년에는 72개, 2019년에는 51개가 신규 진입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49개, 29개가 시장에 진입했다. 2013년 84개의 자산운용사는 2019년 292개가 됐는데, 이중 2/3 가량인 217개가 전문사모운용사일 만큼 비중이 높다.

지금 대규모 환매 연기로 많은 피해자를 만든 ‘라임자산운용’ 역시 2015년 12월 전문사모집합투자를 등록했다. ‘라임 펀드’는 규제 완화가 만들어내고 키워 2019년 말 기준 4.5조원의 수탁고를 가진 초대형 자산운용사가 됐고, 결국 1.72조원 수준(총수익스와프 포함)의 대규모 환매 연기라는 기록을 세웠다. 해당 펀드 가입자들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비단 ‘라임자산운용’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해당 자산운용사는 물론 상품판매사, 금융 당국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 역시 논평을 통해 '라임사태의 일차적인 문제는 운용사와 판매사에 있지만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당국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10일 해당 논평을 통해 "사모펀드 설립요건을 과도하게 완화하였다.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 누구나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하였고, 투자자와 판매자가 대등한 정보와 협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정보 부족과 왜곡된 허위 정보를 통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별도의 투자자 보호 장치 없이 사모펀드의 구조적·제도적인 문제를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발생된 ‘DLF 사태’ 역시 '고난도 사모펀드'를 은행에서 판매하면서 가입자들의 원성을 샀다. '은행에서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을 판매할 줄 몰랐다'는 가입자와 의견이 부딪히는 것이다.

실제로 한 은행에서 사모펀드를 가입했다는 한 가입자는 “‘원리금 보장에 안정성이 제고되어 있다’라는 표현을 했고, 안전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표현을 했었다”며 은행에서 가입한 상품이라서 이렇게 리스크가 클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반면, 공모펀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공모펀드의 수와 수탁고는 △2013년 3,310개, 184.4조원 △2014년 3,448개, 198.1조원 △2015년 3,746개, 213.8조원 △2016년 3,608개, 212.2조원 △2017년 3,878개, 217.5조원 △2018년 4,265개, 213.6조원 △2019년 34,189개, 242.3조원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있었던 2015년 이듬해인 2016년을 보면 수와 수탁고 모두 줄었다.

◇사모펀드, 규제 강화로 다시 그들만의 놀이터로?

일련의 사태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완화가 부추겼다는 비판과 함께 금융당국은 다시 ‘투자자 보호’를 골자로 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사모펀드와 관련된 규제를 내놨다. 지난해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은 고위험·고난도 사모펀드를 은행 판매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판매 단계에서의 투자자 보호 방침이다.

같은 달 사모펀드 및 개인전문투자자 제도도 개선됐다. △사모펀드 일반투자자 요건 최소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녹취·숙려제도 적용범위 확대 △설명의무 등 판매절차 강화 등이다.

올해 2월 금융위와 금감원이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개선 방향’은 여기서 나아가 운용사, 판매사, 수탁사 및 PBS 증권사의 위험관리까지 담고있다.

우선 자산운용사는 유동성, 레버리지 위험 등을 식별 관리할 수 있는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금융사고 발생시 수탁고에 비례한 자본금 추가 적립으로 손해배상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판매사에는 ‘펀드 운용에 대한 점검의무’가 부여됐다. 적격 일반투자자에게 사모펀드가 판매시 규약·상품 설명자료에 부합하게 운용되는지 점검할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이밖에도 수탁기관 및 PBS 증권사에는 운용사의 운영상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감시 기능을 부여했다.

지나친 규제 완화로 연이은 관련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견해에 대해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를 제도 개선 탓으로 연결, 확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금융당국 역시 감독과 검사 강화를 선언하며 제도 개선에 힘을 실었다. 펀드가 거래하는 파생상품 위험평가액 등의 기재내용을 보강하고 영업 보고서 제출주기를 단축하는 한편 펀드 판매 모니터링을 통해 사전 예방 검사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규제 완화가 '사모펀드 사태'의 원인은 아니라며 선을 그으면서도 규제 강화에 나선 셈이다.

victory0101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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