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투표, 의견행사 이면 또 다른 고민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누가 어디에 투표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그 투표가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경우라면 관심은 더욱 높아진다. 모두 똑같은 한 표인데 어떻게 ‘결정적인 투표’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투표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비교적 덜하거나,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럼 사람들은 ‘이 당이니까 찍고, 저 당이니까 외면해야지’라는 기준 대신 자기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투표권을 행사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후보도 별로인데 나머지 후보는 더 별로인 것 같아서’ 기권하는 경우도 있다.

위 두 단락은 4주 앞으로 다가온 총선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것만 콕 짚어 하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총선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투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기업 주주총회다.

◇ 3월 27일 한진칼 주주총회에 관심 쏠려

주총은 불특정다수가 아니라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다. 가지고 있는 지분율에 따라 투표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와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지분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 투표할 것이냐가 당연히 큰 관심사다.

요즘 주총에서 재계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국민연금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냐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에 따라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행사할 수 있다.

3월 넷째주에만 1천여건 이상의 주총이 열린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기업은 한진그룹이다. 27일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둔 가운데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남매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다. 조 회장측에게 유리한 정황들이 일부 보도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양측의 지분 차이가 적은 가운데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연금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조원태 회장의 재선임에 찬성할 것이냐 아니면 반대할 것이냐다.

국민연금이 사내이사 선임 등에 대해 반대의견을 펴는 경우는 대개 해당 인물이 기업가치를 훼손했거나 주주의 권익을 침해한 이력이 있는 경우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경영상 이뤄졌던 행위 등으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시민단체 등은 국민연금에 조원태 회장 재선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일례로 지난 17일, 참여연대는 국민연금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계획 질의’를 보냈다. 이 질의서에서 참여연대는 “조원태 회장이 2019년 4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고, 조양호 전 회장의 각종 횡령·배임 행위를 사실상 방치해 이사로서 감시·감독 의무를 해태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부적합한 인물이므로 재선임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가지 들여다볼 지점이 있다. 국민연금이 조원태 회장의 재신임을 반대하면, 현실적으로 이는 조현아측 편을 들게 되는 결과로 연결될 수가 있다. 문제는 조현아 전 부사장도 이른바 ‘땅콩회항’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관세법 위반 혐의로 법정을 드나들기도 했다. 실제로 참여연대는 항공기 구매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조원태·조현아를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투표, 의견행사 이면 또 다른 고민도

물론 고발이 이뤄진다고 해서 혐의가 소명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회사 경영에서 손 떼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 총수 일가의 방만한 경영 등을 견제하자는 기준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생긴다. 조원태 회장의 재신임을 반대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손을 들 수 있다는 점. 보는 관점에 따라 ‘진퇴양난’으로 보일수 있는 문제다.

참여연대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해당 문제를 두고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민 끝에 현재 안건으로 올라와 있는 문제를 원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매가) 분쟁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별도로 두고 원칙적인 평가를 했다. 현재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므로 그 부분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일 뿐, 특정인의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관계자의 말대로, 재선임 안건에 대한 투표이므로 여러 후보자 중에 하나를 고르는 국회의원 선거 등과는 그 결이 다르다. A냐 또는 B냐를 고르는 투표가 아니라, ‘A를 어떻게 봐야하느냐’의 투표이므로 B에 대한 고려는 일단 후순위로 미루는 판단이다. 현실적인 고려고 논리적으로도 옳다.

하지만 A와 B가 ‘거기서 거기’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문제다. A를 반대하면 B의 입지가 강해지는데 B 역시 A와 다를바 없다고 여긴다면, 고민 끝에 행사한 투표권이 현실적으로 투표자의 의중을 채워주지 못할 수도 있어서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투표에 해당되는 공통의 고민일 수도 있겠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에서 어떤 의견을 낼지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회사·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한다’는 내용의 정관변경을 요구하는 등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바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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