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전 세계 경제상황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경제성장률은 물론 미국 발 증시폭락 등 경제지표들이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기준금리인하 등 경제부양책이 거듭되고 있으나 앞으로의 전망 또한 밝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듯이 어김없이 주총시즌은 돌아왔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악재에도 불구하고 각 기업들은 올해 사업 추진과 관련된 주요 안건 처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중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기업 CEO들의 재선임 여부는 '빅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물론 기업 경영진들은 별 걱정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50%이상 나눠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지키는 데는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횡령, 배임, 일감몰아주기 등등 이맘때면 등장하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여기에는 항상 ‘대기업총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마련이다. 오너일가의 가업승계에 따른 지분확보차원의 불법행위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삼성, 현대, 한화, 롯데 등등 1세대 경영진이 물러나면서 2세대, 3세대 경영진으로 세대교체가 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업승계 과정에 오너일가의 불법행위가 난무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이웃나라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1937년에 창업한 유명한 장수기업이다. 이들 또한 오너 일가가 가업승계를 하고 있으나 CEO가 되는 과정과 기간 동안 오너일가에 대한 특혜가 주어지진 않는다. 오너일가라고 해도 철저한 경영능력 검증을 통해야 CEO가 될 수 있다. 도요타 같은 경우 창업 이래 11명의 최고경영자를 배출 했으나 이중 오너 일가는 6명 뿐이었다. 또한 기업의 리스크가 터졌을 때 대처하는 방식 또한 우리나라 기업과는 천지차이다. 일례로 도요타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는 경영악화로 직원 1500명 가량을 해임하게되자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도요타가문은 직원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2세, 3세 경영세습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이들은 각종 리스크에도 소유권을 앞세운 높은 지분율을 담보로 오너일가의 특혜만을 앞세워 왔다. 전문경영인은 고사하고 가족 간 제살 깎아먹기도 서슴지 않는다.

굴지의 기업인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과 대림산업 이해욱 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불법행위로 도마 위에 올랐다. 효성 조현준 회장은 횡령, 배임죄로 유죄를 선고 받은 상태고 대림 이해욱 회장은 일감몰아주기, 롯데 신동빈 회장은 경영비리에 연루됐다. 모두 사회적 무리를 빚은 사건으로 국민적 지탄과 함께 기업가치 훼손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격차가 크다.

롯데 측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의 롯데지주 사내이사 재선임안을 상정했으나 신회장은 이미 롯데쇼핑 등기임원을 20년 만에 사임한 데 이어 호텔롯데,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또한 대림의 이해욱 회장도 사내이사직을 포기하면서 기업리스크에 관해 책임을 보여줬다. 특히 대림 측은 이번 주총을 통해서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효성 조현준 회장은 횡령 등 다양한 범죄혐의로 수차례 유죄를 선고받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기업리스크를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실적 반등과 지분율을 앞세워 사내이사 재선임을 밀어붙이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등은 효성 조현준 회장의 횡령, 배임 등 불구속 기소와 관련해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의견을 낸 상태며 국민연금 등에도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효성 측은 문제될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기업의 도덕적, 사회적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수장이라면 본인의 잘못에 대한 책임과 사과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현재 상황이라면 조현준 회장은 사내이사를 포기하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기업 수장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미국 부동산 취득과정에서 환거래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조현상 총괄사장 쪽이 기업 이미지 쪽에선 훨씬 더 나아보이는 이유다. 올해로 53년 된 장수기업이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오너리스크 의혹에서 벗어난 투명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기업의 특성상 오너일가의 특혜는 어쩔 수 없다는 건 인정한다. 그런 특혜를 누렸다고 비난을 할 사람도 없다. 국민이 원하는 건 사회적인 신뢰이자 진정성 있는 투명한 경영이며, 사태에 관해 책임을 질줄 아는 총수의 품격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jakep@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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