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기상청은 매일 비가 내리겠으니 우산을 챙기라고 했지만 사흘 후에도, 나흘 후에도 비는 오지 않았다. 끈기가 남달랐던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꼬박꼬박 우산을 챙겨 학교에 왔다. 열흘 가까이 지나는 동안 비는 한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을 고발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요즘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향한 비판을 살펴보다 이 친구의 울분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엔 KF94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면 마스크를 다시 사용해도 된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메시지가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1500원짜리 마스크 두 장을 사기위해 신분증까지 챙겨서 길게 줄을 서야하는 데다, 앱이 나왔다고는 하나 이 약국 저 약국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더해지며 정부를 향한 불만은 크게 자라났다.

처음부터 정부가 정확한 예측을 바탕으로 마스크 착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세웠으면 생기지 않았을 혼선이고,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19 대응은 불확실성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던 이 질병에 ‘코로나19’라는 이름이 붙은 지도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는 감염이 어떤 방식으로 되는지, 전파력이 얼마나 센지, 치사율이 얼마나 높고 증상이 어떤지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역을 시작했다.

방역 작업을 벌이면서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쌓였고 정부는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공무원은 복지부동이라는 부정적 인식과 달리 어제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늘의 전략을 수정하며 코로나19에 맞선 것이다. 방역 당국은 이달 초 코로나19 환자와 접촉하지 않는다면 KF80 마스크를 써도 된다고 권고했다. 혼잡하지 않은 야외, 가정 내, 개별 공간 등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방역 당국이 마스크 착용에 대한 초기 입장을 바꾸지 않고 지금도 KF94 마스크 착용 권고안을 고수했다면 최근 일각에서 일어난 마스크안사기운동은 시작도 힘들었을 것이다. 마스크 공급난도 지금보다 심해져 KF94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현장 의료진과 방역 인력들이 감염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열흘 가까이 우산을 꼭 챙기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냈던 옛날 기상청과 어제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늘의 새로운 메시지를 내는 지금의 방역 당국의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이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차이는 불확실성을 마주한 태도에서 생긴다. 불확실성이란 리스크를 인지하고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불확실성은 없다고 부정할 것인지.

남태평양에서 생긴 태풍이 한반도에 언제 상륙해서 얼만큼의 피해를 낼지, 옆 나라에서 생긴 정체불명의 질병이 언제 어떻게 국내에 번져서 얼만큼의 피해자가 나올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하라는 것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라는 주문이다.

기상청은 태풍의 이동 경로와 주변 바다의 수온을 계속 체크하며, 방역 당국은 이웃국가의 환자 발생 속도와 사망률을 수시로 체크하며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최초의 예상을 수정해나가며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날씨 앱을 켜보면 비가 온다, 안 온다가 아니라 강수확률은 몇 %라고 표시된 화면을 볼 수 있다. 

어제는 비가 내릴 가능성이 낮다고 예보했어도 오늘 아침에 비구름이 몰려오면 어제의 예보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일기예보를 내야 기상청이 자신의 역할을 더 잘하는 게 아닐까. 방역 당국의 본분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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