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함을 위한 빨래, 사용되는 물과 세제에도 관심 필요
버려지는 양 줄이는 유일한 방법, 더 적게 사용하기
문제의식과 불편 감수 사이의 어려운 균형감, 어떻게 잡을까?

요즘 재택근무를 권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자도 개인 위생에 신경쓰기 위해 며칠간 집에서 근무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보니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생활 속 환경 요소’들이 보입니다.

나와 가족들이 집에서 하루 종일 먹고 쓰고 입고 버리는 것들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쓰레기 없이 살기’가 버리는 것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기자들의 ‘미션 임파서블’한 노력이라면, 이 칼럼은 집에서 가족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제도적인 뒷받침과 아울러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숙제는 뭔지 한번 더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전자 전시회 CES2019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건조기와 세탁기를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2019.7.30/그린포스트코리아
빨래는 옷을 깨끗이 만드는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 물과 전기를 적게 쓰고, 버려지는 물의 오염도가 심해서는 안된다는 숙제도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CES2019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건조기와 세탁기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요즘 외출을 자제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슈인데다 미세먼지 경보도 매일 빨간색에 가깝고, 왠지 느낌상 밖에 나갔다 오면 몸과 옷이 무언가에 ‘오염’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다.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이 당연한 숙제처럼 여겨져서 그럴까. 나갔다 들어오면 옷은 바로 세탁기로 직행한다. 이런저런 빨래감을 모아 2~3일에 한번씩만 돌아가던 세탁기는 요즘 매일같이 바쁘다. 건조기도 덩달아 할 일이 많아졌고, 건조기가 쉬는 날에는 제습기가 빨래건조대 밑에서 부지런히 물을 흡수한다.

어릴 때 우리집에는 세탁기와 빨래방망이가 공존했다. 가끔씩 비눗물이 여기저기 튀기도록 빨래를 퍽퍽 내리치던 어머니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쪼그리고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거나 세탁기에 안 들어가는 이불을 고무 다라이에 넣고 밟으시던 모습도 생각난다. 기자에게도 빨래를 좀 밟아보라고 하면, 괜히 신나서 물장난을 치다 빨래에 별 도움을 못 드리고 혼나기도 했다. 어린 기자가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거나 학습지를 밀리면 어머니가 빨래 방망이로 겁을 주신 적도 있었다.

◇ 빨래판과 방망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세탁은 중노동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빨래가 기자 스스로의 일이 된 것은 군대에 갔을때부터다. 세기말 이전, 세탁기가 머릿수에 비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네모 반듯한 빨래비누에 옷을 벅벅 비벼가면서 빨았다. 활동량은 많은데 전투복 2벌이 전부이던 시절이라 한번 빨면 거무튀튀한 물이 끝없이 나왔다. ‘이걸 입고 다녔다니’ 하는 끔찍함과 깨끗해진 옷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함께 느껴지던 기억도 난다.

탈수기 한 대를 여러명이 돌려쓰느라 순서를 기다리기 싫으면 2인 1조로 옷을 온 몸으로 비틀어 짰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날일수록 옷을 더 꽉 짰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물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때는 관심이 없었다.

요즘의 기자에게도 빨래는 중노동이다. 예전처럼 꾹꾹 밟고 꽉 짜지는 않지만 왠지 귀찮고 하기 싫어서 문제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상태에 놓인걸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그걸 위해서 내가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귀찮고 힘들다.

세탁기를 처음 살 때 최대한 큰걸로 골랐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는 같은 가격에 더 많이 주는 ‘1+1’제품을 선호했다. 그런데도 이불같은 큰 빨래는 그냥 코인 세탁소에 맡겨왔다. 차를 가지고 나가 이불을 맡기고,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카페에 들러 커피까지 한잔 느긋하게 마신 다음 이불을 찾아오면 시간이 딱 맞았다. 빨래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면 무조건 기분이 좋았다,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던 어머니 모습이 잠시 생각날때면, 언젠가 할머니가 “빨래는 손으로 싹싹 비벼 빨아야 때가 잘 진다”고 하셨던 기억이 떠오를때면, ‘역시 기술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21세기에 사는걸 다행으로 여겼다.

배우 최불암씨가 지난 1969년 광고모델로 출연했던 옛 금성사의 백조세탁기 광고(LG전자 제공)
과거 세탁기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크게 바꿨다. 이제 미래의 세탁기는 우리 자녀들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사진은 배우 최불암씨가 출연한 1969년 세탁기 광고 (LG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옷에 묻은 때를 지우는게 빨래의 궁극적인 목표일까?

빨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다. ‘하루 종일 입는 옷인데 건강 해치지 않는 세제를 써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기자는 평소 피부트러블이 심했다. 반복적인 야근에 지쳐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늘 야식으로 달래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랬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에서 ‘친환경 세제를 직접 만들어 썼더니 몸이 가렵지도 않고 피부도 좋아지더라’는 글을 많이 봤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옷에 묻은 때를 깨끗이 지우는 게 빨래의 궁극적인 목표일까?’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옷을 깨끗하게 하느라 사용된 물과 세제는 어떻게 하지?’

변화를 시도해봤다. 세제를 줄이고 비누를 갈아 넣어보거나, 베이킹소다를 섞는 등의 몇가지 노력을 해봤다. 땀이 많이 나지 않았거나 크게 오염되지 않은 겉옷은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고 물로만 세탁해보기도 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과정은 불편했다. 충분히 깨끗하게 빨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노하우도 없었다. 퇴근하고 2시간 가까이 빨래에 공을 들여도 여드름이 곧바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기운을 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 타는 상상을 하며 손빨래에도 도전해봤다. 손으로 벅벅 비벼빨면서 합성섬유에서 빠져나갈 미세플라스틱의 악영향에 대해 상상했다. 세탁기를 통해 하수도로 쓸려나갈 수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내 손으로 줄이고 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앞으로는 면 등 천연섬유로 만든 옷을 더 많이 입어야겠다고도 다짐했다.

기특했지만 한편으로는 짧은 생각이었다. 면을 만들기 위해 목화를 재배하려면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면화 생산 늘리기 위해 아랄해 물을 끌어다 썼더니 호수 수량이 1/10로 줄어들었다는 기사도 읽었다. ‘도대체 뭐야, 빨래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비는 적당히, 손빨래 포기, 그래도 불편함을 조금은 감수하고 문제 의식도 계속 가지고 있자’는 정도로 결론이 났다. 물론,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사이에는 머나 먼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줄이는 게 기자에게는 숙제다.

◇ 환경에 나쁜 영향 덜 미치는 세제 고르려는 노력들
 
빨래에 대한 우려는 크게 두가지다. 혹시라도 몸에 유해한 성분이 세탁물에 남으면 안된다는 우려, 그리고 더러움을 씻어낸 물이 너무 많이 버려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전기 사용 등을 줄이려고 건조기 대신 빨래 건조대에 말리는 것을 추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빨래를 통해 생각해 볼 환경 이슈는 크게 위 두가지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소비자 임모씨(40)도 빨래에 관심이 많다. 임씨는 피부가 예민해 바디워시도 거의 쓰지 않고 물로만 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빨래는 여러번에 모아 한번씩만 돌리는데 세제는 최소한으로 쓴다고 했다.

임씨는 “뭐가 묻었거나 특별히 오염이 심하면 그 부분만 먼저 손으로 빨고 세탁기는 가급적 적게 돌린다”고 했다. 임씨는 “물을 덜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내 몸에도 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임씨는 최근 의류관리기를 구입했는데, 두꺼운 겉옷을 자주 빨거나 드라이크리닝을 맡기는 것 보다는 관리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또 다른 소비자 이모씨(41)는 최근 친환경 세제를 구입했다. 합성계면활성제와 염소표백제 등 화학성분 대신 소다와 코코넛 추출 계면활성제 등을 사용한 제품이다. 이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빨래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면서 “아기를 안고 부대끼다 보면, 아이 옷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옷도 지금보다 훨씬 더 무해하고 깨끗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GS25 분석한 2019년 상반기 매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친환경 세제 분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5%가 성장했다. 이른바 ‘재활용 대란’이 일어났던 지난 2018년 5월에는 G마켓 친환경 세탁세제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72% 늘어났다. 당시 전체 세탁세제 판매 증가폭(14%)의 5배 규모였다.

물론 세제나 섬유유연제에 함유된 물질이 반드시 나쁜건 아니다. 옷감을 코팅해주는 역할을 해서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이 옷에 붙는 것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섬유유연제의 양이온 계면활성제는 정전기 방지 기능 등을 통해 먼지가 달라붙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 세탁 시장에 친환경 바람이 분지 이미 오래라 업계에서도 유해물질 줄인 제품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내놓고 있기도 하다.

GS25는 넬리소다세탁세제를 출시했다. (GS25 제공) 2019.8.19/그린포스트코리아
친환경 세제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늘고 있다. GS25는 지난해 상반기 친환경 세제 분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95% 늘었다. 지난 2018년 5월에는 G마켓 친환경 세탁세제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72% 늘었다. 사진은 GS25에서 인기를 끌었던 넬리의 소다 세탁세제 (GS25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기술도 환경을 향한다? 물과 세제량 AI가 조절하는 요즘 세탁기

효율적인 빨래를 위한 노력은 가전업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1월 출시한 AI세탁기·건조기는 세탁기가 빨래 무게를 스스로 체크해 알맞은 양의 세제를 투입하고 오염 정도에 따라 헹굼 횟수를 조절하는 맞춤 세탁 기능을 탑재했다. 삼성전자측은 “빨래를 담근 물의 탁도를 측정해 오염 정도를 확인하고, 오염도가 낮으면 세제량과 헹굼 횟수를 줄여 물 사요량을 줄인다”고 밝혔다. 세제 자동투입 기능은 과거에도 일부 제품에 적용되어 있었으나 적합한 코스를 자동으로 연동되도록 한 것이 기존 제품과의 차이다.

삼성전자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탁기 사용자의 68%는 표준 코스만 사용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48%는 세탁이 제대로 됐는지 직접 확인하기 어려워 찝찝한 마음에 헹굼 기능을 추가한다고 응답했다. 맞춤 세탁을 통해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물과 세제를 줄일 수 있게 된 것.

LG전자도 인공지능 세탁기를 출시했다. 세탁물 무게를 감지한 후 의류 재질을 파악해 6개의 모션 가운데 최선의 모션을 선택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재질이 섬세한 의류면 흔들기와 주무르기 모션을 사용해 옷감을 보호하는 방식이다.

양사 세탁기는 날씨와 미세먼지 정보를 고려해 최적의 코스를 제안하거나 기존 제품보다 기본적인 세탁·건조시간을 줄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빨래의 효율화를 돕는다. 소비자의 편의를 돕기 위한 기능이지만. 물과 세제를 줄임으로서 환경적인 영향도 줄이는 효과다.

빨래를 둘러싼 환경 논의는 개인과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섬유유연제에 향기를 내기 위해 첨가하는 마이크로비즈 캡슐 사용을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안전확인 대상 생활화학제품 지정 및 안전·표시기준' 고시를 개정해 내년 1월 1일부터 제조·수입하는 세정제품과 세탁제품에 대해 제품 내 세정, 연마 용도의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금지한다.

일회용품도, 플라스틱도, 세상의 모든 쓰레기도 모두 그렇듯 물과 세제를 적게 버리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적게 쓰는 것. 더러운 옷을 입자는 얘기가 아니라,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 뒤에 숨어있을 환경적 요소를 더 신경쓰자는 의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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