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되어 손 많이 가기 시작한 차. 돈만 가져가면 괜찮은데...
교통 수단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다

요즘 재택근무를 권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자도 개인 위생에 신경쓰기 위해 며칠간 집에서 근무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보니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생활 속 환경 요소’들이 보입니다.

나와 가족들이 집에서 하루 종일 먹고 쓰고 입고 버리는 것들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쓰레기 없이 살기’가 버리는 것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기자들의 ‘미션 임파서블’한 노력이라면, 이 칼럼은 집에서 가족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제도적인 뒷받침과 아울러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숙제는 뭔지 한번 더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현대자동차가 SK가스와 함께 진행한 인천시의 첫 번째 수소충전소인 'H인천 수소충전소’(현대자동차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운전자 혼자서 휘발유나 경유를 태우며 매일 도심을 달리는 자동차는 자동차는 기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친환경 미래차에 대한 고민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현대자동차가 SK가스와 함께 진행한 인천시의 첫 번째 수소충전소인 'H인천 수소충전소’(현대자동차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1988년의 봄을 기억한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기자네 집에는 ‘자가용’이 생겼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지금의 기자 나이와 비슷했을 그 시절 우리 아버지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으로 주차장을 내다보던 모습을 말이다.

차가 잘 세워져 있는지, 혹시 누가 와서 차를 긁지라도 않는지 궁금하셨던걸까? 아버지는 몇 번씩 창문 밖으로 차를 내려다보고 아침 저녁으로 1층에 내려가 차를 닦으셨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으면 차에 은색 비닐을 씌우셨다. 우리집에 자가용이 있다는 사실은 신났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의 안부를 확인하는 아버지가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3단 변신 로봇도 아니고 그냥 자동차에 불과한데 왜?

우리 차는 르망. 은은한 회색이었고 차 안에서는 진한 모과향이 났다. 몇 cc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국민학생’이던 기자가 뒷좌석에서 뒹굴며 놀기에는 충분히 넓었다. 운전석의 아버지와 조수석의 어머니 뒷모습. 그게 기자 머릿속에 각인된 ‘우리 가족’의 여러 이미지 중 하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기자도 ‘내 차’가 생겼다. 살까, 말까, 지를까, 참을까를 몇 달이나 반복하다가 태어나서 가장 큰 돈을 한방에 썼다. 그리고 나서 기자도 20년전 아버지처럼 한밤중에 갑자기 주차장에 내려가서 내가 차를 잘 세웠는지, 문을 잘 잠갔는지 확인했다. 주차장 옆 칸에 누가 차를 세우려고 하면, 그 사람이 왠지 내 차를 긁을 것 같아서 괜히 도끼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 오래 되어 손 많이 가기 시작한 차. 돈만 가져가면 괜찮은데...

차가 생겨서 좋은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동이 편하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내 ‘공간’이 생겼다는 것. 음악을 아무리 크게 틀어도, 열 받아서 온갖 상욕을 쏟아 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곳. 그런 공간이 생긴 게 너무 신나서 주말마다 전국 각지로 차를 몰았다. 취미생활을 할 때도,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며 일터를 누빌 때도 이 차는 기자의 좋은 친구였다. 

차를 구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본부’ 관계자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관계자는 “승용차 성능은 50만Km를 넘어 달릴때까지 유지되는데 소비자들의 교체주기가 너무 짧다”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당시의 기자는 10년이라는 숫자가 너무 길어보였다.

사실, 기자는 계획이 다 있었다. 첫 차를 실컷 타다가 마흔살이 되기 전에 커다란 SUV로 바꾸고, 쉰살이 될 때쯤 럭셔리 세단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리고 예순살을 넘겨서는 작고 귀여운 경차를 사고자 했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성공한 삶을 마음껏 누리고 현역 은퇴 즈음이 되어서는 욕심 내놓고 겸손하게 사는 ‘진짜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격세지감이다. 그 차가 이제 13살이 됐다. 기자는 마흔을 넘겼는데 여전히 첫차를 탄다. 며칠 전, 차는 12번째 생일 즈음해서 기자의 비상금 60만원을 털어갔다. 2년에 한번 받는 정기점검 비용, 엔진오일과 에어필터 교체 비용, 그리고 수명이 다해가는 타이밍벨트 교체 비용을 더한 금액이다.

차가 오래되면 돈이 든다. 기자만 그런게 아니다. ‘여기저기 고치고 부품 교체하느니 그냥 새 차를 사는게 낫다’는 격언(?)도 거기서 나왔다. 기자도 하루만에 60만원을 쓰고 나서 홧김(?)에 팰리세이드나 GV80 가격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그만뒀다. 찻값이 부족해서일까. 그런 이유도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고민은 “내 차가 지구에 해롭지는 않을까”하는 물음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대상 단속을 실시했다. 사진은 서울시 교통정보센터(TOPIS) 내 녹색교통지역 운행제한 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모습 (뉴스핌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대상 단속을 실시했다. 사진은 서울시 교통정보센터(TOPIS) 내 녹색교통지역 운행제한 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모습 (뉴스핌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11년 전 독일, 자동차 없는 태양열 생태마을에서의 기억

2009년 가을, 기자는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환경 관련 취재였다. 당시 ‘독일의 환경수도’라고 불리던 프라이부르그를 다녀왔다. 그 도시는 태양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적잖은 전기를 생산하고 승용차 대신 자전거와 대중교통 중심으로 교통 시스템이 재편되어 있었다.

태양열로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이 축구장과 공영주차장을 비롯해 100곳이 넘었고 관광지인 뮌스터 대성당 근처 시가지는 반경 2Km 가까운 지역이 전부 차량 진입 금지구역이었다. 해당 지역에는 전차와 버스, 그리고 장애인 차량만 진입할 수 있었다. 당시 한 국내 기업이 전차와 자전거가 함께 달리는 유럽 도시 풍경을 TV광고에 활용했는데 그 광고가 바로 그곳에서 촬영됐었다.

기차역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는 보봉 생태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차 없는 사람이 더 편한 마을’을 목표로 조성됐다. 단지에 거주자들은 차를 진입로 공동주차장에 세우고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420세대가 사는 단지에 주차공간은 300여대 뿐. 차도로 나가는 규정 속도는 시속 30Km로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 독일은 자동차 보급률이 인구 100명당 46.5대였는데, 보봉 주거단지는 자동차 보급율이 100명당 9,5대였다. 주민들은 교통체증이 없는데도 대부분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보봉 뿐 아니라 프라이부르그 전체 도로가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기자가 살고 있는 서울은 보봉이 아니다. 기자가 서울에서 운전을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길이 막혀서다. 최근에는 부득이하게 외출할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 대신 반드시 승용차를 이용하는데, 그건 코로나19 관련 우려 때문에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11년에 며칠 수박 겉핧기처럼 보고 온 독일의 한 마을 사례를 가지고 서울의 교통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다. 게다가 서울시 역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에 대한 규제에 나서는 등 자동차 배출가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을 부지런히 펴 왔다.

◇ 교통 수단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내 차가 지구에 해롭지 않을까?”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최근 그린포스트 편집부 회의시간에 “유럽 시민들 사이에서 비행기 탑승을 가급적 줄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 항공기의 탄소배출이 다른 교통편에 비해 높으니 이용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했다.

외국에 가려면 항공기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우리나라 사정과 거리가 먼 얘기였지만, 매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한 소식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즈음부터 ‘플라이트 셰임’이라는 단어가 회자된 바 있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온실가스의 주범 중 하나인 비행기를 타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였다.

유럽환경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항공기를 탄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285g이다. 104g인 자동차의 2배, 14g인 기차보다는 20배 정도 많다. 고속열차를 생산하는 프랑스의 전력 및 운송업체 알스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Km당 이산화탄소 양이 기차 2.2g 버스 30g, 승용차는 115g이다.

국내에서 보도된 내용도 있다. 지난 2018년 환경부에서는 여름 휴가기간 자가용 대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휴가 관련 습관을 바꾸면 온실가스 배출을 78만t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지만, 승용차를 (그것도 혼자) 타고 다니면 확실히 대기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모든 국민이 불편을 감수하며 승용차 이용을 자제할 수는 없다. 유럽의 어느 도시들처럼 자전거 출퇴근을 적극 권장하기도 요즘은 어렵다. 그러나 대안이 있다면 혼자 승용차를 이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연료 소모를 줄이는 효율적인 운전법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당장 실천은 어렵더라도 배출가스가 적은 자동차를 선택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서울 올림픽대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 (뉴스핌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올림픽대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 (뉴스핌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운전자 혼자서 내연기관 자가용 타고 도시를 누비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포르쉐가 지난해 3월 자사 매거진에서 보스턴대학 ‘지속가능한 에너지연구소’ 폭스 페너 소장의 인터뷰를 게재한 바 있다. 보스턴 시내의 대기오염과 자가용의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한 컬럼이다.

해당 컬럼에 따르면 보스턴 운전자는 연간 164시간을 도로에서 보낸다. 페너 소장은 보스턴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의 대부분이 도심을 오가는 차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심각한 것은 그 자동차의 70%는 자가용이며 대부분 내연기관이고 운전자 한 사람만 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컬럼은 대도시인 보스턴 지역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오는 2050년까지 자동차가 지금보다 1만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땅이 넓은 미국은 개인 승용차 이용률이 높지만, 위 사례는 우리나라 대도시에 도입해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빠르고 편하게 가려면 차를 운전하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와 편의성만 고려해서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다. 일회용품도 위생적이고 편리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있듯, 자동차도 이제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기자의 차는 13살이다. 같은 양의 휘발유를 넣고도 예전보다 더 짧은 거리를 달린다. 공회전을 줄이고, 4주에 한번 공기압을 체크하고, 트렁크의 불필요한 짐을 모두 빼고, 급가속과 급제동을 피하면서 rpm을 가급적 2300~2500내외로 유지한 채 운전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료를 예전보다 더 많이 소모한다.

13살짜리 내 차는, ‘혼자만의 공간’으로서 오랫동안 손때 묻고 정이 들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주차장에 내려가 안부를 확인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효율이 아무래도 떨어졌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모두 말이다. 모르긴 해도, 엔진이 깨끗하고 튼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배출가스도 더 나올 확률이 높다. 언젠가 수명을 다하는 날이 오면, 그 부분에서 더 개선된 모델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자 혼자 서울시내를 타고 돌아 다니는 습관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

◇ 지구와 함께 ‘잘 사는’ 방법 찾기

기업과 정부에도 숙제가 있다. 정부 계획과 학계의 전망 등을 종합하면, 2030년 즈음에는 신규 자동차 중 약 33% 정도가 친환경차로 보급될 예정이다. 하지만 친환경차 보급만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래차가 배출가스를 줄여주는 것은 사실인데, 전기나 수소 에너지 수급 과정이 정말로 친환경인지, (편리하면서 환경 영향이 적은) 충전 인프라를 제대로 잘 갖출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미래의 우리에게 쌓일 전기자동차 폐배터리 문제. 운전석 아래 커다란 배터리가 장착된 상태에서 혹시 생길지 모를 전자파 관련 문제 등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검증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기 앞서, 기자 먼저 계획을 바꿨다. 40대와 50대때 덩치가 큰 차를 타려던 마음을 바꿨다. 애초에 큰 차를 사려고 했던 건 가족이 늘어날 것을 고려해서가 아니었다. 큰 차를 타야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의 수명이 다하면 기자는 그때도 적당히 작은 차를, 그리고 이왕이면 배출가스가 덜 나오는 차를 살 생각이다. 그게 바로 ‘잘 사는’ 방법이고 지구도 ‘잘 사는’ 길이라고 믿기 시작해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교통수단을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기자가 최근 읽은 칼럼의 한 줄을 여기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에스콰이어 3월호 ‘저널’페이에 실린 글이다

“인류는 기생충처럼 지구의 수명을 갉아먹으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지구의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주어진 환경을 충분히 누리되 멋대로 바꾸거나 망가뜨리지 않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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