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 조짐 속 빠르게 수거된 라돈침대...침대 폐기물 여전히 방치
라돈 전문가 “라돈침대로 피해 본 사람들은 있지만 법적처벌은 없다”

 
‘라돈침대’ 관련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라돈침대’ 관련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송철호 기자] 2018년 10월 7일. 당시 라돈침대 사태가 발단 5개월 만에 일단락된 시점이다. 당시 “천안 대진침대 본사에 야적돼 있던 물량과 전국적으로 미수거 됐던 침대까지 모두 회수해 해체를 완료했다”는 내용을 담은 대진침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발표가 있었다.

라돈침대 사태는 2018년 5월 3일 처음으로 부각된 이후, 대진침대가 자체 리콜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라돈침대 천안 본사 진입과 해체가 지역주민들 반대로 중단되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진침대와 원안위는 2018년 7월 30일 시범해체를 시작으로 8월 22일까지 대진침대 본사에 야적됐던 2만9000여개 침대 해체를 완료했고 이후 주민 협의를 거쳐 전국적으로 미수거 상태에 있던 2만2991개를 추가 수거해 10월 7일에 사실상 해체를 완료했다.

국민들은 이렇게 라돈침대 사태가 일단락됐을 거라 믿었고 그 이후 산발적인 라돈침대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미 수면 위로 올라온 라돈침대 문제를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물론, 업체들 스스로도 자성의 계기가 됐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라돈침대 폐기물이 아직까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라돈침대 사태 이후 결함 침대를 생산한 업체들은 원안위 수거 명령에 따라 침대를 수거했지만 해당 처리규정이 없어 수거한 제품이 여전히 야적장에 쌓여있는 것.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는 제조업자 수거·폐기 조치 의무만 있을 뿐 폐기방법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도 라돈침대와 관련해 폐기물 처리기준이 없어 현재 보관 중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 따라 천연방사성핵종 가공제품 중 안전기준을 초과한 부적합 제품 회수·보관은 원안위에서 관리한다”며 “소각 및 매립 등 폐기기준이 없어 처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 폐기물 처리도 못하고, 피해자 구제도 못하고

라돈침대 폐기 문제가 큰 상황이지만 라돈침대 피해자들도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라돈침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관련 업체와 정부는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침대 수거에 들어갔다. 누가 봐도 큰 피해가 예상됐고 피해자 발생 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올해 연초 라돈침대를 제작·납품한 혐의를 받았던 업체 대표와 관계자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가 대진침대 대표와 매트리스 납품업체 대표 및 관계자 2명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 

대진침대 대표 등은 2005~2018년 사이 라돈 방출 물질인 모나자이트 분말을 도포한 매트리스를 제작·판매해 고소인들에게 폐암, 피부질환 등 질병을 야기했다는 등의 이유로 고소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 상해·업무상과실치상 혐의와 관련해 “라돈이 폐암 발암 유발물질인 사실은 인정되지만, 폐암 이외 다른 질병(갑상선암, 피부질환 등)과 연관성이 입증된 연구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 상태”라며 “누구나 일상생활 중 흡연, 대기오염 등 다양한 폐암 발생 위험인자에 노출되는 점에 비춰 라돈 방출 침대 사용만으로 폐암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 난리 속에서 라돈침대를 수거했고 전 국민을 공포심에 몰아넣었는데 피해자가 없는 것이다. 기준치 이상 라돈이 처음으로 검출된 대진침대는 결국 문을 닫았고 라돈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에이스침대 매출은 사태 발생 이후 분기마다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업체간 희비는 명확했다. 피해자는 라돈침대 업체였던 것일까?

한 라돈침대 피해자는 “라돈침대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있지만 법적 처벌을 받는 이들은 없다”며 “각종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라돈침대 사태로 얻은 것은 라돈에 대한 국민 경각심 정도”라고 한탄했다.

라돈침대 폐기물이 아직까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사진 그린포스트 DB)/그린포스트코리아
라돈침대 폐기물이 아직까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사진 그린포스트 DB)/그린포스트코리아

◇ 올바른 라돈 정보와 기준 필요

검찰도 밝힌 바 있지만 정부도 라돈이 폐암 유발물질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폐암 이외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이 입증된 연구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 상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입증된 연구결과가 없다는 것이라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이에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제대로 된 연구도 진행하지 않은 채 검찰이 성급하게 내놓은 결론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라돈방출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제품을 광고하고 판매한 행위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라돈은 WHO(세계보건기구)가 이미 오래전에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며 “검찰이 폐암은 비특이성 질환이라서 라돈침대로 인한 폐암발병에 대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또한 “안전성 결함에 따른 사기죄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을 속여 판매대금을 편취한다는 범위가 인정돼야 한다”면서 “제품에 모나자이트가 사용됐고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면 누가 해당 침대를 구매했겠느냐”고 지적했다.

관련 업체들이 제품에 사용된 물질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과대포장해 소비자를 현혹시킨 것 자체가 광고표시법 위반이라는 것. 

조승연 연세대학교 라돈안전센터장은 “라돈침대 사태 이후 라돈에 대한 국민 관심은 커졌지만 저감을 위한 인식은 아직 자리 잡히지 못했다”며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 제공과 라돈 저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라돈침대 폐기 문제가 큰 상황이지만 라돈침대 피해자들도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라돈침대 폐기 문제가 큰 상황이지만 라돈침대 피해자들도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라돈침대 사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유사

최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5월 대진침대 라돈방출 문제가 발생한 이후, 같은 해 6월에 라돈침대 사용자 중 폐암이나 갑상선암 등의 진단을 받은 피해자 180여명이 재조사(대진침대와 납품업체) 요구와 국가(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진행한 바 있다. 

검찰(서울서부지검)은 1년 6개월 동안 피해자 조사는 폐암환자 단 1명만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게다가 제품제조 과정의 관리책임이 있는 원안위,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유관기관 의견만을 참조해 결국 제조사와 국가 모두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진행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국민 64.4%는 라돈이 검출된 침대 사용자에 대한 건강영향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피해조사도 하지 않은 검찰이 섣불리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릴 사안이 아니라는 것.

특히 국민 90% 이상은 라돈침대 등 방사능에 오염된 생활용품 소비자 피해 문제의 책임이 국가 또는 제조사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은 ‘라돈침대 제조사와 이에 관리책임이 있는 원안위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너무 쉽게 내놨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라돈침대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했고 문재인 정부는 처음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제대로 된 피해대책과 진상규명을 약속했다”며 “라돈침대 사태 역시 여러 측면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유사하고 생활화학제품으로 인한 소비자 건강위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특히 “문재인 정부는 라돈침대 사건에 대해 침대만 겨우 회수한 채 아무런 피해조사도 하지 않고 피해대책을 방기하고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방치한 박근혜 정부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song@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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