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싱어의 ‘제로웨이스트라이프’ 초보자 가이드라인 발견
​​​​​​유튜브 속 호주 슈퍼마켓과 다른 한국 슈퍼마켓

 
로렌 싱어가 TED 강연에서 자신이 3년 동안 만든 쓰레기를 담은 유리병을 보여주고 있다. (TEDx Talks 유튜브 캡처)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로렌 싱어가 TED 강연에서 자신이 3년 동안 만든 쓰레기를 담은 유리병을 보여주고 있다. (TEDx Talks 유튜브 캡처)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주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작도 하기 전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무작정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될 일일까 싶었다. 구글 검색창에 ‘쓰레기 없이 살기’, ‘zero waste life’ 따위를 생각나는대로 입력했다. 

검색결과 창을 살펴보다 로렌 싱어(Lauren Singer)라는 사람이 2015년에 한 TED 강의를 발견했다. 로렌 싱어는 강의를 시작하며 한 손에 들어가는 크기의 유리병을 들여보였다. 그 속에는 옷에 붙어있던 택, 끈 따위가 들어있었다. 로렌 싱어는 “이게 내가 지난 3년 동안 만든 모든 쓰레기”라고 입을 뗐다. 

3년 동안 제로웨이스트라이프(Zero Waste Life)를 실천하고 있다는 로렌 싱어는 제로웨이스트라이프를 “어떤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 것.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거나, 쓰레기통에 들어갈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길에 껌을 뱉지도 않는 생활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제로웨이스트라이프가) 실천하기 매우 어려울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다”면서 “나도 일반적인, 게으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로렌 싱어의 말에 용기를 얻어 로렌 싱어가 블로그에 제시한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한 초보자 가이드’과 ‘돈 들이지 않고 쓰레기를 없애는 10가지 방법’ 등을 따라 주말 이틀을 보내보기로 했다. 로렌 싱어가 제시한 제로웨이스트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한 10가지 방법은 아래와 같다. 이 가운데 당장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항들을 시도해봤다. 유튜브에 올라온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삶을 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도 참고했다. 

➀플라스틱에 ‘NO’라고 말하라

➁새 옷 대신 중고옷을 입어라

➂집에서 커피나 식사를 만들어 마시고 먹어라

➃독서취향이 비슷한 친구와 책을 교환하라

➄비닐쇼핑백 대신 직물로 만든 장바구니를 써라

➅페이퍼 타월과 이별하라

➆플라스틱 물병 대신 다회용 물병을 써라

➇화장을 심플하게 해라

➈청소용품을 직접 만들어라

➉무엇을 버리는지 파악하라

◇쓰레기통을 엎어보니 (방법 ➉)

어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엎었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어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엎었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로렌 싱어는 자신이 어떤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제로웨이스트라이프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어떤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지 알아야 쓰레기 발생량을 줄일 방안을 찾아 제로웨이스트라이프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책상 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바닥에 엎었다.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은지는 공들여 하나하나 숫자를 세보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맛을 들인 탄산수 캔 16개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탄산수 캔 말고는 지난달 금연을 시작하며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씹고 버린 껌 종이 서너개, 찢어버린 영수증, 어디선가 받아온 보도자료 등이 있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대안 찾기 (방법 ➂➅)

로렌 싱어는 이어 쓰레기를 만들지 않거나, 덜 만드는 제품 사용을 우선하라고 조언했다.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구입하는 대신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액상형 샴푸 대신 샴푸바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는 다소 막연한 아이디어를 구체적 행동 지침 하나하나로 나눠서 접근하란 것이다.

탄산이 주는 짜릿함을 포기하기는 힘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탄산수 제조기를 검색했다. 저렴한 축에 드는 제품은 10만원이 조금 넘었지만 비싼 모델은 가격이 30만원에 가까웠다. 지금 사서 마시는 탄산수 캔(350㎖)은 24개에 1만900원이다. 저렴한 제품을 산다고 해도 지금 즐겨 마시는 탄산수를 200캔도 넘게 마실 수 있는 금액이다. 

선뜻 결제하기에 가격도 부담스러웠지만 탄산수를 앞으로 그렇게나 많이 마실까, 그리고 탄산수 제조기를 사면 또다른 미래의 쓰레기를 늘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탄산수는 좀 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뒤 크기는 손바닥보다 작지만 250g 용량의 샴푸 3개에 해당하는 성능을 지녔다는 샴푸바를 하나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짜거나 부착된 펌프를 눌러 사용하는 익숙한 액체 형태의 샴푸와 달리 샴푸바는 비누를 쓰는 것처럼 문질러서 거품을 내는 방식으로 쓰는 물건이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대신 커피를 직접 내렸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대신 커피를 직접 내렸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온라인 쇼핑을 마친 뒤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로렌 싱어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집 앞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대신 집에서 내려서 마시기로 했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테이크아웃 컵, 뚜껑, 슬리브에 빨대도 포함하면 4개나 나올 수 있던 쓰레기는 종이 커피필터 한 장으로 줄었다. 

커피를 내리면서도 로렌 싱어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소소한 부분이지만 노력했다. 잘못해서 싱크대에 흐른 커피를 닦는 데 키친 타월이 아닌 행주를 썼다. 키친타월은 쓱쓱 닦아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 됐지만, 행주는 흐른 커피를 닦아낸 뒤 다시 흐르는 물에 빨아야했다. 조금 더 일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새 옷 대신 중고 의류・책은 친구와 바꿔서 읽기 (➁➃)

로렌 싱어는 새로운 옷을 사기보다는 중고 의류를 구입하길 권했다. 새로운 옷을 구매함으로써 새로운 쓰레기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 추가로 필요한 옷이 떠오르지 않아 다음 가이드라인을 봤다. 매번 새로운 책을 사는 것은 돈도 많이 들어가는 데다 쓰레기가 더 많아지는 일이기도 하니 독서취향이 유사한 친구와 책을 바꿔서 읽으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가지 조언을 응용해 보고 싶었던 책 두 권을 중고서점에서 사기로 했다. 동네를 오가다 지나친 몇몇 중고서점이 생각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마침 근처 중고서점 두 곳에 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마크 릴라가 쓴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는 1만4500원인 것을 8800원, 파커 J. 파머가 지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1만5000원인 것을 9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샀다. 

중고서점에서 중고책 2권을 샀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중고서점에서 중고책 2권을 샀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제로웨이스트라이프를 실천하며 돈도 아낀 셈이다. 로렌 싱어가 밝힌 제로웨이스트라이프의 장점 가운데 하나인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집에서 신촌으로, 신촌에서 합정으로, 또 합정에서 집으로 걸어다녔으니 운동을 하는 덤도 챙겼다. 

◇비닐 쇼핑백 대신 장바구니, 플라스틱은 거부하기 (방법 ➀➄)

로렌 싱어가 TED 강연 중 제시한 제로웨이스트라이프 실천법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방법이다. 비닐 쇼핑백을 사용하는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는 장바구니를 하는 것이다. 문고리에 걸어놨던 에코백을 챙기며 생각했다. 플라스틱과 비닐없이 쇼핑을 끝내고 돌아올 수 있을까. 스마트폰 메모장에 빵, 우유, 계란, 과일, 토마토, 콩나물 등을 적고 집을 나섰다. 

쓰레기 없는 삶을 사는 로렌 카터(Lauren Carter)와 오베론 카터(Oberon Carter) 가족이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 속 호주 슈퍼마켓과 집 앞에 있는 한국 슈퍼마켓은 너무나 달랐다. 장을 보러 나선 카터 가족은 준비해간 주머니에 곡물가루를 담고, 유리병에 올리브오일을 따랐다. 정육점 직원은 오베론 카터 씨가 내민 통에 고기를 담아줬다. 

주머니에 쑤셔 넣은 에코백 말고는 따로 식료품을 담을 주머니도, 우유를 담을 병도 준비해가지 않았지만 그런 물건들을 챙겨갔어도 소용이 없었다. 토마토와 콩나물은 비닐봉지에 포장돼 있었고, 할인 판매 중인 애플망고는 한알 한알 스티로폼 소재로 만든 그물망이 감싸고 있었다. 슈퍼마켓 건너편 빵집에서 마주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종이팩에 포장된 우유가 진열돼 있었다. 식빵, 크루아상, 빵오쇼콜라, 크로핀 등 보이는 모든 빵은 비닐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장을 보고오니 비닐봉지 5개와 스티로폼 그물망 3개가 생겼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장을 보고오니 비닐봉지 5개와 스티로폼 그물망 3개가 생겼다. (김형수 기자) 2020.3.2/그린포스트코리아

카터 가족처럼 주머니를 챙겨서 장을 보러 갔더라도, 비닐 포장에서 토마토와 빵을 꺼내서 주머니에 담아가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비닐봉투는 빵집에서든 슈퍼마켓에서든 가정집에서든 아무튼 쓰레기통에 버려질 운명이 뻔한데 말이다. 결국 플라스틱에 ‘NO’를 외치라고 했던 첫 번째 가이드라인을 어기게 됐다.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상품을 한아름 구매한 뒤 다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근처에 카터 가족이 방문했던 것처럼 고객들이 준비해간 용기나 주머니에 상품을 담아가는 방식으로 곡물, 파스타, 견과류 등을 살 수 있는 식료품점이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휴점 중이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도 마포구에서 성동구까지 현미, 콩, 캐슈넛을 사러 갈 마음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행동에 옮기지 못한 가이드라인 세 개

➆플라스틱 물병 대신 다회용 물병을 써라

➇화장을 심플하게 해라

➈청소용품이나 생활용품를 직접 만들어라

위에 열거한 세 가지 과제는 도전해보지 못했다. 집에서 생수를 사먹지 않고 필터가 들어가는 정수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말 동안 플라스틱 물병은 손에 갤댈 기회도 없었다. 코로나19 탓에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며 외출을 꺼린 것도 한몫했다. 

세수를 하고 나와 토너, 로션을 바르면 끝이고 더해봐야 선블록을 바르는 수준이라 화장에선 더 줄일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 다양한 뷰티 관련 제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쉽게 버리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로렌 싱어의 조언은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것 같다. 로렌 싱어는 립 글로스 대신 코코넛 오일을 써보라고 권하는 등 대안도 제시했다. 

사놓은 청소용품과 생활용품 넉넉히 남아있는 상황이라 세제나 치약 등을 직접 제조하지도 않았다. 로렌 싱어는 어떤 아이템이 수명을 다하면 갖고 있던 것보다 더 지속가능한 제품으로 하나씩 대체하며 제로웨이스트라이프를 실천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10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지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로렌 싱어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되뇌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로렌 싱어는 TED 강연에서 베이킹 소다로 치약을 만드는 것으로 DIY에 첫발을 디딘 후 이후에는 데오드란트, 로션 등도 직접 만들어서 쓴다고 했다. 로렌 싱어는 직접 만든 청소용품이나 생활용품의 장점으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자연과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덜 들어간 것을 쓸 수 있을뿐만 아니라 향이나 용기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서 쓸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로렌 싱어가 치약 재료로 썼다고 밝힌 베이킹 소다는 구연산, 과탄산나트륨과 함께 ‘천연세제 3총사’로 꼽힐 정도로 환경 친화적인 재료로 꼽힌다. 치약에서 나아가 주방세제, 샴푸 등을 대체하는 데도 쓰이는 등 활용도 범위가 넓다. 로렌 싱어도 애플 사이다, 식초 등과 베이킹 소다를 활용해 집을 청소해보라고 권한다. 국토환경재단은 “베이킹 소다는 탄산수소나트륨이라는 약알칼리성 천연 미네랄 물질이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적고 인체에도 해롭지 않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제로웨이스트라이프, 혼자선 힘에 부친다

로렌 싱어의 제로웨이스트라이프 가이드라인을 따라 이틀을 지내보니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사항과 그렇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됐다. 새책 대신 중고책을 사고, 페이퍼 타월 대신 행주를 쓰고,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쓰는 정도의 일들은 혼자서도 조금 신경쓰면 해낼 수 있었다.

반면 플라스틱과 비닐없는 장보기는 혼자의 힘으로는 실천하기가 힘들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여전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인식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화장을 덜하고, 화장품을 조금만 살 수 있을지에도 의문부호가 따라 붙었다. 제로웨이스트라이프는 아니더라도 쓰레기를 덜 만드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나 혼자 만의 한걸음이 아닌 모두의 반걸음이 필요한 셈이다. 사회 진보를 향한 운동이 으레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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