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vs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정면 대결
남매 운명 가를 한진칼 주주총회 코 앞...표심 잡기 경쟁 날로 치열
조현아 연합군 추천 사내이사 후보 자진사퇴, 주주 향배 '관심'

 
 
 
고 조양호 회장 후계를 둘러싼 한진그룹의 내부 불협화음이 전해지면서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한진그룹 빌딩, 본사 DB)
한진그룹을 둘러싸고 ‘남매의 난’ 전운이 감돈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의 표심 잡기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진그룹 빌딩, 본사 DB)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한진그룹을 둘러싸고 ‘남매의 난’이 현실화한 가운데, 다툼이 잦아들기보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더욱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가족끼리 화합하라”던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남매들은 과연 지킬 수 있을까.

한진가(家) ‘남매의 난’을 둘러싸고 연일 이슈가 터지는 가운데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조 전 부사장 등 이른바 ‘3자 연합’이 추천한 이사 후보 중 한명이 사실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지지하면서 자진 사퇴한 것. ‘남매의 난’이 점입가경인 가운데 주주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자 연합’ 측은 지난 13일 한진칼 이사회에 주주제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들은 현 경영진의 교체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사내이사 후보들을 추천했다.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대한항공 출신)도 후보군에 포함됐다. 하지만 김 후보가 최근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상무는 "3자 연합이 주장하는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 너무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진그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원태 현 회장에게 힘이 실릴 수 있는 발언이다.

앞서 17일에는 한진그룹 계열 노동조합이 조 전 부사장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최근 기세등등하던 조현아 전 부사장과 3자 연합 측의 입지가 다소 좁아졌다는 평가다.

◇ 지난 연말 불 붙은 남매의 난, 갈라진 총수일가

한진그룹을 둘러싼 ‘남매의 난’이 본격적으로 불 붙은 것은 지난 연말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은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가족 공동 경영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직설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 전 부사장은 “상속인으로서 유훈에 따라 그룹 발전을 적극 모색하고자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남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연합전선을 통해 조 회장 측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선대 고 조양호 회장은 후계자를 지목하거나 자녀들이 계열사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 없이 갑작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후 한진 일가는 고 조양호 회장이 보유했던 한진칼 지분을 법적 상속 비율에 따라 나눠 상속 받았다.

한진그룹 경영권 다툼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6월이다. 소위 ‘강성부펀드’로 알려진 ‘KCGI’의 이름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KCGI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을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폈다.

당시 재계에서는 2020년 3월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KCGI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총수 일가가 일단은 힙을 합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3남매가 각자 어느 그룹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는 일단 나중 문제고, 우선 KCGI와의 지분 다툼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느냐는 관측이었다.

실제로 조원태 회장은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를 열고 “아버님 뜻에 따라 맡은 분야를 충실하기로 셋이 합의했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을 두고 남매들이 서로 합의해 가족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발표내용과 다르게 조현아 전 부사장측은 반박에 나섰다.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해 어떤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29일 한진그룹 임원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점부터 총수일가와 KCGI의 다툼이 아니라 ‘남매의 난’으로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지난 1월 30일 우한행 전세기에 탑승하기 전 조 회장의 모습 (뉴스핌 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지난 1월 30일 우한행 전세기에 탑승하기 전 조 회장의 모습 (뉴스핌 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 더 센 ‘아군’ 찾아라, 우호 지분 확보 경쟁

업계에서는 임원 인사를 계기로 조 회장 체제에 본격적으로 힘이 실렸고, 조 전 부사장이 이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남매 중 가장 먼저 경영 일선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회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조 전 부사장이 언급한 “(조원태 회장이)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거나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발언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진칼은 3월 열릴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조 회장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으면 연임한다. 지분 10%를 보유한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로 알려진 가운데, 조현민 한진칼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 다른 가족, 그리고 나머지 주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가 남매의 운명을 가른다.

총수 일가의 한진칼 소유 지분이 엇비슷한 상황, KCGI와 대호개발 등 반도건설 계열사, 국민연금 등이 주주총회의 ‘큰손’으로 구분된다. 이론상 총수 일가 중 누군가 이탈해 다른 주주들과 결합하면 최대주주가 바뀔 수도 있다. 델타항공의 표심과 3자 연합 결성 등에 그동안 관심이 집중된 이유다.

만일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보유한 지분이나 경영권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어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 2월 들어 본격화한 표심 전쟁, 모친과 여동생은 누구 편?

‘남매의 난’이 구체화한 것은 지난 1월 31일부터다. 한진칼 단독 최대주주 KCGI, 지분 8%를 확보한 반도건설과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른바 ‘3자 주주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 세 주주는 경영의 일선에 나서지 않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혁신적 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 움직임은 연초부터 포착됐다. 새해 들어 조 전 부사장이 이른바 ‘3자 회동’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았고, 회동설이 나온 후 KCGI가 조 회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KCGI는 1월 21일 “최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3월 주총 업무를 돕기 위해 대한항공 임직원 여러 명을 한진칼로 파견 보냈다는 보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KCGI 강성부 대표는 평소 대주주의 횡령이나 편법증여 등을 바로잡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3자 연합’ 지분을 합치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 회장 우호 지분으로 평가받는 델타항공을 합친 지분보다 많다.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누구 측에 설지는 아직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후로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자택에서 심하게 다툰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다툼의 원인도 지분 대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정석기업이 그룹 내 부동산 등을 관리하며 소위 ‘알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 고문의 의중이 어디로 향했는지에 재계의 관심이 모인다.

재벌가 자택에서 일어난 개인적인 다툼이 언론에 빠르게 공개되고, 경영권 다툼을 벌이던 주주가 총수 일가와 손을 잡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남매의 관계는 현재 골이 깊은 상태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결국 3월 주총에서의 표대결이 중요하며, 앞으로 개인 주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현아 전 대항항공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대한항공 제공)2018.3.29/그린포스트코리아
조현아 전 부사장은 '3자 주주연합'을 구성해 연일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3자연합이 보유한 지분이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제공, 본사DB) / 그린포스트코리아

◇ 한진그룹 노동조합 조 전 부사장 비판 속, KCGI는 경영진에 ‘공개토론’ 제의

이런 가운데 한진그룹 노동조합 3곳이 17일 3자 연합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항공 노조와 ㈜한진 노조, 한국공항 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조현아 전 부사장을 향해 “이제 와서 또 무슨 염치로 그룹을 탐내는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 노조는 “투기 펀드에 몰려든 돈을 불려 가진 자의 배를 불리고자 혈안이 된 KCGI의 한진그룹 공중 분할 계획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그들의 안중엔 노동자의 삶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반도건설은 상도덕을 지키고 본업에 충실하길 바란다”며 직설화법을 썼다.

앞서 대한항공 노조도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3자 연합의 주주제안에 대해 “허울 좋은 전문 경영인으로 내세운 인물은 항공산업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그들 3자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 전 부사장의 수족들로 이뤄져 있다”면서, 3자연합이 물류·항공산업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 등이 조 회장에게 힘을 실을 가운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며 총수 일가를 압박해온 KCGI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사장)측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KCGI는 17일 “한진그룹 경영진으로부터 그룹에 당면한 경영 위기에 대한 입장을 듣고 주주 연합의 제안에 대한 그룹의 수용 여부를 확인하며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동료 주주, 임직원, 고객들의 의견을 나누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2월 중 조원태·석태수 대표이사와 공개 토론을 진행하자는 것이 KCGI 제안이다.

KCGI는 “한진그룹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도 낙후된 지배 구조 때문에 시장에서 회사의 실제 가치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KCGI가 2018년부터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촉구해왔으나 한진그룹 경영진은 제대로 된 의지나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3자 연합은 지난 13일 한진칼에 주주제안서를 보내 이사 후보 8명을 대거 추천하고 주주총회 전자 투표 도입, 이사 선임 시 개별투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등을 제안한 바 있다.

◇ 3월 25일 주총 전까지 주주 표심잡기 총력전 예상

각자 자신에게 우호적인 주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원태 회장은 최근 우한행 전세기에 직접 탑승하고 직원 자녀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기 위한 활동을 거듭했다.

조 회장은 최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직원 자녀 720명에게 축하카드와 학용품 선물세트를 전달하며 '가족친화경영'에 나섰다.

조 회장은 카드에 "저는 조원태 아저씨라고 해요. 부모님과 함께 대한항공에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여러분 부모님의 회사 생활처럼 신나고 멋지게 학교생활 하기를 아저씨도 함께 응원할게요"라고 축하메시지를 전했다.

재계에는 현재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조원태 회장이 자신의 입지를 꾸준히 다져왔고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여론에 오르내린 경험이 있는데다가, 재계에 장남 승계 정서가 아직 남아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회장이 우세하다’는 시선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재벌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을 감안하면 3자 주주연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주주도 있다’고 본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며 주주들의 표심 잡기에 나선 가운데, 3자 연합이 추천한 사내이사 후보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쓸리고 있다. 3자 연합은 "이사 후보 1명의 사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한진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25일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 소액주주 등의 표심을 얻기 위한 여론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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