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으로 읽는 대한민국 생활 환경
영화 ‘기생충’으로 읽는 대한민국 생활 환경
  • 이한 기자
  • 승인 2020.02.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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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와 냄새 밴 반지하, 집 앞을 지나는 소독차와 집에 기생하는 곱등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산수경석의 나비효과...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생활 환경 관련 장치와 장면들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주요 사건과 결말에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기사를 읽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속에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생활 환경이 등장한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속에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생활 환경이 등장한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모든 예술은 저마다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깊을수록 잔상은 더 오래 남는다. 요즘 가장 뜨거운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을 읽는 여러 키워드 가운데, 화면에 등장하는 생활 환경 관련 장면을 되짚어본다.

오스카 4관왕 업적을 달성한 ‘기생충’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질서를 다뤘고, 전통적인 선악구분에서 벗어났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다.

작품 속 배경은 마치 ‘불편한 진실’과도 같다. 기택네 가족은 벌레가 나오고 습기와 냄새가 밴 반지하에서 산다. 돈이 없는 이들은 이웃 와이파이를 훔쳐 쓴다. 집앞에서 소독차가 약을 뿌리자 가족들은 ‘소독하자’며 창문을 열고 그 약으로 집안에 스며든 벌레를 죽인다.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햇빛이 잘 드는 박사장네 저택은 고급스런 물건으로 가득하다. 신선한 먹거리가 넘치고 라면을 끓일 때도 소고기를 듬뿍 넣는다. 박사장네 집에서는 낭만적으로 보이는 모처럼의 비가 기택 가족과 이웃에게는 재산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천재지변이다.

영화의 주된 소재 중 하나는 냄새다. 사람은 냄새에 따라 때로는 안정감을, 반대로 때로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는 기택의 냄새를 불쾌하게 여긴 박사장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기택의 모습이 관객에게 돌연 긴장을 준다. 영화 후반부에 벌어지는 큰 사건도 냄새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영화 곳곳에는 ‘생활 환경’에 대한 묘사들이 이어진다. 그것은 부자의 환경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환경일 수도 있다. 때로는 같은 소재지만 서로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1 습기와 냄새가 밴 반지하

영화 속 기택의 반지하 집은 세트장이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해당 공간이 재조명되고 BBC와 아사히가 반지하를 기사로 다룰 만큼 관심이 이어지자 고양시가 세트를 복원하겠다고 나섰다.

물이 흘러들기 쉽고 채광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기택네 가족의 집에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순간은 화장실 변기 옆에서 어렵게 와이파이 신호를 잡았을 때 뿐이다. 빛이 적고 물이 많은 이 집은 습기나 냄새에 취약하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이 자세히 묘사된다. 기택의 집은 폭우에 속수무책 잠기고, 가족들의 몸과 옷에는 이미 오랜 냄새가 배었다. 

박사장은 기택에게서 이 냄새를 느끼고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냄새를 통해 사람의 상황이나 형편이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붕괴되는 어떤 순간 같은 것들을 다뤘다”며 연출의 변을 밝힌 바 있다.

물이 흘러들기 쉽고 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는 습기와 냄새에 취약하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물이 흘러들기 쉽고 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는 습기와 냄새에 취약하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2 반지하에 기생하다 소독차의 공격(?) 받는 곱등이

영화 초반부, 기택의 집에서는 곱등이가 발견된다. 기택은 그 벌레를 손으로 툭 쳐낸다. 마침 동네에는 소독차가 다닌다. ‘요즘도 소독차가 있나’ 싶을 무렵, 기택의 가족들은 땅과 연결된 창문을 활짝 열고 집안을 소독(?)한다. 그리고 그 곱등이도 소독약으로 없애려고 한다.

곱등이는 습한 곳에 숨어 산다. 햇살 좋은 날, 볓과 바람이 잘 드는 집에 들어올 확률이 적다는 얘기다. 박사장네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곤충이 기택의 집에 굳이 나타났다가 소독된 이유다. 기택 가족이 박사장에게 ‘기생(?)’하려고 했다면, 그 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선을 넘은’ 부분이 있다면, 과연 곱등이는 어땠을까?

기생충을 번역한 평론가 달시 파켓은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곱등이는 외국에서 잘 안 보이는 곤충”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바퀴벌레가 대신 다른 이름(stink bug. 노린재)으로 번역했다. 왜냐고? 봉준호 감독의 과거 작품 ‘설국열차>’에 이미 바퀴벌레가 나왔기 때문이다.

#3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알린 산수경석

수석(돌)은 이 영화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기택의 아들 기우는 친구로부터 할아버지가 수집했다는 수석 산수경석을 선물 받는다. 재물과 운을 가져다준다는 덕담과 함께다. 실제로 기택 가족은 승승장구(?)하고 기우는 신분상승의 꿈까지 꾼다. 하지만 결국 돌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기택 가족의 삶은 그 전보다 더 나빠졌다.

산수경석은 산이나 호수, 섬 등 자연의 정경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수석을 말한다. 자연속에 놓인 돌이 집으로 온 게 문제였을까. 영화에서 이 돌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들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사건의 시작과 절정, 그리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결말 모두 이 돌과 함께다.

#4 모든 것이 잘 정돈된 대저택

박사장의 집은 모든 것이 반대다. 계단을 올라가야 밟을 수 있는 정원은 넓고 환하다. 거실을 내다보는 통창도 햇빛이 잘 든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깔끔하고 완벽하다.

절제된 컬러에 반듯한 형태, 가구는 고급스럽고 그럴듯한 미술작품도 걸려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장이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그려졌다.

반지하에서는 벽 위에 달린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취객이 노상방뇨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행인들은 기택의 집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박사장의 모던한 대저택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집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러나 (영화에서 표현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분명 그런 집을 궁금해할 터다. 기택네 반지하와의 극단적인 대비다.

모든것이 잘 갖춰져있는 넓고 밝은 대저택. 반지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모든것이 잘 갖춰져있는 넓고 밝은 대저택. 반지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 그린포스트코리아

#5 복숭아 알레르기와 결핵

박사장 가족의 가사도우미 문광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복숭아 껍질을 살살 긁어 문광의 뒤에서 ‘후’하고 한번 불기만 했는데도 기침과 콧물로 괴로워한다. 실제로 복숭아를 비롯한 음식 알레르기는 사람에 따라 그 증세가 매우 무겁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우와 기정은 문광을 박사장 집에서 쫓아내고 어머니를 그 자리에 들이기 위해 알레르기를 결핵으로 위장한다. 결국 문광은 집을 떠나고, 이때부터 ‘관객들이 기생충이라고 믿었던 가족’과 ‘원래부터 오랫동안 기생하던 가족’이 치열하게 맞붙는다.

참고로 한마디 덧붙이면, 결핵이라는 단어를 듣고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사던 옛날 생각만 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리나라는 노인 결핵 인구가 늘어나는 등 여전히 결핵 관련  결핵균은 공기를 통해서 감염되고 감염력도 높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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