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조사단, 발화지점‧유사 운영기록 배터리 분석결과…배터리 결함 추정
제조사들, 화재원인 근거 들어 반박
양적 팽창에만 치중한 공급정책…여전한 ‘사후약방문’
재생에너지 업계, ESS 연계 설비 이제 조심스러워

에너지저장장치(ESS)(산업통상자원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에너지저장장치(ESS)(산업통상자원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조사단이 최근 ESS 화재 원인을 배터리 결함으로 추정해 발표하면서 관련 업계가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배터리 제조사의 정면 반박은 물론 재생에너지 관련 업계까지 영향을 미쳐 산업 전반에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ESS는 말 그대로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미리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날씨 등 외부환경에 의해 발전출력 변동이 심한 신재생에너지원과 연계해 전기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다. 최근 ESS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스마트 그리드에서의 핵심 설비로 주목받았지만 두 차례의 화재 조사단의 발표로 그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 화재 5곳 중 4곳이 배터리가 원인?

ESS 화재 조사단은 2019년 6월 이후 발생한 5건의 화재 중 4건을 배터리 결함에 의한 화재로 추정된다고 6일 발표했다. 화재 원인을 배터리 결함으로 지목한 이유는 발화지점이 배터리라는 점이다. 여기에 유사한 운영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수거, 수집‧분해한 결과 배터리가 화재의 주원인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이번 4곳의 화재 현장 중 화재 원인을 배터리 이상으로 판단한 곳은 충남 예산·강원 평창·경북 군위·경남 김해다. 나머지 한 곳인 경남 하동은 노출된 가압 충전부 외부 이물이 접촉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충남 예산의 경우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흔적이 발견됐고 유사한 운영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수거해 해체‧분석한 결과,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점착됐거나 배터리 분리막에서 리튬-석출물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 평창의 경우 과거 운영기록에서 충전 시 상한 전압과 방전 시 하한 전압의 범위를 넘는 충‧방전 현상이 발견됐고 배터리 보호기능이 미작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사한 운영기록을 통해 양극판 내부손상이 확인됐고 분리막에서 구리성분이 검출됐다.
 
경북 군위도 현장조사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흔적을 확인, 전소하지 않은 남은 배터리와 유사한 운영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음극활 물질 돌기 형성이 확인됐다.

경남 김해의 경우 그동안의 운영기록을 분석한 결과 6개월 동안 화재가 발생한 지점의 배터리들 간에 전압 편차가 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역시 유사 사업장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양극판 접힘 현상이 발견되고 분리막과 음극판에 갈변‧황색 반점이 확인, 구리와 나트륨 성분 등이 검출됐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은 이러한 조사단의 발표에 거세게 반발 중이다. 조사단이 이유로 제시한 것은 물론 ESS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화재 원인의 경우 복합적 요소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6월 조사단이 ESS 화재 원인을 관리‧운영부실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표한 이후 10여개월이 지나 배터리 결함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하자 그 파장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동민 산업통상자원부 자원산업정책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문동민 산업통상자원부 자원산업정책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제조사들 반박…일각에선 정부의 ESS 양적 팽창 치중 지적

LG화학은 구체적으로 지난 4개월간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실시한 자체 실증실험에서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는 점과 조사단에서 발견한 양극 파편, 리튬석출물, 음극 활물질 돌기, 용융 흔적 등은 일반적인 현상 또는 실험을 통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 구체적으로 4곳의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단의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삼성SDI도 각 화재 장소마다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특히 평창 및 김해의 경우 조사단이 발표한 배터리는 화재 현장이 아닌 다른 현장의 배터리라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평창의 경우 조사단이 제시한 운영데이터는 화재 발생 3개월 전 데이터이며 해석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UV(UnderVoltage)보호 기능이 작동했으나 조사단이 제출한 내용에는 해당 사항이 누락됐다는 등의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삼성SDI측은 “지난해 말, 평창 및 김해 사이트에 설치된 배터리와 유사한 시기에 제조된 배터리가 적용된 다른 사이트의 데이터 및 제품을 조사단이 요청했다“며 ”인천 영흥, 경남 합천에 설치된 제품을 전달했고 조사단은 이 제품을 분석해 발표내용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단이 분석한 내용은 화재가 발생한 사이트가 아닌 동일한 시기에 제조되어 다른 현장에 설치‧운영 중인 배터리를 분석하여 나온 결과”라며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맞다면 동일한 배터리가 적용된 유사 사이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조사의 이례적인 정면 반박이 이뤄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에 따라 양적 팽창에 치중한 나머지 안전규정과 화재방지 등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정해진 기간 내에 ESS를 설치할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몰 방식의 지원 정책으로 기술개발과 충분한 테스트 등 안전 문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설치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ESS는 리튬배터리 본체와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배터리 관리시스템), PCS(Power Conditioning System, 전력변환장치), 소프트웨어 등으로 구성되는 데 모듈 및 시스템 수준에서 기술적 검증을 수행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부재한 상황에서 ESS 보급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호주, 유럽의 경우 ESS 설치 규정이 사전에 마련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 화재방지협회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모듈, 랙, 셀 등의 품질 규정과 특정 화재 대책 등을 마련했고 설치 시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이러한 세세한 규정을 마련하는 데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6월까지 23건의 ESS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자 뒤늦게 대책을 마련해 수습하기 바빴다. KS표준 제정, 정기 점검주기 4년에서 1~2년으로 단축, ESS를 특정 소방대상물로 지정하는 등 화재 대책 이전에 제대로 된 규정도 마련하지 않았다. 기본요금할인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등으로 해당 시장만 우선 성장시켜 놓은 셈이다. 즉, 사후약방문에 그치는 여전한 탁상행정을 보여줬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국 ESS 사업장 총 1173개 중 안전조치를 실제 이행했거나 아예 ESS를 철거한 업체는 104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실제 안전조치 이행률은 8.8%에 그쳤다.

이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규 설비는 안전장치 기준이 있는데 이미 설치된 곳들은 강제 규정이 현재 없다"며 "업계에 협조 요청하고 있다. 관련 기관에 조치하겠다"고 답해 정부의 부실한 대책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한 ESS가 설치된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 운영되는 등 관리 체계의 부실도 꼬집었다. 해외 ESS는 온도 및 습도를 관리하는 엄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해당 부품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항온·항습기 및 소방시설이 갖춰진 전용 컨테이너 또는 전용 건물을에 설치한다. 그러나 이번 화재의 경우 대부분의 ESS가 산지나 해안가에 설치, 큰 일교차에 의한 결로 현상은 물론 제대로 된 건물도 아닌 조립식 가건물에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한 전문가는 “이번 조사단 2차 발표에 업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정부 발표에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큰 그림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ESS의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다 보니 발생한 것으로 질적인 관리 측면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2차 조사결과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문제로 추정하자 제조회사 측에서 반발 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같은 부품의 경우 해외에서 화재가 한 건도 없는데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경우 배터리 문제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 구성도(출처 SK 채용 블로그,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스템 구성도(출처 SK 채용 블로그,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 ESS 화재 후폭풍, 재생에너지 업계 전반에 영향 가능성

문제는 정부가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 가운데 ESS 화재 후폭풍이 재생에너지 업계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우 더 이상 ESS 연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기존 ESS를 갖춘 경우 그동안 화재를 이유로 보험 갱신이 힘들거나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에 화재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논란이 장기화 될 경우 신규 태양‧풍력발전에 ESS 설치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6일 내놓은 ESS 화재 안전 대책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기존 ESS 배터리의 충전율을 80~90%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정말 배터리가 원인일 경우 해당 배터리를 교체해야지 용량을 제한하는 대책을 내놓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업계는 수익성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ESS에 대한 관련 업계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으며 ESS 연계 자체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있다. 여기에 정부가 가중치 기간을 연장해주는 대책을 내놨지만 업계는 10~20% 출력 제한에 따른 실질적 영업손실을 보상해줄 주체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ESS에 대한 호응도가 좋았으나 계속되는 화재로 이미지가 안 좋아져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REC 하락은 물론 ESS를 설치할 경우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가 효율 측면은 물론 보험료 상승으로 수익성이 맞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연달아 발생한 ESS 화재로 보험사에서 보험 가입을 받아주지 않거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미 설치된 곳은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불분명한 책임소재가 장기간 이어지면 신규 설치에 고민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정부 대책으로 80~90%로 출력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어느 누가 책임을 질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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