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골퍼들이 일생에 한번은 라운드하고 싶어한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
(전세계 골퍼들이 일생에 한번은 라운드하고 싶어한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

 

O...1990년대후반 생전의 JP와 골프를 한 번 친 일이 있다. DJP 연합정부에서 고인이 총리일 때 출입기자들 격려 차원 명목의 라운드였다.

행사를 마치고 저녁 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은 일견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갈수록 마음에 와 닿는다.

"많은 일을 해 봤지만 이거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어. 당최 스스로 만족하게 친 날이 없어. 정말이야. 그리구 뭘 배우고 느끼게 돼. 여러분들 생각은 어때요?"

구력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히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한동안은 싫다는 아내까지 데리고 골프장을 꽤나 많이 다녔다. 프로들 골프대회를 구경하는,플레이어가 아닌 갤러리였지만 여하간 좋았다.

탁 트인 자연속에서 걷는 것도 좋았고 프로들의 제대로 된 샷과 퍼팅을 구경하는 것 또한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것도 머리를 굴려 챔피언조는 피하고 우승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선수와 캐디들을 따라다니면서 제대로 된 골프 공부(?)를 하려 애썼다.

어떨 때는 왜 우리 조를 따라 다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학습과 제대로 된 관전때문'이라는 답변을 선수들도 캐디들도 이해하는 표정들이었다.

아내도 그랬지만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운동같은데 왜 그리 고민들을 하냐고 모르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 술 더 떠 야구선수들은 살아들어오는 공을 홈런도 치고 안타도 치는데 잔디위에 가만히 누워 있는 공을 왜 못치느냐고 열을 내기도 한다.

늘상 대답은 하나다. "해 보시라! 여러분들이 TV에서 보는 사람들은 75억 지구상 인류, 아니면 5000만 우리 국민 가운데 골프를 가장 잘치는 남녀 100여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올해로 골프를 시작한 지 30년이 됐으나 꽃 한 번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젊고 배가 하나 없을 때도 안 된 골프가 다리에 힘 빠지고 배가 나오니 스윙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데다 기본기도 없고 연습을 안하기 때문이다.

최경주 프로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골프를 쉽게 칠 수 있냐고 묻습니다.저는 지금도 하루에 500개나 1000개의 볼을 칩니다.연습만이 답입니다"

너무나 옳은 말이고 당연히 맞는 말이다.

모두가 프로나 선수같이 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우의를 다지고 사업상 교제를 위해서가 명목이라도 어느 정도는 남과 보조를 맞추어 쳐야 되는 것이 또한 골프다.

희열보다는 비탄이 많았던 탓에 어떤 구도(求道)의 길을 가는 것 같은 착각까지도 느꼈던 골프였다.

삶을, 인간을 알게 해 줬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여기에서 배웠다.

2001년 가을 그 님이 오신 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생애 한 번 기록한 80타로 받은 허름한 싱글패는 지난번 이사때 없어졌는데 찾을 길이 없어 못내 아쉽다.

우좌지간 JP의 말은 옳았다.

 

O...모든 스포츠 종목이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겠지만 골프의 그것은 '관전'에서 벗어나 내가 객체가 아닌 어떤 '주체'가 될 수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야구나 축구, 농구같이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소리지르는 것만이 아니고 나도 직접 운동한다는 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조금 황당한 비유일수도 있으나 보통 사람들이 마이클 조던과 일대일 농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기회가 닿는다면 얼마든지 타이거 우즈와 라운드는 할 수 있다.

주눅들어 어렵기는 하겠지만 챔피언 티와 레귤러 티에서 치고 핸디캡을 적용한다면 못 할 것도 없어서다.

그러나 골프라는 것이 아주 대표적인 멘탈스포츠인지라 아마도 제 기량을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리라 본다.

어쨌거나 골프는 이렇듯 직접 참여가 가능한 운동인 탓에 누구나 개인의 이야기가 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친구 몇이 모여 술한잔 하며 골프이야기를 하노라면 한 밤 새우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면 허풍 다시말해 '뻥'이 들어가게 되고 강도는 세지게 마련 아닌가

그럼에도 모두 인정하고 수용한다. 나쁜 뜻이 없음을 알고 일종의 윤활유같은 작용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위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의 스코츠데일에 있는 TPC 스코츠데일의 파 3, 16번홀 전경이다. 

현지 시간으로 2일 끝난 PGA투어 피닉스 오픈이 열린 곳인데 대회 자체보다 이 홀이 더 유명하다.

다른 대회, 다른 홀과 달리 이 곳에서는 음주와 고성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이 홀을 2만여명의 갤러리가 빙 둘러싸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광경은 참 대단하다.

그런데 앞에 언급했던 '뻥'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대회와 관련된 희한한 외신이 하나 들어왔다.

이번 대회 가간중 연인원 10만여명의 갤러리가 입장했는데 그 중 절반 가까이가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파(par) 나 버디(birdie),보기(bogey)라는 용어나 개념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생전 골프채 한 번 잡은 일이 없다는 설명도 붙었다.

어떻게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의아했지만 '맞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지방보다 서울 사는 사람중에 남산 안 가본 사람이 더 많다는 뭐 그런 논리다.

기억이 맞다면 미국에는 이것저것 포함,1만 5000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다고 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머틀 비치 같은 도시는 주변에 300여개의 골프장이 있을 정도니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미국 1년 연수할 때 살던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주변에는 차로 30분거리내에 골프장이 20개도 넘게 있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골프는 하등 새로운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시골에 어디가나 논밭이 있는 것과 같은 개념일 수 있다.

외신이 뻥이든 아니든 여하간 골프와 뻥은 실과 바늘같은 존재라 해도 맞는 말이다.

 

(골프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영국 R&A 골프클럽 올드 코스)
(골프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영국 R&A 골프클럽 올드 코스)

 

O...신종 코로나로 정신이 없어서인가, 뭔가 본말이 전도된 기분이다. 각설하고...

요즘 골프 중계를 TV로 보다 보면 전에 비해 많이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무리 세계적 선수들이라 하나 웬만한 홀은 340야드 가까이 티 샷을 보낸 후 툭 하고 웨지로 핀을 노리는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다.

워낙 티 샷을 멀리 보내 그런지 별다른 트러블에 빠지는 경우를 보기도 거의 어렵다.

달리 말하면 뭔가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600야드 가까운 파5도 드라이버와 스푼으로 뻥,뻥 날려 투 온을 가볍게 하니 경탄은 나오지만 아무튼 허탈하다.

골프가 아니라 스트롱 맨 힘 자랑 경기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전 세계 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 골프협회(USGA)가 최근 '디스턴스 인사이츠 프로젝트(Distance Insights Project)'라는 보고서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한다.

"골퍼들의 비거리가 계속 늘어 코스도 길어지고 있는데 골프의 장기적 미래에 바람직하지 않다"가 요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다양한 전략과 도전을 주된 요소로 삼는 것인데 350야드 안팎의 '뻥골프'때문에 이런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뭐 그런 뜻이리라.

타이거 우즈는 9가지 구질의 공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뻥골프는 그런 관전 요소들을 거의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1900년대 엘리트 골퍼들의 평균 비거리는 대략 200야드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는 263야드가 됐고 2003년에는 286야드, 지난해에는 294야드가 됐다고 통계는 알려준다.

특히나 지난해 세계 상위 투어프로 20명의 평균 비거리는 무려 310야드였다.(요즘은 그린 뿐 아니고 페어웨이도 딱딱해져 구르는 거리도 길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비거리가 늘어난다고 코스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18홀 코스 평균 길이는 1900년대에 5500야드 정도이던 것이 2010년대 초반 6800야드 정도로 길어졌고 최근 코스들은 대략 7200야드 안팎이다.

두 단체는 "장기적 관점에서 클럽과 공에 대해 광범위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45일 이내에 연구 주제를 설정하는 한편 1년동안 용품제조사등 당사자들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멀리, 더 높게, 더 빨리"는 올림픽의 슬로건이나 골프에서 더 멀리를 구현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골프계가 고민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야구계가 공인구의 반발력을 가끔 조절, 투타의 균형을 꾀하는 지혜를 빌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혁명적인 신병기가 나와 모든 골퍼들이 꿈의 300야드를 날리게 되는 날을 가정해 보자.

뻥일 수도 있겠으나 그건 골프가 아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양승현 편집위원]

yangsangsa@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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