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공개.. 고용노동부, 대책마련 고심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직원과 유가족의 산업재해 판정에 대해 노사정 간 논란이 뜨겁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23일 백혈병으로 사망한 직원 황모씨와 이모씨 유족 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유족급여 등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2003년 10월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 씨는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1년 9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황 씨의 아버지는 '유해물질 때문에 백혈병에 걸렸다'며 산업재해 인정과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인과관계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결국 황 씨의 아버지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다른 직원 측과 함께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직원 황모씨와 이모씨에게 나타난 백혈병의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 화학물질과 미약한 전리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발병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이들이 가장 노후화한 기흥사업장 3라인의 3베이에 설치된 수동설비에서 세척작업을 한 점을 고려하면 유해 물질에 다른 직원보다 더 많이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이번 판결은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 환경과 관련해 공인된 국가기관의 2차례 역학조사 결과와 다른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삼성전자는 "권위 있는 해외 연구기관이 실시 중인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개할 예정"이라며 "판결이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앞으로 계속될 재판을 통해 객관적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면 삼성전자측도 근로자들의 백혈병 발병과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 환경은 관련성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인력은 1만여명으로 그동안 근무했던 인력은 헤아리기 힘들다.

또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은 "삼성전자 등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총 46명에 달한다"고 주장, 추가 소송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고용부는 이번 판결에서 산업재해 인정 기준이 어떠한지, 근로복지공단의 판정 절차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산재인정 범위 확대 여부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담당자는 24일 "소송 중인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2주 뒤에 송부되는 판결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대책 마련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재완 장관은 "반도체 사업장과 백혈병 발병과는 통계적인 유의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고용부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직원의 산재 판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판결문을 입수한 뒤 고용부와 논의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현재 노사정이 참여한 `산재보험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선 산재 인정기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순영 기자 binia@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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