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업계에서는 요즘 ‘21세기 연금술’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피와 살로 이뤄진 동물을 죽이지 않고, 식물성 재료를 활용해 고기를 만들려는 시도다. 베지테리안 시장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베지테리언, 비건 음식은 차차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21세기 연금술’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을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다양한 채식 메뉴를 먹어봤다. [편집자 주]

비건 아이스크림 ‘스웨디시글래이스 스무스 바닐라' (김형수 기자) 2020.1.4/그린포스트코리아
비건 아이스크림 ‘스웨디시글래이스 스무스 바닐라' (김형수 기자) 2020.1.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비건’이라고 하면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채식주의자 가운데서도 가장 엄격한 기준에 따라 채식을 하는 비건이 꺼려하는 먹거리는 고기에 그치지 않는다. 비건의 ‘안 먹는 음식’ 목록에는 유제품, 계란 등도 포함된다. 이번에는 우유도 마시지 않는 비건들을 위해 출시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이번주 수요일 온라인쇼핑몰에서 구입한 비건 아이스크림 ‘스웨디시글래이스 스무스 바닐라(Swedish Glace Smooth Vanilla・이하 스웨디시 바닐라)’이다. 스웨디시 바닐라는 콩을 사용해 만든 아이스크림이다. 유제품이 들어가있지 않아 유당이 없는 데다, 글루텐도 들어있지 않아 유당이나 글루텐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걱정없이 먹을 수 있다. 

종이 상자를 열자 비닐로 개별 포장된 바 형태로 생긴 다소 앙증맞은 크기의 아이스크림 5개가 들어있었다. 초콜릿이 아이스크림의 겉면을 덮고 있어 바로 바닐라 아이스크림하면 떠오르는 옅은 미색을 볼 수는 없었다. 

비교를 위해 슈퍼마켓에서 가장 비슷한 맛과 형태를 지닌 상품을 골라 구입한 나뚜루의 ‘바닐라&아몬드바(이하 나뚜루 바닐라)’도 꺼내 접시에 담았다. 스웨디시 바닐라 나뚜루의 아이스크림 포장을 벗겨 접시에 올린 뒤 칼로 끝부분을 자르니 초콜릿 코팅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유 대신 콩을 주재료로 사용해 만들어진 스웨디시 바닐라의 속은 콩가루가 떠오르는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반면 우유와 유크림 등이 주로 쓰인 나뚜루 바닐라의 속은 말 그대로 새햐얀 색으로, 짙은 갈색의 초콜릿 코팅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잘라낸 스웨디시 바닐라 조각을 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맛의 반전이 일어났다. 콩을 원료로 했음에도 너무나 익숙한 우유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닐라아이스크림의 보들보들한 촉감은 돈을 내면 직원이 아이스크림 콘 위에 또아리를 튼 뱀 모양으로 올려주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게 했다. 겉을 감싸고 있는 초콜릿은 크게 쓰거나 달지 않은 데다 ‘파삭’하는 식감을 더해주며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잘 어우러졌다. 

스웨디스 글레이스 스무스 바닐라와 나뚜루를 비교해가며 먹었다. (김형수 기자) 2020.1.4/그린포스트코리아
'스웨디스 글레이스 스무스 바닐라(좌)'와 '나뚜루 바닐라&아몬드바(우)'를 비교해가며 먹었다. (김형수 기자) 2020.1.4/그린포스트코리아

그 뒤에 먹은 나뚜루 바닐라는 스웨디시 바닐라를 잊게 할 정도로 진한 우유와 초콜릿의 맛을 선사했다. 나뚜루 바닐라를 감싼 두꺼운 초콜릿 코팅은 두께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초콜릿 맛을 느끼게 했다. 안에 들어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도 초콜릿 코팅에 뒤지지 않는 진한 맛이 났다. 

나뚜루 바닐라가 넘어간 뒤 다시 스웨디시 바닐라를 먹어봤다. 무슨 맛인지 느끼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 음미했지만 나뚜루 바닐라가 지닌 맛이 상대적으로 훨씬 진했기 때문인지 스웨디시 바닐라는 무슨 맛인지 무슨 향인지 느끼기 어려웠다. 스웨디시 바닐라만 먹지 않고 나뚜루 바닐라와 비교해서 먹어보니 스웨디시 바닐라가 지닌 특징이 더 부각됐다. 스웨디시 바닐라는 나름의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방이 부족해서인지 풍미가 떨어지고 가벼운 맛이 났다.  

스웨디시 바닐라는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초콜릿 코팅도 풍미가 약한 라이트바디 아이스크림이끼 때문에 상대적으로 풀바디 아이스크림에 가까운 나뚜루 바닐라가 남긴 맛과 향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바디가 쌀뜨물이라면, 풀바디는 되게 쑨 흰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깔끔한 단맛을 낸 뒤 넘어가면 입안에 끈적끈적하고 들쩍지근한 뒷맛을 남기지 않는 점은 훌륭했다.

다만 이같은 스웨디시 바닐라와 나뚜루 바닐라의 차이는 앞선 [비건한입] 시리즈에서 다뤘던 대체육 활용 비건식품과 진짜 고기 사이에서 느꼈던 차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체육 활용 제품은 모방의 대상으로 삼은 진짜 소고기나 닭고기에 비해 맛, 향, 풍미 등 모든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질적 차이를 보였다. 

이와 달리 스웨디시 바닐라와 나뚜루 바닐라는 진한 맛을 좋아하느냐 가벼운 맛을 선호하는지에 따른 취향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연한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웨디시 바닐라는 ‘비건인만큼 맛이 좀 없더라고 참고 먹어야 해’ 따위의 소명의식이나 윤리적 다짐을 머릿속으로 되뇌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자체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뚜루 바닐라보다 크게 낮은 스웨디시 바닐라의 칼로리는 스웨디시 바닐라로 손을 향하게 만드는 또다른 경쟁력이었다. 스웨디시 바닐라(55㎖) 하나의 열량은 105㎉에 불과하다. 반면 나뚜루 바닐라(90㎖) 하나가 지닌 열량은 300㎉로 훨씬 높았다. 스웨디시 바닐라 3개는 먹어야 나뚜루 바닐라 하나를 먹은 것보다 15㎉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는 셈이다. 

기존 아이스크림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맛, 상대적으로 낮은 칼로리 등 스웨디시 바닐라가 지닌 여러 매력 포인트 들은 몇입 만에 스웨디시 바닐라 한 개를 다 먹은 뒤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비건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건 버리지 않고 조만간 다 먹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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