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한국 당구(3쿠션)의 전설' 이상천을 처음 본 것은 1977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서울 퇴계로의 어느 큰 당구장이었는데 한 테이블을 사람들이 여러 겹으로 둘러싼 채 그의 플레이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스물네살 젊은 나이지만 다부졌고, 약간은 선이 날카로운 인상의 국가대표 당구선수였다.

정말 놀랐던 것은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에 재학중이라는 그의 학력(學歷)이었다.

외려 폼은 정통파가 아닌 듯 한데 기술은 현란했고 장난같이 치는 예술구에는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1954년 1월생으로 1974년 우연히 당구에 입문, 두달인가 석달인가 만에 300점을 쳤다고 했다. 

그 후 일취월장, 두 해도 안돼 2000점을 쳤고 국가대표가 됐고 전국당구대회 7회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교련복 입은 서울대 꼬마'(키는 177cm로 외려 큰 편이었다)는 '한국 3쿠션의 마이클 조던'으로 변모해갔다.

그러다가 1987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상천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내셔널 챔피언십 12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드디어 1993년 세계3쿠션 선수권 대회 우승에 따라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면서 한국과 미국 당구를 세계에 알리게 된다.

그의 이닝당 평균 득점 세계 기록 12.5는 아직까지 깬 사람이 없다고 한다.

4이닝 50점이니 쉽게 깨질 기록은 분명 아니다.

그의 라이프 베스트는 28점이고 41게임 연속 승리라는 그야말로 불멸의 기록도 세웠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국내 당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천은 2004년 대한당구연맹 회장 자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돌연 위암이라는 병마가 찾아 왔고 그 게임은 결국 이기지 못한 채 그 해 10월 유명을 달리 하게 된다.

불꽃같이 찬란했으나 짧디 짧았던 나이 쉰하나의 생애였다. 

 

O...이상천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한국 당구는 최근 개화기를 맞은 듯하다.

뽀얀 담배 연기와 짜장면, 허름한 화장실, 폭력으로 상징되며 유기장(遊技場)이던 당구장이 1997년 체육 시설로 바뀐 것이 우선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야구, 축구와 같이 정식 스포츠 종목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됐고 2014년 1월 빌리어즈TV의 개국은 당구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2014년 가을 최성원이 서울에서 열린 제67회 세게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스웨덴의 토브욘 브롬달을 누르고 우승, 신문지면에도 당구 기사가 실리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이어진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거둔 잇단 우승 소식은 "아! 이렇게 재미있는 스포츠가 있었네"라는 점을 남녀노소에게 알리는 단비같은 존재들이었다.

2년전인 2017년 12월 담배 연기가 당구장에서 사라지게 되면서부터 당구장은 아버지와 딸이, 부부가, 연인끼리 함께 찾아 즐기는 밝고 건전한 장소로 바뀌게 된다.

옛날식으로 영업하다가는 도태되겠다는 불안감에 업주들은 시설재투자에 대부분 나서게 됐고 당구장의 고급화,대형화는 분명한 트렌드가 됐다.

 

(2015년 9월 구리 세계3쿠션 월드컵에서 벨기에의 프레드릭 쿠드롱과 함깨 한 기자)
(2015년 9월 구리 세계3쿠션 월드컵에서 벨기에의 프레드릭 쿠드롱과 함께 한 기자)

 

요즘 TV를 켜면 실황이든, 재방송이든, 레슨이든 당구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빌리어즈TV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스포츠채널이 경쟁적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MBC같은 경우는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는 월드컵 현장에 중계진을 파견,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위성 중계까지 내보내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이 담보되고 스폰서들이 붙지 않는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2016년 통계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개업 당구장수는 2만3000개에 약간 못 미친다. 나라에 등록된 전체 체육 시설의 40% 가까이 되는 수치라고 한다.

완벽한 추산은 어렵겠지만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해도 족히 수백만의 동호인이 우리나라에는 있는 셈이니 그런 시장을 언론 매체나 기업들이 외면할 까닭은 없다.

당구장 주변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사람들이 당구선수들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흔한 일이 됐다.

류현진이나 손흥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국내 선수고 외국 선수고를 막론하고 스타도 엄청나게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당구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고 한국은 당구(캐롬)의 강국으로 위상을 굳혀 가고 있다. 

 

O...이상천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가끔 보면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아 사족을 한 가지 단다.

통칭 당구라고 하지만 크게는 캐롬, 스누커, 포켓볼 등으로 다르고 세계적으로 보면 협회나 연맹들도 제각각이다.

한국인들이 주로 열광하는 것은 캐롬 그 가운데서도 단연 3쿠션이다. 캐롬 안에도 3쿠션, 1쿠션, 4구, 보크라인,잉글리시 빌리어즈(캐롬 당구대+6포켓+스누커 볼) 등 다양한 종목이 존재한다.

기자가 함께 사진 찍은 프레드릭 쿠드롱은 3쿠션에서 세게 4대천왕의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1쿠션에서 세계 절대 강자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상천으로 돌아간다.

올해 5월 프로당구협회(PBA)가 출범하면서 한국 당구계는 중국 사람들 말로 일국양제(一國兩制)가 됐다.

PBA는 강동궁 등 프로들과 프레드릭 쿠드롱 등 외국 선수들을 끌어들여 우승 상금 1억원의 PBA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주 'SK렌터카'가 벌써 6차대회다.

그런가하면 대한당구연맹은 세계당구연맹(UMB)과 함께 PBA진출 선수들은 배제한 채 기존의 국내외의 각종 대회와 리그를 소화하고 있다.

단체들의 생각과 계산,흩어진 선수들의 판단을 존중하나 팬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대회고 국내 대회를 막론하고 등록된 선수들이 모두 참가, 기량을 겨루어 챔피언을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보기 원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도 크게 보면 PGA와 EPGA로 나뉘어 잘 운용되고 있지 않느냐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선수들의 양대 리그 참가 의사를 수용, 여기저기에서 뛸 수 있지만 당구는 현재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년 5월 미국 뉴욕에서는 2007년 미국 당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상천 추모를 위해  'Sang Lee International' 대회가 개최된다.

세계 3쿠션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일제히 참가, 고인을 기리며 경기하고 우의를 다지는 큰 행사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그가 살아있었다면, 우리의 당구선수들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된 이런 일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그가 가진 영향력이나 리더십이 그만큼 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상천을 미국인들은 'player' 가 아닌 'cue artist'라고 표현했다. 당구를 스포츠에서 한 단계 승화, 예술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리라.

2019년 연말 하늘에서 한국을 내려보며 흐뭇함과 착잡함이 교차하고 있을 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재삼 그의 명복을 빈다.

진짜 사족! 기자의 당구는 경력 43년에 강 250점, 약 300점이고 대대 수지는 20점을 놓는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양승현 편집위원]  

yangsangsa@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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