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양사 CEO 회동…되레 '확전의 계기'로 작용
최태원, 구광모 회장 모두 배터리산업에 '강한 의지'
전문가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두 총수 간 대승적 합의 필요" 지적

최태원 SK그룹 회장(좌)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우) (출처 각 사 제공,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최태원 SK그룹 회장(좌)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우) (출처 각 사 제공,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집안싸움’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사 모두 회사의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는데다, 일종의 ‘자존심’ 대결로 불길이 번졌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걱정이 가득한게 현실이다. 전기차는 친환경자동차의 ‘현주소이자 미래’라는 점에서 특히 환경분야에서 느끼는 조바심과 피로감은 크다. 결국 양사 모두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배터리전쟁을 하루빨리 종결하고 글로벌시장의 리더로서 산업발전을 주도해야 함은 2019년말의 지상과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명지조(共命之鳥)의 심정으로 ’배터리 전쟁’의 조속한 종결을 촉구하며 관련 기획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전쟁’은 과연 언제쯤 긴 터널을 빠져나갈 것인가.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만 가중되는 이 집안싸움의 끝은 언제쯤일까.

지난 9월16일 두 회사의 CEO들이 전격적으로 만날 때만 해도,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의 회동은 그야말로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한 발 더 나아가, 두 CEO의 만남 이후 양사의 태도는 외견상 되레 더욱 강경해졌고, 지면에 옮길 수 없는 '공포탄'이 양사 고위책임자들 사이에 오가기도 했다.

◇ LG의 '강경모드'는 누구의 의지일까

LG화학은 자사 홈페이지에 ‘LG화학이 밝히는 소송의 진실’이란 페이지를 별도로 마련, 소송 진행 과정과 SK이노베이션의 특허 침해 및 핵심인재 빼가기 등에 대해 조목조목 자사의 주장을 게시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지난 9월 두 CEO 회동 이후 게재된 10월 15일자 공지글이다. 이 글에서 LG화학은 “이번 소송을 당당하고 담담하게 대응하면서 영업비밀, 특허권 보호라는 법적, 윤리적 원칙 아래 그 동안 우리가 쌓아온,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지식재산권을 소중하게 지켜나겠다”고 밝혔다. 결기와 전투의지가 행간과 자간에 넘쳐 흡사 '진군가'를 보는 듯 하다.

LG화학의 이같은 강경모드는 40대의 젊은 구광모 회장이 그룹총수에 오른 이후 LG그룹 전반에 불어닥친 '분위기 변화'가 주된 동력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다자간 경쟁체제로 변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데 의문을 달지 않는다. 삼성과의 '8K TV 공방전‘, 해외 기업들과의 양문형 냉장고 ‘도어 제빙’ 특허소송 등이 모두 같은 모드다. 

여기에 시장환경의 변화도 강경모드를 가속화한 요인이다. 과거 배터리시장은 소재와 셀, 완성차 등 각 분야가 상대적으로 명확히 구분돼 분쟁 발생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나 향후 세계 각 기업들이 소재와 셀, 완성차를 수직 계열화 해 업체 간 경계가 허물어져 분쟁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치킨게임’으로 흘러 갈 수 있는 이런 환경변화가 LG의 '전투의지'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이 밝히는 소송의 진실(LG화학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이 밝히는 소송의 진실(LG화학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소송은 소송, 시장경쟁은 별개의 '전선(戰線)'

두 회사는 소송과 별개로 공격적인 투자와 전기차 배터리의 ‘총알’이 되는 소재 확보에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이는 두 기업 모두 전기차 배터리를 미래의 생존전략사업(수종사업)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LG화학은 최근(지난 9일)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등 금융권과 이차전지사업 해외투자에 향후 5년간 총 6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받는 협약식을 맺었다. 인도네시아에 23억달러(약 2조 7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앞서 GM과는 각각 1조원씩 투자해 미국 오하이오주에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 본고장으로 불리는 북미 시장에서 30GWh에 달하는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해 점유율을 세계 1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사업 투자규모가 만만치 않다. 2013년 총 10억위안(한화 약 1680억원)을 투자해 중국의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JV) 'BESK'를 설립했다. 최근(지난 5일)에는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 금탄 경제개발구에 배터리 공장을 준공했다. 이는 국내 서산 공장 외에 해외 첫 공장 준공으로 7.5GWh 규모다. 서산 배터리 공장 4.7GWh를 포함해 전기차 연산 약 25만대에 공급 가능한 약 12.2GWh 생산능력을 갖춘 SK이노베이션은 현재 헝가리에 두 개, 미국에 한 개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양 사는 양극재의 대량 확보에도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양극재는 음극재와 전해질, 분리막과 함께 배터리 4대 구성요소로 니켈, 코발트, 망간 등 리튬산화물로 구성된다. 양극재는 배터리 제조 단가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LG화학은 수입과 내재화로 양극재를 조달할 방침인데, 지난 9월 글로벌 양극재 1위 회사 벨기에 유미코아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최대 배터리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에서 양극재를 공급 받는다. 앞서 지난 8월 호주 광물채굴 업체인 오스트레일리안마인즈(AM)와 양극재 재료인 황산코발트 및 황산니켈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 정부의 강력한 중재‧총수 간 대승적 합의만이 '출구'

두 회사가 배터리사업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하지만 이 집안싸움의 조기종결 필요성을 들자면 수백가지가 넘는다. 치킨게임 또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겠다는 결의를 이제 거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촉구한다. 

양 사의 배터리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정부의 강력한 중재고 두 번째는 그룹 총수 간 대승적 합의다. 이 중에서도 두번째 방안은 종전선언에 이르는 가장 빠른 출구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지금이 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강자가 될지 결정되는데 집안싸움 때문에 시장에서 후퇴하게 둘 순 없다”고 말했다. 특히 "막대한 소송비용의 국외 지출은 물론 미래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를 석권하는 강자가 될 수 있는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장기간의 분쟁은 국가, 더 나아가 양 기업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면서 정부의 강력한 중재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서로 가진 기술력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지 국내 굴지 기업 간의 분쟁은 오히려 중국을 비롯한 경쟁업체만 배불리는 꼴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성장한 CATL의 질적 팽창이 한국 기업에 가히 위협적인 요인이다"고 입을 모은다. 상황이 이런데도 세계 시장의 경쟁력 확보보다 집안싸움에 골몰하는 것은 '창피하다'는 표현하기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굴지의 배터리 기업들이 외국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창피하다“며 ”정부에 강력하게 중재에 나설 것을 조언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두 그룹의 총수가 모여 양사 배터리사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는 MOU라도 체결하면서 대승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LG화학 관계자는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시시비비는 명확히 가려질 것으로 판단한다"며 "합리적이고 타당한 협상을 위한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그 주체는 소송 당사자인 양사 최고경영진이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ds032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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