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지루한 공방전에 국민들의 우려와 피로감 상승
전기차‧배터리 시장 급성장…EU, 아시아 의존 줄이려 보조금 지급 등으로 경쟁 채비
중국 업체들, 한국 핵심 인재 빼가며 글로벌 시장 '강자' 자리 노려

장기간 배터리 전쟁을 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CI(그린포스트코리아DB)/그린포스트코리아
장기간 배터리 전쟁을 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CI(그린포스트코리아DB)/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집안싸움'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사 모두 회사의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는데다, 일종의 '자존심' 대결로 불길이 번졌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걱정이 가득한게 현실이다. 전기차는 친환경자동차의 '현주소이자 미래'라는 점에서 특히 환경분야에서 느끼는 조바심과 피로감은 크다. 결국 양사 모두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배터리전쟁을 하루빨리 종결하고 글로벌시장의 리더로서 산업발전을 주도해야 함은 2019년말의 지상과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명지조(共命之鳥)의 심정으로 '배터리 전쟁'의 조속한 종결을 촉구하며 관련 기획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이대로라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전쟁’은 중국업체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5년이 되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규모가 메모리반도체 시장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의 싸움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얻는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모전에 따른 경쟁력 저하와 함께 시장지배력 약화가 두 회사 모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 '출구' 없는 배터리 전쟁

2011년 LG화학은 이차전지 분리막 특허를 출원하고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2014년 두 회사는 이후 10년 동안 국내외 관련 특허 소송 금지 협정을 맺었다.

이 약속을 먼저 깬 것은 LG화학이었다. LG화학은 자사의 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자 인력채용을 멈춰달라는 공문을 SK이노베이션에 발송했으나 SK이노베이션이 적법한 채용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LG화학은 2017년 12월 '전직금지가처분소송'을 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승소한데 이어, 지난 4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법원에 영업비밀침해 등으로 제소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이에 소 취하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맞소송을 펼치면서 ‘배터리 전쟁’은 과열 양상을 띠게 됐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LG화학 신학철부회장과 SK이노베이션 김준사장이 'CEO회동'까지 했으나 양사 사이에는 지금도 화연(火煙)이 가득한 상태다.

LG화학 VS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일지(자료 언론보도‧하나금융경영연구소,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 VS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일지(자료 언론보도‧하나금융경영연구소,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 시장규모의 급속한 성장…대다수 해외 아직 보급률 낮아

양사의 치열한 다툼은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을 세계적인 성장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대다수 국가의 전기차 보급은 아직 도입 단계로 그만큼 성장가능성이 높다. 

자동차회사들과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규모는 연평균 25%씩 성장하고 있다. 2025년에는 무려 1600억달러(약 18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490억달러(약 169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넘어서는 규모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이만한 수종사업(미래 먹거리)이 없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볼때 전기차는 아직 도입단계라는 점에서 성장잠재력은 폭발적이다. 친환경차로의 이행은 불가피하고, 현재로서는 이를 가장 앞에서 끄는 것이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EU의 경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은 낮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 49.1%, 아이슬란드 19.1%, 중국 4.4%, 미국 2.1% 등이다.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 비중이 5% 미만이므로 전기차 시장은 시장포화에 따른 성장둔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블루오션’이다.

전기차 시장의 장밋빛 미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EU 등 주요국의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가 2021년부터 엄격해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의 판매 비중을 늘려야 한다. EU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방식은 각 완성차 업체별로 판매하는 자동차의 1km 운행당 이산화탄소 발생량(g) 평균값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현재 가솔린과 디젤 차량으로는 이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 향후 전기차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 중국 업체의 급격한 성장과 인재 유출

문제는 국내 굴지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양사의 싸움이 장기화 되면서, 세계1위 일본기업과 2위 중국기업의 양강체제가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한때 무명에 가까웠던 중국 CATL의 급속한 성장세다. LG화학과 삼성SDI 등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선 CATL의 성장배경은 중국 정부의 시나리오였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키운 뒤 외국 기업들에게 CATL의 배터리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결국 CATL은 전기차 배터리를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는 중국의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올해 시장점유율 22.5%로 세계 2위의 배터리 업체다.

CATL 등 중국 기업들은 이처럼 막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CATL은 올해 7월 기존 연봉의 3~4배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한국 핵심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특히 부장급 이상 인재들에겐 세후 2억7000만원에서 3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의 다른 배터리업체 BYD도 2017년 연봉 외에 성과급과 연말보너스, 관용차, 1인용 숙소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국내 배터리 인재들을 '모셔'갔다.

한국무역협회의 ‘중국, 인재의 블랙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배터리업체들이 유럽에 이어 일본, 미국 등으로 시장을 넓히면서 인재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집안싸움으로 혼란한 틈을 타 경쟁력이 높은 한국 인재들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력유출은 그대로 핵심기술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핵심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은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에 앞서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치중하는 상황인데, 한국의 인재들을 빼내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LG화학, SK이노베이션 두 회사의 법적 다툼이 장기화 되면서 중국 정부의 지원 덕에 양적팽창을 늘린 CATL과 같은 기업이 질적 팽창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소재(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소재(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소재(SK이노베이션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소재(SK이노베이션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새로운 경쟁사들의 등장 예고…EU, 회원국에 보조금 지급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도 두 회사에게는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32억유로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승인했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7개국의 17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기차 배터리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EU는 온실가스 배출 감출을 목표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는데 전 세계 배터리 생산의 80%는 아시아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바스프(BASF), BMW, 오펠, 바르타 등이 혜택을 받는데 10년 내 독일에서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는 게 목표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장기화 되는 양사의 배터리 분쟁과 새로운 경쟁사들의 등장에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소송의 결과에 따라 한쪽이 해외 시장 판로가 막히는 것은 물론 핵심 인재 유출 등으로 결국 웃는 쪽은 경쟁업체인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유럽의 배터리 동맹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기차 배터리 발전을 위해서 이런 분쟁이 법적으로 번지는 것은 대외적으로 보기 좋지 않다”며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해외 업체들과 경쟁을 해야지 국내 기업끼리 싸울 시간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kds032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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