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친기업’을 외쳤던 정부들과 결이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 나아가 인권과 관련된 노동시간 제도에 있어 노동자들은 이번에도 외면받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소기업(50~299인 상시 근로 사업장)이 주 52시간제를 지키지 않아도 그 처벌을 길게는 1년6개월까지 유예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중소기업 주 52시간제 시행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정부는 ‘자연재해와 재난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됐던 특별연장근로를 더 많은 경우에 인정하기로 했다. △업무량 대폭 증가 △시설 및 장비 고장 등 돌발상황 △안전 확보 및 인명 보호 △국가경쟁력 강화 등에 필요한 소재 및 부품 관련 연구 등의 업무나 상황에서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이뤄진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대기업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난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의 시행 시기는 또 1년 넘게 미뤄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도 노동도 더 오랜 시간 동안 해야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 4월 내놓은 통계를 보면 종업원이 100명에서 499명인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의 평균임금(2017년)은 3742만원으로 500인 이상 기업 노동자 평균임금의 70.0% 수준에 불과했다. 종업원이 10명에서 99명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임금(3061만원)은 더 적어 500인 이상 기업 노동자의 57.2%에 그쳤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어떻게든 더 많이 갈아넣는 사업 방식에 의존하는 사장님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노동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제쳐두고 어떻게 해서든지 임금도 더 많고 노동환경도 더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청년들의 구직 쏠림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라며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하는지 알 수 없다. 52시간으로 줄여도 여전히 높은 것 같다”며 당황했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경악했던 주52시간 노동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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