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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에 첫 선을 보인 친환경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 (이주선 기자) 2019.11.22/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주선 기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출근길, 삶의 최전선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광화문 모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언제 올까? 속으로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찾았는데 어!? 꺼져있다. 불철주야 저 멀리서도 환한 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희망과 실망을 안겨주던 그것 까맣고 투박한 모양의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 Bus Information Termina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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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위치 안내 정보보다 시범사업 중임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더 확연하게 눈에 띈다. (이주선 기자) 2019.11.22/그린포스트코리아

4차산업 혁명 시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다섯 번만 두드리면 버스가 언제 올지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게으른 내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 먹이를 찾아 헤매는 펭귄처럼 뒤뚱뒤뚱 BIT가 있던 자리로 다가가 본다. 평소 세 걸음이면 볼 수 있었던 내 버스의 도착 예정시간이 뭔가 흐릿하다. 노안이 왔나. 몇 걸음 더 다가가 봤다. 침침하게 숫자가 보인다. 그 위로는 또렷하게 “친환경 고효율 전자종이형 버스정보안내단말기 시범운영”이라고 쓰여 있다.

(이주선 기자) 2019.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시야각이 넓지 않다. (이주선 기자) 2019.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자리를 옮겨 살펴봤다. 식별 불가다. 요즘 유행하는 광시야각 모니터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광화문에 설치된 친환경 BIT는 태양광 패널을 장착해 순수 자가발전으로 작동된다. 기존 BIT 설치가 어려운 지역에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기존의 BIT와 소비전력 측면에서 현저히 낮다는 것이 서울시 설명이다. 이달 13일 광화문 단 한 곳에만 시범 설치됐다.

사실 친환경 BIT는 올해 6월 전남 나주혁신도시 20곳을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이 기술을 개발한 업체는 자사 제품이 빛 공해 방지, 낮은 전력 소모량, 시인(視認)성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태양광 시스템이 함께 적용돼 전력망도 필요 없다.

얼마 전 서울시는 4차산업 시대를 맞아 글로벌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 기업과 협력하고 관련법을 개정해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시민들에게 선사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8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2019 서울 스마트 모빌리티 엑스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소외되는 인간이 없도록 누구나 이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서울을 만들겠다”는 가슴 벅찬 연설을 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친환경 저탄소 사회를 지향하는 서울시의 시도, 언제나 그렇듯 훌륭하다. 또 자랑스럽다. 그런데 광화문 BIS는 잘 안 보인다.

의뭉스럽다. 유능한 서울시 공무원들이 예측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쉽게 수긍이 되질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범사업이기에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성 문제는 다르다. 최소 기기 검수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대중교통 시설물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사소한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 그런데 광화문 친환경 BIS는 여전히 안 보인다.

 

leesu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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