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집단암 발병이 결국 KT&G에서 보낸 담배찌꺼기(연초박)가 원인인 것으로 14일 환경부 역학조사 최종발표회에서 공표됐다. 정부가 환경오염 피해와 비 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인정한 최초 사례다. 관련 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다. 다 주민들이 10여년간 철벽같은 제도권과 힘겹게 싸워 일궈낸 감격적인 성과다.

앞으로 장점마을은 우리 사회의 폐기물 관리에 대한 맹점을 알린 선례로 계속 회자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주민들의 희생은 곱씹을수록 안타깝다. 관계당국이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주민들 목소리에 귀 기울였어도 없었을 인재였기 때문이다. 

장점마을은 2009년 인근 비료공장인 ‘금강농산’에 KT&G의 연초박이 유입되고부터 사시사철 쏟아지는 발암물질에 시달렸다. 비료 생산 과정에서 연초박을 고열에 찌면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이 퍼진 탓인데, 밭일하던 주민들이 두통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며 쓰러지고, 하천에선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속출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지자체에 민원을 넣고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변화는 없었다. 익산시와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이 시료조사를 하기도 했으나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라는 이유로 공장폐쇄는 무산됐다. 결국 2017년 부도 전까지 공장은 계속 가동됐고, 그동안 1급 발암물질에 여과 없이 노출된 마을 주민 99명 중 33명이 암 확진을 받았으며 끝내 17명이 숨졌다.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관계당국은 이 같은 참사를 초래했다. 이번 환경오염 역학조사도 재작년 주민청원 이후 2년 만에 간신히 얻은 것이다. 환경부가 인정하니 그제서야 전북도는 16일, 익산시는 15일에 공식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주민들의 절규는 10년째 외면했지만 정부 권위에 수긍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다 벌어지고 나서 국가와 사회가 아무리 정중하게 사과해도 피해자의 고통과 가족‧이웃을 잃은 슬픔은 되돌릴 수 없다. 적어도 환경문제만은 절차를 건너뛰는 한이 있더라도 현장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다. 

이쯤에서 환경법 제1장 1조에 명시된 환경법의 목적을 상기해본다. “환경보전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와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환경정책의 기본 사항을 정하여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을 예방하고 환경을 적정하고 지속가능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때 실천되지 않으면 이 같은 이상은 다만 사문화될 뿐이다.

연초박 문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KT&G의 연초박이 익산에서만 판매된 것은 아니다. 다른 데서도 발암물질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KT&G는 여전히 “연초박을 법령상 기준을 갖춘 폐기물 처리시설인 비료공장을 통해 적법하게 처리했다”며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수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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