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발은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람의 뒷모습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매리 발 페이스북 캡처) 2019.11.9/그린포스트코리아
매리 발은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람의 뒷모습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매리 발 페이스북 캡처) 2019.11.9/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1955년 미국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에서 일어났던 일이 2019년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서 되풀이됐다. 미국 사회가 보여준 대처는 달랐다.

9일 CBS Chicago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네이퍼빌에 자리한 레스토랑 ‘버팔로 와일드 윙(Buffalo Wild Wings)’을 방문한 18명의 단체손님은 인종차별을 당했다. 

5세~12세의 농구선수들과 선수들의 가족, 농구팀 코치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농구 경기를 마친 뒤 한 선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버팔로 와일드 윙을 찾았다. 버팔로 와일드 윙은 튀긴 닭날개, 햄버거 등의 먹거리에 맥주를 곁들여 파는 레스토랑이다. 

농구팀 코치 저스틴 발(Justin Vahl)은 자리를 안내받길 기다리는 자신들에게 다가온 매장 직원이 던진 질문에서 사건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 직원이 “당신은 무슨 인종이냐”고 물은 뒤 “저쪽에 앉은 인종 차별주의자 단골손님이 흑인이 옆에 앉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저스틴 발은 그게 무슨 문제냐고 대꾸하며 일행과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흑인 옆에 앉길 꺼려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몇 분 후 저스틴 발 일행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이 자리는 예약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다른 테이블로 안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발 일행은 매장을 떠나기로 했다. 동료코치 마르쿠스 라일리(Marcus Riley)는 “코치님, 우리 쫓겨나가는 건가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우리는 쫓겨나는 게 아니야. 환영받지 않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돈을 쓰기로 결정한 거지”라고 답했다.

저스틴 발의 아내 매리 발(Mary Vahl)은 페이스북에 “관리책임자가 흑인 일행 옆에 앉길 불편해하는 2명의 성인 대신 6명의 성인과 12명의 어린이 일행을 다른 테이블로 보내려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글을 남기며 매장 직원의 언행을 비판했다. 인종차별 발언을 내뱉은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도 함께 게시했다. 

버팔로 와일드 윙은 빠르게 대처했다. 지난 4일(현지 시간)에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서비스 매니저(Service Manager)와 시프트 매니저(Shift Manager) 등 두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해당 고객은 앞으로 평생동안 버팔로 와일드 윙에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저스틴 발 일행에게 직접 사과하고 감수성 훈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어 지난 6일에는 라일 틱(Lyle Tick) 버팔로 와일드 윙 대표 명의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라일 틱 대표는 “버팔로 와일드 윙의 대표로서 네이퍼빌에서의 사건과 같은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저스틴 발 일행이 내놓은 훌륭한 권고와 요청들을 긍정적으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60여년전 몽고메리에서는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로자 파크스가 곤욕을 치렀다. 당시 버스 운전기사는 버스 ‘유색칸’ 첫줄에 앉아있던 로자 파크스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했다. 백인 승객이 많아지면서 ‘백인 전용칸’에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버스운전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로자 파크스를 체포했고, 그는 인종 분리에 관한 몽고메리시 조례를 어겼다는 혐의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조사를 받고 풀려난 로자 파크스는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와 힘을 합쳐 보이콧 운동에 들어갔다. 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평등한 대우, 선착순 착석 권리 등을 요구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동참하면서 보이콧 운동에 힘이 실렸다. 흑인들은 체포, 해고 등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1956년 ‘버스 내에서 벌어지는 흑백 분리 행위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연방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흑인민권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사건이었다.

2019년 네이퍼빌에서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람과, 그에 동조한 이들이 처벌의 대상이 됐다. 라일 틱 대표는 6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배우고, 나아지기 위해 네이퍼빌 지역 단체, 시민 단체들과 협력하고 있다"며 “저스틴 발 일행이 준비됐을 때 그들과 의미있고, 열린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alias@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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