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으로 식물 살피고 인공지능이 관리
최적의 환경에서 청정공기 공급...공간의 새 가능성 열려

(이재형 기자) 2019.10.29/그린포스트코리아
개방형 코워킹 공간 원앙아리에 설치된 나아바코리아의 스마트 정원.(이재형 기자) 2019.10.29/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온통 콘크리트벽에 둘러싸인 서울 시내. 사무실의 삭막함을 달래는 식물이 어디든 있지만 가만 보면 생명이 아닌 소모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싱싱했던 것들이 몇 달 못가 시들고, 마침내 회생 불가능해질 쯤이면 버려지기 때문이다. 

식물을 살려보려고 신경 쓰는 사무실에서도 잎사귀는 시들고 화분에 꽂힌 영양제로 간신히 연명하는 걸 보면 사람들 보기 좋으려고 애먼 식물들을 죽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인간과 식물이 생기를 주고받으며 지속가능한 실내공간은 없을까. IoT(사물인터넷)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정원'이 그 가능성을 열고 있다.

◇ 숲을 인간 곁으로 들인 기술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의 개방형 코워킹(Co-working) 공간 ‘원앙아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벽돌이 드문드문 드러나는 도시적 인테리어 속 그린월(Green wall)의 싱그러운 녹색 빛이 시선을 당겼다. 유리문을 열자 코가 뻥 뚫리는 듯 쏟아지는 맑은 공기.

이곳에 설치된 그린월과 맑은 공기는 핀란드 기업 나아바(NAAVA)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나아바코리아가 LED 조명과 급수 설비가 탑재된 기기에 공기정화식물을 심은 '수직정원' 제품과 IoT 센서를 통한 24시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나아바코리아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나아바코리아의 그린월을 도입한 원앙아리의 풍경.(사진 나아바코리아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요즘 건강을 생각하는 웰니스 건축에서 실내에 싱그러운 자연 정원을 조성하는 아이템이 뜨고 있다. 원앙아리도 비슷한 사례인데, 이곳은 특히 흙 대신 자연의 무기성분을 혼합한 자갈 형태의 배지(培地)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흙과 배지의 차이가 뭘까.

“식물에 의한 공기정화 효과의 98%는 뿌리에서 발생합니다. 대기오염물질이 공기를 통해 뿌리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닿으면서 분해되는 원리죠. 뿌리가 흙에 덮히면 미생물을 활용하기 어렵지만 배지에 심으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1평 면적의 그린월에서 농구장 1개 분량의 정화된 공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식물에는 스킨답서스, 안스리움, 드라세나 콤팩타 등 효율이 가장 높은 품종을 사용했습니다”(나아바코리아 엔지니어)

그러나 식물이 금세 죽으면 이 모든 게 소용이 없다. 실내의 숲이 살아 숨쉬는 비결은 결국 정보통신기술이다. IoT 센서가 실시간으로 뿌리의 온‧습도를 파악하고 나아바코리아 서버로 보내면 축적된 식물의 생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적절한 때에 물을 뿌려줬다. 전기와 통신만 끊어지지 않으면 기술이 식물에 무한히 생기를 불어넣는 셈이다.

마음이 열리면 여럿이 모여 뭘 하든 자연스럽기 마련이다. 원앙아리에선 숲속의 신선한 분위기를 활용해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사진은 첼리스트를 초대해 나아바 제품을 배경으로 숲속 음악회도 연 모습.(사진 한이경 대표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원앙아리에선 숲속의 신선한 분위기를 활용해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사진은 첼리스트를 초대해 나아바 제품을 배경으로 숲속 음악회도 연 모습.(사진 한이경 대표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기계와 식물이 결합한 스마트 수직정원의 혁신이 여기에 있다. 식물이 생존을 위해 사사건건 인간의 손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웰니스 건축 전문가인 한이경 원앙아리 대표는 더 나아가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시사했다.

“화분에 꽂힌 식물과 달리 새로운 새싹이 돋아나는 동적인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고객들도 이곳에서 장시간 업무로 지치면 수직정원으로 다가와 코끝이 상쾌한 느낌을 받아갑니다. 식물도 사람이 보내는 호감을 느끼고 더 싱그럽게 자라는 것 같아요. 식물의 생기와 인간의 호감을 주고받는 거죠”

2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공기에 스며든 생기는 공간 속 만남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다. 호흡이 답답하면 무의식중 입을 다물지만 호감 가는 분위기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연은 이제 공간과 그 속의 관계를 주도하게 됐다. 한 대표는 인터뷰 끝에 이렇게 말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시각에서 볼 때, 건축물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공간 속 콘텐츠는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요. 역동적인 자연의 콘텐츠는 직사각형 건물이 가지는 한계를 무너뜨리고 공간에 무한한 가능성을 불어넣죠. 수많은 분들이 만나 협업하는 우리 원앙아리에서 스마트 정원은 공간을 완성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나아바코리아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원앙아리의 외부 모습.(사진 나아바코리아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 인간을 치유하는 숲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느낌’(58%), ‘뿌연 안개 너머에서 알 수 없는 괴물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55%). 올해 국민들이 공주대 연구에서 미세먼지에 대해 밝힌 생각들이다. 대기오염은 보이지 않고 또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혈관을 타고 장기에 침투해 천식, 심장질환, 뇌졸중을 일으키는 미세먼지. 밖에선 마스크를 쓰더라도 내 집 공기마저 답답하다면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올해 엄마가 된 박지현 씨도 작년 10월 아이를 가지면서 같은 걱정을 했다. 성인보다 호흡이 잦은 아이에게 미세먼지가 치명적이라는 소식을 들어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의 뇌손상과 천식, 저체중까지 유발할 수 있다.

그는 1년전 고심끝에 스마트 정원을 집에 들였다. 작년 핀란드 여행에서 수직정원의 효과를 체험해서다. 나아바코리아는 지현씨에게 식물에 공기가 한번 흐를 때마다 새집증후군의 원인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57%, 미세먼지를 25%씩 제거한다고 했다. 체감하는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가장 먼저 수면의 질이 달라졌어요. 아이가 있는 집은 온도와 습도가 컨디션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거예요. 밤사이 식물에서 퍼진 습기가 아침까지 공기를 ‘뽀송뽀송’하게 유지해 개운하게 일어났어요”

​(사진 박지현 씨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이제 200일이 되가는 박지현씨의 아이는 출생과 함께 수직정원의 공기를 마셨다. ​(사진 박지현 씨 제공) 2019.10.28/그린포스트코리아

말하던 지현 씨가 핸드폰을 꺼내 피부 사진을 보여줬다. 얼굴 전면에 붉은 반점이 10개 이상 돋고 팔이 접히는 부분은 두드러기가 돋은 모습. 놀랍게도 피부과에 다니던 1년 전 자기 모습이라고 했다. 지금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제가 어려서부터 알레르기에 심하게 시달렸어요. 병원에 내원한 경력만 20년째. 의사가 주는 약을 외울 정도가 됐지만 원인도 모르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었죠”(박지현 씨)

임신 후 고생할 각오를 했던 그는 스마트 정원을 집에 들인 후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공기만 달라졌을 뿐인데 반점이 가라앉고 비염도 없어졌다는 것. 숲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이다. 

김지홍 코이젠이비인후과성형외과 대표원장은 “비염을 비롯한 각종 호흡기 질환은 대기 중의 많은 오염물질에 악화된다”고 했다. 오염물질을 제거한 자연의 청량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환자에게 전해진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 것이다.

식물과 기계가 결합하면서 실내 환경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멀리 숲 속의 전유물이던 맑은 공기를 도심에서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 스마트시대의 새로운 단면이다.

이남규 나아바코리아 대표는 "자연과 기술을 결합해 실내에 숲을 들이고 지속적으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테마"라며 "멀리 떠나지 않고 사무실, 집, 실내 놀이터, 쇼핑몰 등 현대인의 모든 일상공간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ilentrock91@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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