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산행 시민 모임 '라이크 어스(Likearth)'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유행하면서 시민들이 환경을 사랑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시민들은 더 이상 정보와 자금력을 축적한 유명 환경단체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다. 단체가 선도하면 수동적으로 따르던 개인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뜻 맞는 이를 찾고 지체없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환경 운동도 단체의 이해나 구태 절차를 떠나 실천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양새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환경운동은 전파(SNS)를 타고' 시리즈에서 시민들 사이에 유행하는 '풀뿌리 공익활동'의 현장을 찾아갔다. [편집자주]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폭염에 지쳤던 여름날이 가고 어느새 울긋불긋한 단풍이 국토강산을 아름답게 수놓는 가을이 왔다. 주말이면 일상의 시름을 잊고 싱그러운 자연을 찾아 나선 시민들의 행렬이 전국 각지에서 잇따른다.

산을 사랑해 산을 찾은 사람들, 그러나 이들이 사랑하는 면면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여행객이 몰리는 봄, 가을철에는 전국 등산로나 둘레길에 오고가는 이들이 남긴 쓰레기가 가득 쌓이곤 한다. 관계당국의 단속에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자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요즘 전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클린산행'도 이러한 취지로 시작된 공익 활동이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클린산행 #클린하이커스 등의 키워드로 게시물을 검색하면 곳곳에 흩어진 시민 모임의 관련 게시물 수천여개를 만나볼 수 있다.

기자도 선행을 지켜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어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지난 13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클린산행 모임 '라이크어스(Likearth)'를 만났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친 이슬기, 홍주현, 김해나, 조덕래 씨. 평범한 직장인인 이들은 1년 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지키자'는 주제로 클린산행 모임을 결성하고, 정기적으로 등산로와 둘레길을 돌며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 분리수거하고 있다. 

이날 불암산 클린산행 참석자 13명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모임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20대 학생부터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했고, 대부분 서울에서 왔지만 경기 수원, 인천에서 이른 새벽 버스를 타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 

준비운동으로 간단하게 몸을 풀고나니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 집게와 목장갑이 모두에게 하나씩 주어졌다.  ‘Earth Friendly’라는 문구와 표정이 해맑은 지구 캐릭터가 그려진 비닐봉지는 운영진이 주문제작한 것으로, 재질은 생분해성 비닐이라고 했다. 

일요일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의 아침 공기는 영상 13도로 적당히 선선해 산을 타기에 딱 알맞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무성한 나무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냥 들뜬 마음으로 불암산 진입로를 걸었다. “이런 좋은 곳에 쓰레기가 많겠어?”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가 막연히 사색에 잠긴 채 걷고 있는데 이번이 다섯번째 클린산행이라는 강용구 씨가 불현 듯 돌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가 집게로 들어 올린 것은 뜻밖에도 청색 막걸리병. 병 속 내용물에선 상한 술에서 풍기는 악취가 진동을 했다. 이어 대열 선두에서 걷던 송영욱 씨가 등산로 옆 흙에서 비죽이 튀어나온 비닐 조각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길이가 족히 1m는 돼 보이는 비료 포대자루가 흙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송영욱씨는 “쓰레기는 보통 흙에 파묻혀 있거나 풀잎으로 가려진 곳에 있기 때문에 매의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건질 수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쓰레기소식(?)에 멍하니 있던 기자도 자극을 받았다. 명색이 환경 매체 기자인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등산로 옆 계곡이고 능선이고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기를 30분. 깨진 바가지도 주워 넣고 왜 여기에 있는지 사연이 궁금한 남성 팬티도 챙기다보니 어느새 Earth Friendly 봉투가 다 차버렸다. 등산로에서만 걸을 땐 못 보던 쓰레기들이 조금만 들어가 보니 발에 채이게 많았던 것이다.

문득 어떤 쓰레기가 어디에 가장 많을지 궁금해져 옆에서 걷던 홍주현씨에게 물었다. 라이크어스에서 1년간 산을 청소해온 그는 “아무래도 음료수 캔, 페트병이 가장 눈에 띈다. 분량은 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 번 클린산행을 하고 내려오면 적어도 수십 개는 주워오는데, 주로 공터, 큰 바위, 정자 등 쉼터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쉴 때 음료수를 마신 후 병은 주변에 버렸거나 이동 중 가방에서 빠진 것 같은데,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하는 안이함이 이렇게나 쌓였다"고 설명했다.

이날도 ‘나 하나쯤’하는 안이함은 불암산 초입부터 정상까지 곳곳에서 발견됐다. 큰 바위 틈 속에 집게를 넣어보니 빈 막걸리 병 두 개와 음식물쓰레기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나왔다. 누가 봐도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는 흔적이다. 깨진 음료수병도 많이 나왔다. 김용인 씨는 기자에게 유리병을 집은 집게를 내밀고 이런 쓰레기가 제일 위험하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유리병은 산에 버려진 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깨지기 마련이다. 유리조각이 계곡으로 흘러들면 사람들이 맨발로 밟고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유리조각은 아니지만 지난번 북한산 클린산행에선 참석자가 계곡에서 못에 찔려 큰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산에 버린 쓰레기는 반영구적으로 남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같이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오전 11시쯤 해발 508m 불암산 정상을 1km 앞둔 지점에서 산행 대오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휴일에 되도록 대문 밖을 안 나가는 기자의 상의는 모처럼 만의 격한 운동에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서울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렇게 샅샅이 훑어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날 처음 클린산행에 동참한 편동현씨는 “산을 좋아해 주말이면 전국의 명산을 자주 다녔지만 이런 산행은 처음”이라며 “우리 주변의 환경을 개선하는 취지도 좋고 평소에는 못 보던 산의 면면을 어루만지는 느낌이라 새롭다”고 말했다.

그렇다. 라이크어스의 모토처럼 산을 좋아하는 만큼 산을 지키려면 산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인간이 다가가야 했다. 다가가지 않으면 녹빛으로 아름다운 산의 내면이 이렇게 인간이 남긴 상처로 곪아 있었음을 알 수 없다. 

라이크어스의 이슬기 씨는 “클린산행을 하다보면 우리 사회가 과거에 산을 대해온 면면이 드러나기도 한다”면서 “지난번 관악산 산행에서는 음료회사 로고가 그려진 거대한 파라솔과 플라스틱 파이프가 산 정상 쪽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산에서 음료를 팔았던 모양인데 사업을 접으면서 팽개쳐놓은 것 같다. 구청에 처리 방법을 문의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 우리가 직접 이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날도 인간이 산에 남긴 부끄러운 흔적은 어김없이 적발됐다. 정상 인근 길목의 나무뿌리 쪽에서 튀어나온 봉지를 잡아당기자 파묻혀있던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만 20여분 째 파내니 적어도 20년 전에 시중에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료수 병, 약병, 라면 봉지, 88올림픽 우표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에 얽힌 이 쓰레기 때문에 나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전국 숲속의 바닥은 과연 겉보기처럼 안녕할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강용구 씨는 불암산은 그나마 깨끗한 편이라고 했다. 지난주 설악산에 다녀온 그는 이날 나온 쓰레기 분량은 설악산 계곡 하나만 뒤져도 쏟아진다고 전했다. 명산에 쓰레기가 많은 이유가 뭘까.

김용인 씨는 군중심리를 지적했다. 그는 “불암산은 주로 인근 주민들이 드나 들다보니 쓰레기가 적지만 짐을 바리바리 싸든채 전세버스타고 단체여행 오는 경우엔 책임의식도 약해지고 쓰레기 버릴 때도 거부감이 없다. 옆에 친구도 같이 버리니까. 이제 곧 단풍 시즌인데 사람들이 산에 몰린 만큼 또 쓰레기가 범람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들고온 것은 어떤 것이든 타지에 남기지 않는다'는 마음을 강조했다. “지방의 어느 야영지에선 외부인들이 야영 후 타지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인근 동네 쓰레기통에 버리고가 아예 아영지를 폐쇄하기도 했다. 야영지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만 남기고 가니 현지 주민들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장소를 떠나 가져온 모든 것은 타지에 흔적을 남기지 말고 다시 수거해가는 문화가 국민들 사이에서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풍가는 기분이었던 산행 초입과 달리 하산하는 길은 짊어 진 쓰레기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운 시간이었다. 산행 중 오고가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비닐봉지와 집게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런 문화가 생소한 눈치였다. 바로 옆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김해나 씨는 3개월 전 관악산에서 수십 봉지의 쓰레기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앞으로 조금은 나아지리라 기대했지만 최근 가보니 전에 수거한만큼의 쓰레기가 다시 나왔다고 했다. 문화가 대중에 전파되기 전까진 숲속 환경도 변하지 않으리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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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덕래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클린산행을 했다. 한번 경험한 사람들은 산에 쓰레기가 많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간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쓰레기를 남기지 않게 되고, 또 남들에게 우리 취지를 알린다면 그것은 작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홍주현 씨는 “참여자 중에는 대만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클린 산행 후기에서 이런 문화가 있는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도 산에 쓰레기가 많은데 이런 필요를 자각하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며 “우리가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 자체가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격려하는 사람도 있고 함께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산행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훌쩍 지났다. 4시간 산행을 통해 쓰레기로 채워넣은 Earth Friendly 봉지는 총 20개. 말끔하게 분리수거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운동으로 흘린 땀방울 그 이상으로 개운하게 느껴졌다. 나만 즐거운 산행에서 산과 더불어 즐거운 실천으로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라이크어스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이슬기 씨는 클린산행의 목적은 ‘산에 쓰레기가 없어서 더 이상 클린산행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처럼 클린산행을 경험하고 산을 아끼는 마음을 품게 된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기어코 불가능한 일도 아닐 성 싶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풀뿌리 공익활동’은 지금도 이렇게 SNS를 타고 전국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라이크어스 제공) 2019.10.16/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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