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숫자는 1990년 101만 가구에서 올해 572만 가구로 여섯배 가까이 가파르게 늘었다. 이들이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르면서 소비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장보기나 집안일은 온라인 서비스 등을 활용해 간편하게 해결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솔로 이코노미’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스마트폰도 웹툰도 없던 시절에는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이 대세였다. 아파트 단지 상가 지하에 있는 만화책 대여점 문을 열어 젖히며 “원피스 최신호 있어요?”를 외쳤고, 운이 좋은 날에는 200원의 행복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9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늦은 오후 홍대에 자리한 만화카페 놀숲 홍대점을 찾았다. 지하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학창시절 기억의 한 페이지에 남아있는 만화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혼놀(혼자 놀기)’가 유행하는 세월의 흐름에 발맞춰 만화방도 탈바꿈한 것이다. 

황진영과 박용진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 ‘프랜차이즈 만화카페의 스토어 아이덴티티 형성에 관한 연구(이하 프랜차이즈 만화카페)’에서 만화카페를 “내부는 오픈된, 하지만 어느 정도 개인적 공간이 구분된 다양한 크기의 작은 방으로 나눠져 있어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구비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놀숲 홍대점의 모습. (김형수 기자) 2019.9.21/그린포스트코리아
놀숲 홍대점의 모습. (김형수 기자) 2019.9.21/그린포스트코리아

2015년 7월 놀숲을 시작으로 벌툰, 콩툰 등 여러 프랜차이즈 만화카페 브랜드가 생겼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놀숲 홍대점 같은 만화방, 만화카페 등 만화임대 사업체 수는 2017년 기준 744곳에 달한다. 2013년 761곳에서 2016년 821곳으로 늘었다 다시 숫자가 줄어들었다. 

앞쪽 책장을 옆으로 밀면 뒤쪽 책장이 나타나는 이중창처럼 생긴 서가 대신 1층과 2층으로 나뉜 굴방이 만화카페 벽을 따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한가운데는 두세명이 바닥에 철퍼덕 앉아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설치된 책장과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듯이 좁은 한쪽 구석에는 만화책이 가득했다. 차를 한잔 마시며 1시간 동안 만화책을 보는 데 드는 요금은 5000원. 시간이 초과되면 10분당 500원이 추가된다. 

들어가면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카운터에 신발장 열쇠를 맡기면 카드를 한 장 주는데 나가면서 이 카드를 다시 내면 계산을 한 뒤 신발장 열쇠를 돌려준다. 카드를 받은 뒤 어떤 만화책을 볼까 서가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보니 벽에 기대거나 반쯤 누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을 보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원피스’, ‘나루토’, ‘슬램덩크’, ‘테니스의 왕자’, ‘드래곤볼’, ‘간츠’, ‘헌터X헌터’, ‘신의물방울’, ‘겟백커스’, ‘열혈강호’ 등 추억의 만화를 단행본으로 다시 만나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출간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테디셀러 만화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7월 내놓은 ‘2018년 만화백서’에 따르면 10세~59세의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원피스’는 즐겨보는 종이 만화 작품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명탐정코난’, ‘열혈강호’, ‘슬램덩크’ 등이 이었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베가본드'를 골라 2층 굴방에 자리를 잡았다. (김형수 기자) 2019.9.21/그린포스트코리아
굴방에서는 쿠션과 벽에 기대 만화책을 볼 수 있다. (김형수 기자) 2019.9.21/그린포스트코리아

‘슬램덩크’를 그린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또 다른 히트작 ‘베가본드’ 1권을 십여년만에 다시 집어들었다. 만화책을 감싼 비닐 커버, 또 그 커버 위에 붙은 '본동 지혜마당’이라고 적힌 바코드 스티커는 영락없이 옛모습 그대로였다. 성인 한명이 누울 수도 있을 것 같은 굴방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만화책 페이지를 넘기니 그 시절의 감촉과 그 시절의 냄새가 되살아났다. 

‘2018 만화백서’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만화대여점(만화카페)에서 종이 만화책을 주로 본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31.3%로 집(54.8%)이라는 응답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017년과 비교했을 때 집은 7.4%p 줄어든 반면, 만화대여점(만화카페)는 4.2%p 늘어났다. 

‘프랜차이즈 만화카페’의 분석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청결도’, ’나눠진 개인공간’, ‘매장 분위기’, ‘구비된 만화종류’, ‘서비스’ 등을 기준으로 어느 만화카페를 갈지 고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권에 몇백 원을 주고 만화책을 빌려 가면 그만이었던 만화방에서 탈바꿈한 만화카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진영과 박용진은 ‘프랜차이즈 만화카페’를 마무리하면서 “기존의 만화방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카페와 결합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면서 깨끗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며 “오늘날의 만화카페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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