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플라스틱 가소제 ‘프탈레이트(Phthalate)’를 아시나요? 딱딱한 화합물인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물질로 주로 폴리염화비닐(PVC) 제품에 널리 사용되는 화학첨가제입니다. 

프탈레이트는 그간 장난감, 화장품, 세제, 용기 커피믹스부터 가정용 바닥재, 향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사용됐지만 인체에 유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인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프탈레이트에서 분비되는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인체의 내분비계가 교란돼 남성은 정자수가 줄고 여성은 난자의 수정율이 감소하기 때문이죠. 국내에서도 2005년부터 식품용기에 사용이 금지됐고 2006년부터 완구 등 어린이용 제품에서 전면 금지됐습니다. 

프탈레이트는 이렇게 시장에서 퇴출된 것처럼 보였지만 13년이 지난 지금도 프탈레이트 함유량이 기준치를 한참 초과해 검출되는 사례가 이따금 언론에 올라옵니다. 특히 성장기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용품과 학교 환경에서도 프탈레이트가 검출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달 6일 대구지역의 초등학교를 포함한 72개 학교에서는 우레탄 소재 트랙에서 기준치(0.1%)를 넘는 프탈레이트 성분이 나와 운동장 접근이 금지됐습니다. 지난달 23일에는 한국소비자원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액체괴물' 제품 19종에서 프탈레이트 검출량이 기준치를 최소 94배, 최대 766배 초과했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습니다. 아이들 피부에 직접 닿는 이런 제품들도 안심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환경보건법과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근거해 관리·감독이 진행되고 있는 어린이제품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현행법상 ‘어린이용 제품’으로 규정된 모든 완구와 학용품 등은 플라스틱 재질에 프탈레이트 물질인 DEHP, DBP, BBP 사용이 제한되며, 적발 시 관계당국에 의해 판매금지 처분 및 형사고발조치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제품군은 규제할 명목이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선 프탈레이트 성분이 기준치의 60배가 넘게 검출된 일반 농구공이 알려지면서 규제의 빈틈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일반 축구공, 농구공도 13세 이하 아이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데 단지 법상 어린이용 제품이 아닌 스포츠용품이라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이에 환경부와 국가표준기준원은 주요 공인구 제조사들이 농구공 등 품목에 자발적으로 KC인증을 받도록 추진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썩 내키지 않는 눈치입니다. KC인증은 납,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 기준이 어린이제품 규제 수준에 준해 아이들이 써도 안전하지만 인증 기준이 까다롭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우리는 성인들 쓰라고 만들었고, 법적으로도 어린이용 제품이 아닌데 왜 까다로운 기준을 강요하냐’는 불만이 나옵니다.

특정 품목을 어린이들이 애용하면서 뜻하지 않게 규제를 받게 된 기업들의 불만도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조금만 커도 어린이용 축구공은 시시하다며 일반 축구공을 갖고 노는 모습을 생각하면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 초등학생 아들을 둔 기자의 지인은 “휴일에는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 때는 몸에 나쁜지도 모르고 다녔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좀 더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여건을 위해 사회적으로 노력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이 ‘애들은 가라’라며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손 사래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만큼 아이들이 즐겨 찾는 어른들의 영역을 조금 더 배려해주면 어떨까요? 농구공 이슈 외에 앞으로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보다 안심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나가야 하고, 또 비슷한 딜레마에 빠질 것입니다. 그때마다 제도상의 기준만 고수한다면 앞으로의 환경은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준다는 취지는 퇴색하고 정말 ‘환경?개뿔!’스런 이름만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ilentrock91@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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