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5㎞내 풍력발전기 88기 영양군…“당장 철회 마땅”
발전기 하나에 산등성이 30m씩 깎아 '환경파괴 심각"
영양제2풍력 단지 추진되면 제주 전체설비용량 필적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업체가 산등성이를 깎아낸 모습. (사진 무분별한풍력저지범주민대책위원회 제공)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업체가 산등성이를 깎아낸 모습. (사진 무분별한풍력저지범주민대책위원회 제공)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안선용 기자] 정부는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 협의 하에 ‘환경과 공존하는 육상풍력 발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환경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육상풍력을 보급·확산하겠다는 명분을 걸었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 등은 이 방안에 환경성 고려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방안에 따르면 국유림 내 인공조림지가 사업면적의 10% 미만인 경우 육상풍력사업을 허용할 방침인데, 이로 인한 산림훼손 우려 때문이다. 정부 발표 후 ‘무분별한 풍력저지 범주민대책위원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방안 철회를 주장했다. 풍력발전 사업추진에 환경이나 주민의 삶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대기업의 탐욕만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계기로 ‘무분별한 풍력저지 범주민대책위원회’의 송재웅 사무차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31일 경북 영양군 맹동산을 찾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차로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플래카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 ‘전국 최고로 풍력이 밀집된 이곳에 풍력은 이제 그만,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는 내용의 문구였다.

맹동산 등성이를 따라 줄지은 수십여기의 풍력발전기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맹동산 등성이를 따라 줄지은 수십여기의 풍력발전기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송재웅 사무차장은 남실관 영양제2풍력반대 공동대책위원장, 마을주민 김영기 씨와 기자를 맞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송 차장은 탁상에 지도를 펼치더니, 영양군의 맹동산 등성이를 따라 자리잡은 풍력발전단지를 지목했다. 그는 “풍력발전 사업자가 원하는 바를 다 수용한 이번 방안은 당연히 철회해야 하고,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환경이나 주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방안은 그저 사업자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폭력적인 방안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무려 77기의 발전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에 11기가 준공을 앞두고 있고, 추가로 15기 설치사업도 환경성 검토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가동 중이거나 준공을 앞둔 88기의 설비용량만 220.95MW로, 이는 전남 전체 풍력설비용량 232.2MW의 95%, 제주도 272.6MW의 80%에 달한다. 더욱이 행정절차를 진행 중인 영양제2풍력 15기(48MW) 사업까지 추진될 경우 영양군에는 불과 반경 5km 내에 100여기가 넘는 발전기가 들어서게 된다. 이들 설비용량은 268.95MW로, 제주도 전체 풍력설비용량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송재웅 사무차장이 지도에서 영양군의 풍력발전단지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송재웅 사무차장이 지도에서 영양군의 풍력발전단지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장방문차 이들과 산길을 차로 10여분쯤 달렸을 때였다. 골리앗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 다윗의 심정이 이랬을까? 어림잡아 높이가 족히 100m는 될 법한 풍력발전기 수십여기가 산맥을 따라 줄지어 있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하면서도 동시에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풍량이 그리 많지 않은 날이었는지, 회전날개(Blade)는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소음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남실관 영양제2풍력반대 공동대책위원장은 풍량이 많은 날에는 말벌의 날개짓과도 같이 ‘웅웅’ 하는 위협적이고도 큰 소음이 발생한다고 한다. 

송 차장은 대뜸 ‘주산’이라는 곳을 손끝으로 지목했다. 주민들이 기우제나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업체가 이 지역에 발전기를 세우고자 산등성이를 깎아내려 했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고 한다. 발전기 3기는 결국 다른 곳에 들어섰다. 성스런 곳마저 산림을 훼손하게 방치할 수 없다는 주민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덕이다.

이처럼 좁은 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밀집하다 보니 산림훼손도 불가피한 일이다. 송 차장이 더 이상 풍력발전기 설치는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 차장은 “풍력발전기 1기를 설치하려면 크레인 작업 때문에 폭을 최소 30m는 확보해야 한다. 이는 곧 1기당 산등성이를 30m씩 깎는다는 이야기로 산사태도 우려된다. 더욱이 발전기와 발전기 사이에 길을 내기 위해 콘크리트로 포장하는데, 이게 과연 친환경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특히 인공조림지에 풍력발전 사업을 허용해주는 이번 방안은 산림청이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공조림지 조성은 어린 나무들을 키워 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함으로, 산림청도 이를 잘 알기에 그동안 사업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를 뒤집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풍력발전단지 현장을 방문한 세 사람. 왼쪽부터 송재웅 차장, 남실근 위원장, 김영기 씨.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풍력발전단지 현장을 방문한 세 사람. 왼쪽부터 송재웅 차장, 남실근 위원장, 김영기 씨.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풍력발전 피해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소음문제다. 국내 풍력발전단지의 주거지역 소음기준은 주간 55dBA, 야간 45dBA로 네덜란드(주 45dBA, 야 35dBA)나 덴마크(주 40dBA, 야 30dBA)의 기준치에 비해 높은 편이다. WHO는 40dBA를 명확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한계치로 규정한 바 있다. 또 풍력발전단지와 주거지역간 이격거리에 대한 기준이 전무하고, 영양군과 같이 한정된 지역에 다수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도 소음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몫이다. 주민 김영기 씨는 “어떤 날에는 소음에 대해 별 생각을 못하다가 풍량이 많은 날에는 어디선가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풍력발전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과학적 증거라도 제시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니 불안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양봉업자인 안효종 씨가 풍력발전소 설치에 따른 벌들의 죽음에 경제적 피해를 호소했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양봉업자인 안효종 씨가 풍력발전소 설치에 따른 벌들의 죽음에 경제적 피해를 호소했다. (안선용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양봉업자인 안효종 씨는 실제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경우다. 벌을 ‘벌이’라고 애칭으로 부르던 안 씨는 “잘 될 때는 110통의 벌집을 운영했다. 그런데 풍력발전기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부터 벌이가 서로 물어뜯고, 자기 집을 못 찾아오더라. 그래서 지금은 40통이 채 안 된다”며 “업체는 처음 풍력발전단지로 인해 피해가 생길 경우 무조건 배상해 주겠다고 했는데, 정작 피해배상을 요구하니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라며 발뺌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이라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제적 논리에 우선해 산림훼손이나 주민피해를 무시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송 차장은 “산과 바람이라는 공유재를 사유화해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고, 환경과 주민의 피해를 야기하는 무분별한 풍력은 더 이상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다”며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고려하는 민주적이고 공익적인 풍력 입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합리적 반발이 다윗의 돌팔매질이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as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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