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숫자는 1990년 101만 가구에서 올해 572만 가구로 여섯배 가까이 가파르게 늘었다. 이들이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르면서 소비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장보기나 집안일은 온라인 서비스 등을 활용해 간편하게 해결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솔로 이코노미’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누군가는 말했다. 여행은 가사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라고. 사람들이 청소, 빨래, 설거지를 얼마나 성가시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표현이다. 안 닦은 그릇으로 가득 찬 싱크대를 바라보며 한숨 쉬던 이들을 사로잡은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지난 28일 오후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가사도우미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기업 ‘미소’의 앱을 다운받았다. 미소는 가사도우미, 침대·가전청소, 이사청소, 펫시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앱에 들어가 전화번호 인증, 주소입력 단계를 거치니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선택하라는 화면이 나왔다.

 
미소 앱에 들어가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예약하는 데는 5분이 걸렸다. (김형수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미소' 앱에 들어가서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예약하는 데는 5분이 걸렸다. (김형수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서비스를 한 번만 받는지 아니면 정기적으로 받는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 서비스를 받는지에 따라, 침대·가전청소는 사이즈나 용량의 차이에 따라, 이사청소는 집의 형태나 면적에 따라 요금이 달랐다.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고르자 메신저 대화창처럼 생긴 창이 열렸다. 이 창에서 서비스 날짜, 서비스 제공 시간, 서비스 시작 시각, 반려동물 존재여부 등을 선택하니 예약이 완료됐다. 예약하는 데 5분이 걸렸다. 

3시간 동안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는 데 필요한 요금은 4만1900원이었다. 서비스를 받기 전날 오후 6시 이전에 취소하면 요금의 30%를, 서비스 시작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서비스를 취소하거나 변경하면 요금 전액을 수수료로 내야한다. 청소기나 빗자루, 걸레, 주방세제, 수세미, 고무장갑, 쓰레기봉투 등 청소용품을 준비해달라는 안내도 나왔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으니 다음날이 서비스일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라왔다. 서비스를 신청한 시간에 집을 비울 예정이라 실시간 문의 기능을 활용해 물어보니 가사도우미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출입방법을 안내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비스를 신청한 다음날 오전이 되자 가사도우미로부터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3시간 후 또 스마트폰이 울렸다. 청소된 집안 사진과 함께 청소를 끝냈다며 가사도우미가 보낸 문자였다.

퇴근 후 들어간 집은 아침과 딴판이었다. 이틀 동안 쌓인 냄비와 접시로 가득했던 싱크대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바래가던 화장실 천장은 새하얀 본래 색깔을 되찾았다. 빨래건조대에 널어놨던 세탁물들은 반듯하게 개켜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천금같은 휴식시간을 갉아먹던 잡안일을 4만1900원과 맞바꾼 셈이다. 

설거지거리로 가득했던 싱크대는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은 뒤 깔끔해졌다. (김형수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설거지거리로 가득했던 싱크대는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은 뒤 깔끔해졌다. (김형수 기자)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귀찮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먹혀들면서 가사도우미 서비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규모가 2006년 2조8000억원에 그쳤던 가사도우미 시장은 10년 만인 2016년 6조원 규모로 두 배 이상 커졌다. 업계는 현재 시장 규모가 7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소를 비롯해 청소연구소, 아내의휴일, 대리주부, 당신의집사, 홈마스터, 단디헬퍼 등 가사도우미 O2O 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소는 지난해 실리콘벨리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 등으로부터 90억원의 투자를, 청소연구소를 운영하는 생활연구소는 올해 KTB네트워크와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가사도우미 O2O 시장의 가파른 성장 뒤에는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졌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며 실질적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도우미들의 노동 여건은 오랜 기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가사노동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법외노동’이기 때문이다. 법의 적용범위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11조는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7년 말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하고, 가사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임금·최소근로시간·유급휴가 등이 명시된 서면을 교부하고 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6월 ‘존중과 안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이스북 캡처)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6월 ‘존중과 안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이스북 캡처) 2019.8.31/그린포스트코리아

가사노동자를 법률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이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며 법안 통과를 요구했으나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여전히 잠자는 중이다. 올해 3월과 4월 고용노동 소위에서 3차례 회의가 열렸을 뿐이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6월에 발표한 ‘존중과 안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선언’에서 “가사노동자는 기본권에서 박탈과 배제를 당해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국회는 하루빨리 가사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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