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법·경제 전문가 토론회 열려
영상 엄숙주의로 국내만 규제 엄격 주장
정작 해외 OTT 규제 안돼...역차별 위험

정보통신정책학회(회장 강형철)가 2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2차 ‘2019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를 개최했다. (이재형 기자) 2019.7.2
정보통신정책학회(회장 강형철)가 2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2차 ‘2019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를 개최했다. (이재형 기자) 2019.7.2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국내 정보통신·경제·법학 전문가들이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영화·교육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규제를 강화하는 통합방송법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국내외 역차별 위험이 있고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정보통신정책학회(회장 강형철)는 2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2차 ‘2019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 행사를 개최했다. 

‘OTT와 미디어 규제모델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이경원 동국대 교수, 곽규태 순청향대 교수, 권남훈 건국대 교수, 이상우 연세대 교수, 이종관 박사 등 ICT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또한 곽동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책임자, 김성환 아주대 교수, 이희정 고려대 교수 등도 참석했다.

최근 국회에서는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통합방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의 ‘부가통신역무’에 속하던 OTT에 ‘온라인동영상제공사업’의 지위를 주고 방송법으로 편입하는 게 골자다. 이 경우 ‘방송’보단 심의 수준이 약하나 ‘통신’으로 분류되던 기존보단 규제가 강해진다.  

이날 패널들은 세부적인 방향성은 다르나 대체로 통합방송법 및 OTT 규제에 비판적이었다. 

이종관 박사는 “통합방송법이 OTT를 규제의 영역에 포섭하기 위해 방송의 영역을 넓히는 방향성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뒤 “OTT를 ’방송을 제외한 미디어’ 중 하나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이어 “다수의 개인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올리는 OTT는 방송과는 미디어 공급체계의 결이 다르다”면서 “OTT를 방송의 잣대로 가두면 유연하고 쌍방향적인 플랫폼의 본질이 고사될 위험이 있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국내 시장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우 교수도 방송의 외연을 넓히는 것에 반대했다. 국내 사회 분위기가 영상매체에만 지나치게 엄격하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법을 보면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 방송업)’이란 용어로 정의하는 매체는 지상파 방송과 위성방송(DBS) 뿐”이라며 “케이블TV도, 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도 ‘방송’으로는 규제하지 않는다. OTT도 물론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만 영상매체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 OTT 서비스도 방송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종의 ‘영상 엄숙주의’”라고 진단하며 “만약 OTT만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규제가 느슨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면 사고방식을 전환해 기존 방송들에 대한 규제를 푸는 방향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남훈 교수도 수평적 규제의 논리라면 차라리 기존 방송의 규제를 풀 것을 제안했다. 기존 방송매체의 영향력이 약화됐으니 오히려 방송 규제를 약화해 신규 매체와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권 교수는 “규제의 원리는 사회의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때 견제하는 의미”라며 “기존 매체가 코드커팅(Cord-Cutting, 유료 방송 시청자가 OTT로 넘어가는 현상)으로 영향력을 잃은 상황에서 방송 중 일부 영역은 규제를 풀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OTT 규제가 해외 사업자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작 영향력이 큰 유튜브, 넷플릭스는 활개치고 국내 사업자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국내 매체간 형평성을 위해 OTT를 규제하는 건 결과적으로 국내 OTT 기업들만 역차별하는 꼴”이라며 “우리나라 OTT 생태계는 국내 콘텐츠 선호도가 높고 유료 방송 비용이 저렴해 규제를 풀고 국내 기업을 지원하면 넷플릭스, 유튜브 등 외국 기업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관 박사도 “국내 규제는 해외 기업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국내 기업, 시장만 갈라파고스화 돼 글로벌 OTT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며 “차라리 EU처럼 국제적 수준의 규제를 만들고 이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곽규태 교수는 OTT 규제에 앞서 방송에 대한 정의부터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제기했다.

곽 교수는 “현행법상 ‘방송’ 및 ‘방송 유사서비스’의 법적 개념이 법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이 때문에 OTT가 방송에 속하냐는 논쟁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건설적인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방송’에 대한 통일된 정의를 먼저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가령 방송법에선 ‘방송’을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시청자)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송신하는 것’으로 정의한 반면 저작권법에선 ‘공중송신 중 공중이 동시에 수신하게 할 목적으로 음·영상 또는 음과 영상 등을 송신하는 것’이라고 다르게 정의한다.  

문제는 전기통신사업법의 ‘전기통신’은 “유선·무선·광선 또는 그 밖의 전자적 방식으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저작권법의 ‘방송’과 전기통신사업법의 ‘전기통신’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방송 규제가 전기통신 규제보다 강하므로 이렇게 기준이 모호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강한 규제를 받는 업체에서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한편 정보통신정책학회는 국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2019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를 기획했다. 3차에 걸친 본 토론회는 1차 망중립성, 2차 OTT에 이어 3차 '5G가 불러올 초융합 시대의 ICT 정책이슈들'의 순서로 구성됐다. 3차 토론회는 오는 9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silentrock91@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