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사랑에 빠진 남자' 이원영 박사와 '펭귄의 여름'
'펭귄과 사랑에 빠진 남자' 이원영 박사와 '펭귄의 여름'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9.06.2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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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습성과 에피소드 담은 '펭귄의 여름' 출간
"펭귄은 성실한 동물"...먹이 찾아 매일 남극 횡단
상위포식자 펭귄, 남극 생태계 상징적 의미 가져
이원영 박사가 ‘[여름, 첫 책] 펭귄의 여름’ 강연에서 강연하고 있다.(이재형 기자)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원영 박사가 ‘[여름, 첫 책] 펭귄의 여름’ 강연에서 강연하고 있다.(이재형 기자)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펭귄은 성실한 동물입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남극 대륙을 횡단하고 왕복 9시간을 수영하죠.” 

동물행태학자 이원영 박사가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에서 열린 ‘2019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여름, 첫 책] 펭귄의 여름’ 저자 강의를 했다. 이날 행사는 국내 출판사 생각의 힘이 마련했으며 70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강연을 듣고 친필 사인을 받았다.

이 박사는 세종과학기지 극지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2015년부터 올해로 5년째 남극에서 펭귄의 생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매년 남극의 킹조지 섬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에 비행기로 30시간을 날아가 펭귄을 만나는 진성 ‘펭귄 마니아’다.

이 박사가 생각의 힘을 통해 지난 19일 출간한 ‘펭귄의 여름’은 전작 ‘물속을 나는 새’에 이어 그간 겪은 에피소드와 펭귄의 습성을 기록한 연구일지다. '펭귄의 여름'이란 이름은 남극에서는 여름인 12~2월 시기에 이 박사가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이유로 붙여진 제목이다. 

이렇듯 수년간 남극을 탐험해온 그에게 펭귄은 어떤 존재일까. 펭귄 이야기를 할 때마다 행복한 표정으로 서글서글하게 웃는 이 박사는 펭귄을 "성실한 동물"이라고 소개했다. 매일 먹이를 구하러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남극을 횡단하는 아델리펭귄, 젠투펭귄, 황제펭귄의 이야기다. 

이 박사는 “펭귄들이 둥지를 만들려면 눈이 녹아서 땅이 드러난 공간이 필요하다. 보통 센 바람에 바위와 흙이 드러난 지역에 돌을 모아 둥지를 짓는데 그런 곳은 먹이를 구할 바다와 멀기 일쑤”라며 “그래서 펭귄들은 매일 척박한 남극 대륙을 횡단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보고 있으면 참 위대한 삶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박사가 연구 개체를 선택할 땐 ‘근면성실성’이 기준이다. 연구원들이 장기적으로 펭귄의 행태를 연구할 땐 개체 하나를 선정하고 그들이 커가는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무게를 재고 GPS 등 고가 장비를 부착해 활동영역을 측정할 개체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녀석이 밖에서 잡아먹히거나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가정적인 펭귄을 대표할 데이터를 얻을 수 없지 않은가.

극지연구소 연구팀에서 선별한 '겨울'(사진 가운데 왼쪽)이와 '여름'(사진 가운데 오른쪽)이.(이원영 박사 제공)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극지연구소 연구팀에서 선별한 '겨울'(사진 가운데 왼쪽)이와 '여름'(사진 가운데 오른쪽)이.(이원영 박사 제공)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러나 그런 개체를 얻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펭귄이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 연구원의 접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개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펭귄의 몸에 GPS와 비디오 카메라, 가속도계를 붙여 데이터를 얻는다. 펭귄 무게가 보통 4kg인데 반해 측정 장비는 100g 내외라 보통은 의식하지 않지만 떼어내려고 하든가 자꾸 뒤를 돌아보는 아이들도 있다”면서 “관측 장비가 관측에 영향을 주면 안 되고 또 기계가 고가라 분실되면 곤란하기도 해 다시 장비를 제거하곤 한다”고 말했다. 

펭귄 연구원들은 이렇게 엄선된 개체에 이름도 붙였다. 젠투펭귄 가족인 부모 개체 ‘세종’이와 ‘남극’이, 자식 개체 ‘여름’이와 ‘겨울’이다. 연구원들은 발육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매주 1회 무게를 재는 등 관찰을 지속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에서 축적한 펭귄의 수영 범위 데이터.(이원영 박사 제공)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극지연구소 연구팀에서 축적한 펭귄의 수영 범위 데이터.(이원영 박사 제공) 2019.6.23/그린포스트코리아

연구팀은 이런 행태 밀착 연구를 통해 남극의 생태 분포, 펭귄의 활동범위, 습성 등 실증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펭귄의 시체를 분석해 남극에도 아데노 바이러스 등 병원균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또 GPS 데이터를 정리해 펭귄이 크릴새우를 찾아 매일 9시간을 수영하고 40km 떨어진 곳까지 이동함을 알아냈다.

이 박사는 이런 연구를 통해 펭귄의 습성을 알아가는 것이 곧 남극 전체의 이해를 높이는 일이라고 봤다. 남극의 상위포식자인 펭귄의 서식환경을 살펴보면 이 일대 해양 생태계 전체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극 반도는 펭귄이 크릴새우 등을 먹고 배설한 유기물의 양에 따라 이끼 등 토양의 비옥도가 좌우된다. 기후 변화로 펭귄의 먹이가 줄거나 서식지가 줄어들면 남극 전체의 생태계도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이 박사에 따르면 실제로 펭귄의 여건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남극 기온이 5도 오르면 지면 온도는 10도 오르며 또 펭귄은 등이 까매 체감 온도는 더 올라간다. 이날 강연에선 펭귄이 더워서 입을 벌린 채 헥헥거리고 주변 얼음조각을 주워 먹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남극의 기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이렇게 펭귄이 힘들어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이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남극 해빙이 녹고 그로인해 펭귄의 먹이인 크릴 분포가 최근 30년 동안 급격히 감소했다. 펭귄은 앞으로도 온난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동물”이라며 “특히 펭귄이 서식하는 남극반도는 남극에서도 온난화가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지역이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에서 이 일대를 해양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전 세계적인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silentrock91@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