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계열사에 김치·와인을 강매한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을 고발했다. (태광그룹 페이스북 캡처) 2019.6.17/그린포스트코리아
공정위가 계열사에 김치·와인을 강매한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을 고발했다. (태광그룹 페이스북 캡처) 2019.6.1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이호진 태광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모든 계열사에게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의 김치와 와인을 강제로 사게 했다 들통났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를 고가에 구매하고 메르뱅으로부터 합리적 고려나 비교없이 대규모로 와인을 구매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1억88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이호진 전 회장·김기유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장과 태광산업·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호진 전 태광회장은 휘슬링락CC가 총수일가가 100% 소유한 티시스에 합병된 지난 2013년 5월 뒤에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자 김기유 경영기획실장에게 지시해 휘슬링락CC가 만든 김치를 계열사에 고가에 팔기로 계획했다. 김기유 경영기획실장은 각 계열사에 김치단가(19만원/10㎏)를 결정하고 구매수량까지 할당해 구매를 지시했다. 

㎏당 1만9000원인 휘슬링락CC의 김치 가격은 CJ 비비고김치(약 6500원/㎏), 대상 깔끔시원 김장김치(약 6100원/㎏) CJ 비비고총각김치(약 7600원/㎏)에 비해 현저히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43.4~56.2% 수준인 휘슬링락CC 김치의 영업이익률은 3~5% 정도인 지난 2016~2017년 식품업계 평균이익률을 11배 넘게 웃돌았다.

계열사들은 휘슬링락CC 김치를 직원 복리후생비·판촉비 같은 회사비용으로 구매해 직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태광산업, 대한화선 등 일부 계열사들은 김치구매 비용이 회사손익에 반영되지 않도록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2015년 7월부터는 계열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내에 직원전용 사이트 태광몰을 구축해 김치구매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을 썼다. 임직원들에게 김치구매에만 쓸 수 있는 포인트(19만점)를 제공한 뒤, 임직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소를 휘슬링락CC에 제공하고 휘슬링락CC가 김치를 모두 배송하면 김치포인트를 일괄 차감했다.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2014년 상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휘슬링락CC로부터 구매한 김치는 총 512.6톤으로 거래금액으로는 95억5000만원에 달했다.

아울러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은 지난 2014년 7월 ‘그룹 시너지’ 제고를 명목으로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확대를 도모한다며 계열사에 선물을 할 일이 생기면 메르뱅 와인을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그해 8월에는 임직원 명절 선물로 메르뱅 와인을 지급하라고 각 계열사에 지시했다. 메르뱅은 지난 2008년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출자해 설립한 와인 소매 유통업체다. 

게열사들은 각 사별 임직원 선물지급기준을 개정한 귀 복리후생비 등 회사비용으로 메르뱅 와인을 구매해 임직원 등에게 지급했다. 세광패션 등 일부 계열사는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태광 계열사들은 경영기획실 지시라는 점 때문에 와인 가격 등 거래조건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없이 메르뱅이 제시한 가격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계열사들은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총 46억원에 달하는 와인을 메르뱅으로부터 구매했다.

지난 2016년 9월 공정위 현장조사가 시작되자 휘슬링락CC는 경영기획실의 지시에 따라 김치생산을 멈췄고, 메르뱅 와인거래도 중단됐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2년 반 동안 김치와 와인 구매를 통해 총수일가에게 제공한 이익 규모가 최소 33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휘슬링락CC가 계열사들에게 김치를 고가에 팔아 챙긴 이익은 최소 25억5000만원이고, 대부분은 이호진 전 회장과 가족들에게 배당 등으로 지급됐다. 메르뱅이 와인 판매로 챙긴 이익 7억5000만원도 이호진 전 회장의 부인 등에게 현금배당과 급여 등의 형태로 제공됐다.

공정위는 티시스(휘슬링락CC)와 메르뱅이 모두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인 점을 고려하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우려가 상당했다고 봤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이 동일인을 정점으로 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하에서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데 동원된 사례를 적발해 이를 엄중 제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공정위는 앞으로도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위반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lias@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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