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화학물질 유출사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지속
석유화학산업, 친환경 설비·소재로 '미래신사업' 도약해야

1972년 6월 5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세계 최초의 환경회의인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열렸다. ‘오직 하나뿐인 지구’라는 슬로건을 건 이 회의에 참석한 113개국 대표는 환경 문제를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취지로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했다. 이를 기념해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인류가 오랜 세월 살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환경의 날을 맞이하면서 새삼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발표한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5.4%는 ‘환경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로 ‘대기질(미세먼지, 오존 등) 개선’(33.6%)을 꼽았다. 국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의 날을 맞아 국내 산업계를 이끄는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계의 ‘환경오염 사례’와 ‘친환경 경영 사례’ 등에 대해 총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바스프는 전 세계 30여개 기업들과 함께 해양 폐플라스틱 감소 및 제거를 위한 솔루션을 증진하는 글로벌 ‘플라스틱 쓰레기 제거 연합(AEPW)’을 결성했다. (사진 바스프 제공)
바스프는 전 세계 30여개 기업들과 함께 해양 폐플라스틱 감소 및 제거를 위한 솔루션을 증진하는 글로벌 ‘플라스틱 쓰레기 제거 연합(AEPW)’을 결성했다. (사진 바스프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송철호 기자] 차이나플라스(CHINAPLAS)가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33회를 맞이한 차이나플라스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 플라스틱 및 고무산업 박람회로 독일 ‘K-Fair’, 미국 ‘NPE’와 함께 세계 3대 플라스틱 전시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3500개가 넘는 국내외 업체가 참여했으며 특히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이 총출동해 기술력을 뽐냈다. 바스프, 다우 등 해외 기업을 비롯해 LG화학, 롯데케미칼, SK케미칼, 효성화학, 코오롱플라스틱 등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대거 참가했다.

세계 석유화학산업을 이끄는 이 기업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공통으로 내세운 것에는 2가지 핵심 기조가 있다. 바로 △플라스틱 재활용 및 순환 경제 △4차 산업 공장 및 기술이다. 석유화학 업계가 4차 산업 혁명을 통해 친환경 경영을 추구하자는 게 요지다.

특히 순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필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활용을 통한 환경보호 정책을 발표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난 잠재력과 풍부한 시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플라스틱이 지속 가능한 개발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지속가능성을 위한 신소재는 무엇이 있는지’, 이밖에 ‘재활용 기술’과 ‘친환경 포장’을 주제로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문에서 오래 전부터 두각을 보이는 기업은 '바스프'다. 바스프는 올해 1월 16일 전 세계 30여개 기업들과 함께 해양 폐플라스틱 감소 및 제거를 위한 솔루션을 증진하는 글로벌 ‘플라스틱 쓰레기 제거 연합(AEPW, Alliance to End Plastic Waste)’을 결성했다.

AEPW는 화학 및 플라스틱 제조, 소비재, 소매업, 폐기물 처리 등 글로벌 플라스틱 밸류 체인 내 기업들로 구성된 비영리 조직으로 정부, 학계, NGO 및 시민 사회와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를 제거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에 투자할 계획이다.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규모의 투자 조성을 시작으로 향후 5년간 15억달러(약 1조6000억원)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쓰레기 최소화를 위한 새로운 솔루션 개발은 물론,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순환경제에 기여하는 솔루션 또한 가속화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폐기물 집하시설과 재활용 인프라가 부족한 인구 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강을 통해 상당한 양의 폐기물이 바다로 유출된다는 점에 주목, AEPW는 인프라 개발, 혁신, 교육 및 참여, 환경정화 등 4가지 핵심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예정이다.

AEPW 창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마틴 브루더뮐러 바스프 그룹 회장 겸 CTO는 “플라스틱은 자원 절약 및 편리함, 안전, 건강 등의 이익을 제공하는 효율적인 소재지만 책임감 있는 사용과 폐기, 그리고 재활용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며 “화학산업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데 필요한 혁신적인 대규모 공정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바스프는 폐플라스틱을 화학공정에 재사용하는 ‘켐사이클링(ChemCycling)’ 프로젝트를 통해 제품 생산에 나서며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구현하고 있다. 켐사이클링은 열화학적 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으로부터 합성가스 및 오일 등의 원료를 추출하고 제품 생산공정에 필요한 일부 화석원료를 해당 재활용원료로 대체하는 공정이다.

또한 일명 ‘썩는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비싸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크지 않지만 바스프는 꾸준한 연구를 통해 상용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 부문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세계 4위의 입지를 지키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자동차, 석유에 이어 3위의 생산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상 친환경 플라스틱 기술은 답보 상태다. 상업성 때문에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을 위한 ‘걸음마’ 수준의 발걸음은 분명 시작됐다.

LG화학은 미래 준비를 위한 유망소재 사업화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사진 LG화학 제공)
LG화학은 미래 준비를 위한 유망소재 사업화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사진 LG화학 제공)

LG화학은 향후 농·수산물 관련 ‘그린바이오’, 바이오에탄올 등 친환경 에너지 등의 ‘화이트바이오’로 불리는 사업에 대규모 자금을 쏟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LG화학은 최근 15억6000만달러(약 1조7800억원) 규모의 글로벌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전 세계 화학기업 최초로 그린본드 발행에 성공한 것이다.

LG화학은 글로벌 그린본드의 성공적인 발행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받고 있다. 향후 친환경 미래 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더욱 고도화해 기업가치를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최근 친환경 정책을 바탕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핵심 부품인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어 LG화학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SK케미칼은 지난해 친환경수지 코폴리에스터 생산설비 확대를 위해 991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PLA(polylactic acid) 소재를 개발해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옥수수, 사탕수수 전분 등으로 만든 PLA는 폐기되면 물과 탄산가스로 완전분해 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타 소재에 비해 유연해 사출이 쉽다는 장점도 있다.

SK에너지도 친환경 사업장을 구축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500억원을 투자한다. 친환경 사업장을 구축하기 위해 최대 생산거점인 울산CLX에 법적 요구 수준 이상의 환경관리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 동력보일러 연료를 액화천연가스(LNG)로 100% 전환하기 위한 설비투자를 하게 된다.

이밖에 코오롱플라스틱은 프린팅 중 유해물질 발생을 타사대비 1/30 수준으로 낮춘 친환경 3D프린팅 PLA 소재와 기존 금속소재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한 다양한 복합소재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또한 자동차의 경량화와 금속소재를 대체하는 고강성 소재 및 별도의 도장공정이 필요 없는 친환경 무도장 소재, 연료계의 가스투과를 차단하는 소재 등에도 주력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용도의 배터리팩 하우징과 전기차 전용 충전부품·모듈, 고전압 커넥터 등 첨단 소재도 업계에 선보이고 있다.

확실히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라는 직접적인 문제에는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관련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익성을 이유로 상용화에 소극적이고 그나마도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PLA 플라스틱 관련 탁월한 신기술을 확보했지만 아직 상업적으로 성공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국내 최대 화학기업으로 평가받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관련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연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만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등의 부품사업 활성화와 자동차 경량화에 적합한 신소재 개발을 통해 간접적으로 친환경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친환경 사업장과 환경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다.

한화토탈 대산공장.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사업장의 환경관리 미흡으로 인한 유해화학물질 유출 등의 대형사고를 빈번히 발생시키고 있다. (사진 서산시청 제공)
한화토탈 대산공장.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사업장의 환경관리 미흡으로 인한 유해화학물질 유출 등의 대형사고를 빈번히 발생시키고 있다. (사진 서산시청 제공)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 정부가 해양 플라스틱을 지난해 대비 2022년까지 30%, 2030년까지 50% 저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플라스틱 재활용 정책만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재활용 소재를 개발하는데 지금처럼 가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파격적으로 플라스틱을 감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외국 기업 바스프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심지어 제품 상용화에 이르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도 캠페인 수준의 친환경 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게 사실이다.

자업자득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사업장의 환경관리 미흡으로 인한 유해화학물질 유출 등의 대형사고를 빈번히 발생시키는 데다 심지어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 측정 기록을 조작한 혐의까지 밝혀지고 있다.

이제 인류는 ‘경제가치’ 이상으로 ‘환경가치’가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체가 환경에 대한 뼈를 깎는 각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지구 환경 시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song@greenpost.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