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한빛 1호기 사태 '원안위' 책임이 더 커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한국은 원전을 가동할 자격이 없는 나라에요.”

30년 넘게 원자력계에서 일해 온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전KPS에 입사해 원자력계에 발을 들인 뒤 캐나다 원자력공사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서 원전설계 기술자로 일했다. 월성 2~4호기 설계에 참여하는 등 한국 원전 역사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지금은 원자력계에 미운털이 박혔지만, 이 대표도 한때는 원전 안전론자였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원전을 안전하게 가동하면 괜찮다는 관점을 유지해 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한국 원전 가동 자체에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서창완 기자) 2019.6.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서창완 기자) 2019.6.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안전을 내팽개친 채 산업 유지를 위한 로비를 일삼고, 규제 조직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관료화해 판단 능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벌어진 영광 한빛 1호기 출력 제한치 초과 사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간 나오토 총리가 한국에 와서 일본 원전사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안전 규제 조직의 관료화라고 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원안위인데, 우리 역시 관료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이번 한빛 1호기 사태 때도 즉각 개입해서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데 12시간이나 정지를 안 하고 있었잖아요. 원안위 안전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창피한 일입니다.”

이 대표는 한빛 1호기 사태와 관련해 원안위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한수원은 원전을 운영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만큼 책임지고 안전조치를 해야했던 기관은 원안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권한이 있는 원안위 행정 사무처 관료가 판단 능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무엇보다 원안위는 원전을 가동중지 했을 때 손해를 계산하는 등 정무적 판단이 아니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원안위 사무처 공무원들은 규제 권한은 있지만 안전에 대한 판단 능력이 없습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판단 능력은 있지만 규제 권한이 없죠. 이번 한빛 1호기 사태처럼 문제가 생기면 원안위는 행정절차에 따라 킨스 조사전문가들을 현장에 내려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중대사고가 나면 원자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이 방식으로 될까요?”

‘한국 원전이 가장 안전하다’는 원자력계의 자신감에도 우려를 표시했다. 이 대표는 누구보다 기술력을 자신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나 그 이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의 원전부지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 110만톤 문제나 원전 폭발 33년이 지났는데도 발전소 반경 30㎞ 이내 출입이 금지돼 있는 것 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류가 만든 모든 창조물은 고장나고 사고나게 돼 있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하니까요. 원전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장은 너무 피상적이에요. 다수호기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처럼 결론에 껴맞추는 안전 대책에 몇천억을 투입했어요. 정작 현장에 적용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원전 산업생태계가 걱정된다면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이 대표는 원자력 산업 생태계가 생존할 방법으로 '개방'과 '상생'을 뽑았다. 현장과 동떨어진 원자력계 내부의 폐쇄적인 연구·개발(R&D)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2013년 원전 납품 비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등은 '원전 마피아'로 불린다. 당시 특정 학력·인맥의 원자력 엘리트들이 원자력계 주요 요직을 독식하며 패거리 문화를 구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남 영광군 한빛 원자력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전남 영광군 한빛 원자력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현장에서 원전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소업체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을 그는 추천했다. 그러면서 원전 핵심기술 인력들이 다른 산업계에 정착해 성공한 사례도 소개했다. 이 대표가 소개한 부산의 한 업체는 용접 이음매가 있는 배관을 원자력 안전등급으로 격상하는 R&D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원전설비를 위해 만들었지만 화력발전소 등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원전 계측 제어기기를 국산화해 놓고 납품처가 없어 애를 먹었던 한 업체는 현재 화력이나 플랜트 쪽에서 납품처를 발견했다.

이 대표는 원전 수출은 '허황된 꿈'이라고 말했다. 내수 기반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원자력 산업계가 수출로 성공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기기나 부품 납품 수출이나 인력을 교류하는 차원까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전 자체를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국제분쟁조정 능력이 있는 국가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수준이 아니라면 전력 공급을 위한 가격 조정 능력을 갖출 수 없어 30년 동안 운영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히려 원전 수출로 현장 기술력이 부족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로 1400메가와트급 4기가 건설되고 있어요. 영광원자력본부가 1000메가와트급 6기입니다. 비슷한 수준이에요. 한수원에서 영광원자력본부 직원 전체가 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력이나 수준 높은 인력들이 빠지니 허리가 비어버리는 거예요. 국내 대부분 원전이 노후화된 상황에서 인력도 빠지니 현장 안전부문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 대표는 원전 업계가 저항을 멈추고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우리만 원전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가 에너지전환 계획을 발표하면 산업체와 인력 전환을 위해 R&D 지원을 요청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했다.

또 강력한 내수시장이 끝난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련 기술, 안전 등 가동 원전의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10만년 넘게 관리해야 하는 원전이 장기적으로 보면 싼 전기가 아니라는 일침도 남겼다. 그는 점차 전기 가격을 인상하고,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략을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는 일입니다. 환경오염의 주범은 에너지와 물자의 과소비예요. 전기 가격을 올리면 에너지 과소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러자니 정치권은 타격받을 걸 걱정하게 돼요. 탈원전 반대를 정치 구호 삼는 세력을 조심해야 합니다. 현 정부 탈원전은 정치 슬로건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거든요. 세계 전력 시장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해요. 2050~60년이 되면 신재생에너지로 흐름이 넘어갈 겁니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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