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사장 “위험 부풀린 환경단체 강도 높은 대응” 발언 논란
원자력안전 전문가들 “한수원, 면피 일관하고 기본 상식도 없어”
환경단체 “체르노빌과 비슷한 양태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

지난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석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정재훈 사장 페이스북 캡처)
지난 22일 '2019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석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정재훈 사장 페이스북 캡처)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체르노빌 운운하며 한빛 1호기 사태의 위험을 부풀린 환경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서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공공기관장으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기사화까지 됐지만, 논란을 의식한 듯 현재 정 사장 페이스북에서는 해당 글을 찾아볼 수 없다.

22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정 사장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체르노빌 운운하며 한빛 1호기 사태의 위험을 부풀린 환경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지침 어겼으나 위험하지 않았으니 강력 대응?

정 사장은 전남 영광군 한빛 원자력발전소 1호기 출력 제한치 초과 사태에 대해 실무 간부의 초기 판단 및 대응 실수와 관련해서는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외 발언은 대체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정 사장은 ‘테스트’ 중이었던데다 바로 출력을 제로로 조치해 지침은 어겼으나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장의 에너지 공급 책임자로서 무책임하게 대응하지 않는다고도 발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같은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공공기관장이 해서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다. 고속버스 기사가 졸다가 중앙선 침범은 했는데 사고 안 났으니까 괜찮다고 아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원자력안전 전문가들 “면피 일관하고, 기본 상식도 없어”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정 사장의 발언은 같은 날 한수원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와 상황 인식을 같이한다. 한수원은 보도자료에서 “한빛 1호기는 제어봉 인출이 계속됐더라도 원자로 출력 25%에서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도록 설계돼 있어 더 이상의 출력증가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안전장치라는 건 극한의 상황까지 갈 경우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최후의 보루다. 그게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건 안전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소장 설명에 따르면 25% 출력 정지 기능이 있다고 해도 정지되는 데까지는 몇 초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실제 출력이 50~100%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출력 시작점이 낮을수록 올라가는 수치는 더 높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역시 출력이 25%까지 올라가면 자동정지된다는 한수원의 해명에 면피라고 일축했다. 한빛원전 사태야 1분 정도로 출력이 올라갔기 때문에 25%까지 올라갔더라도 괜찮았을 거라고 전제한 그는 1초 만에 올라갔다면 25% 자동정지가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했다.

탈핵시민행동은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한빛원전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3/그린포스트코리아
탈핵시민행동은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한빛원전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동정지를 하려면 신호가 컴퓨터로 간 뒤 계산해서 신호를 뿌려야 한다. 신호가 돌아오면 기계 장치가 트릭 브레이커를 열어 제어봉이 자동 떨어지는 원리다. 이 시간만 2~3초가 걸린다. 출력이 1초 단위로 증폭하는 상황이라면 자동정지가 사실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체르노빌과 한빛원전은 안전설비에 차이가 있었다는 한수원 해명도 반박했다. 한수원은 보도자료에서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 안전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차단한 상태에서 시험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출력폭주가 발생하여 사고로 이어졌다”고 한 바 있다.

7초 만에 출력이 1만%까지 오른 체르노빌에서도 수동정지 시도는 한빛원전보다 빨랐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체르노빌이 자동정지를 꺼 놓은 건 맞지만 수동정지는 했다. 오히려 제어봉이 들어가면서 물을 밀어내 중성자를 흡수 못해 출력이 크게 뛰어버린 나쁜 상황으로 간 것”이라며 “반면 정지해야 하는데 출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수동정지를 하지 않은 게 한빛원전인데 체르노빌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나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수원이 체르노빌보다 위험한 상황으로 안 갔다는 걸 설명하면 될 일이지, 정확한 상황은 숨기고 상투적인 걸로 면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단체 “체르노빌과 비슷한 양태 주목해야”

한빛원전 1호기 사태에 대해 꾸준히 비판 기자회견을 해오고 있는 환경단체들은 정 사장 발언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이상희 녹색당 탈핵특별위원장은 체르노빌과 한빛원전의 사고가 일어난 양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관리자의 미숙이나 조작에 대한 실수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복합사고의 가능성을 지적하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도 지적한 철판 부식, 격납건물의 공극 발생 등은 총체적인 관리 부재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자력계는 정보 접근도 원활하지 않다”면서 “공고한 카르텔에서 무조건 안전하다는 신화를 강조하는 그들의 말을 믿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기준 한빛 1호기와 2호기 격납건물에서는 각각 14곳, 18곳의 공극이 발견됐다. 원자로 격납건물은 원전 핵심설비인 원자로와 원자로 냉각재계통이 설치된 콘크리트 건물이다. 콘크리트 벽체와 내부 강철판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설 및 누출을 방지하는 다중방호벽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과장돼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장 문제에 책임을 지고 조사 받고 있는 기관인 한수원 사장이 엄정 대응하겠다는 발언은 굉장히 잘못됐다. 오히려 국민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일침했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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