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포럼 ‘한빛 1호기 긴급정지 사건’ 기자회견
한병섭 소장 “원전 안전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전남 영광군 한빛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출력 제어 사고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해명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전 가동 중단이 사고 발생 12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 이뤄진 건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실력 부족 때문이라는 아쉬움도 나왔다. 현재 규정에는 출력이 증가하는 상황에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도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전환포럼 주최로 21일 열린 ‘한빛 1호기 긴급정지 사건, 핵심문제점과 의문점’에서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우리 원전이 체르노빌처럼 1만%로 출력이 높아지지는 않겠지만, 원자로 자체가 폭발력을 억제하는 시스템이라 그에 준하는 상태로 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이 21일 서울 패스트파이브 시청점에서 열린 ‘한빛 1호기 긴급정지 사건, 핵심문제점과 의문점’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한 소장,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서창완 기자) 2019.5.21/그린포스트코리아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이 21일 서울 패스트파이브 시청점에서 열린 ‘한빛 1호기 긴급정지 사건, 핵심문제점과 의문점’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한 소장,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서창완 기자) 2019.5.21/그린포스트코리아

◇한수원 해명 부적절… 복합사고 개념 고려해야

한빛 1호기는 지난 10일 오전 10시 30분쯤 측정시험 시작 1분 만에 원자로 열 출력이 제한치인 5%를 훨씬 넘어 18%까지 올라갔다. 제어봉 제어능력 측정시험 중 벌어진 일로 전날 재가동 승인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생긴 일이다. 원칙상 원자로 열출력은 1시간에 최대 3%씩 올리게 돼 있는데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열이 발생한 셈이다.

‘제어봉’은 핵연료의 반응을 조절하는 막대형태의 부속품이다. 중성자를 흡수해 열출력을 낮아지게 하는데 제어봉을 원자로에 넣고 빼고 하면서 원자로 성능을 확인한다.

발전소 측은 이 일이 벌어진 지 12시간 가까이 지난 밤 10시가 넘어서야 1호기의 가동을 수동정지시켰다. 원안위는 이 과정에서 면허가 없는 사람이 제어봉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면서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특별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수원은 해명 자료를 내고 “한빛1호기는 지난 10일 10시30분 제어봉 인출을 시작해 원자로 출력이 18%까지 상승했으나, 10시32분에 제어봉을 삽입해 출력은 10시33분부터 1% 이하로 감소했다”면서 “11시2분부터는 계속 0%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빛1호기는 제어봉 인출이 계속됐더라도 원자로 출력 25%에서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도록 설계돼 더 이상의 출력 증가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체르노빌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해명도 이어졌다. 한수원 측은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 안전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차단한 상태에서 시험을 무리하게 강행하다 출력폭주가 발생해 사고로 이어졌다”며 “한빛1호기는 모든 안전설비가 정상상태를 유지했으므로 출력 폭주는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소장 설명에 따르면 제어봉을 뽑는다고 출력이 바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3초 정도 지연된 다음에 올라가게 된다. 출력이 25%인 상황에서 자동정지되더라도 실제 출력은 30~40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0.5초 사이에 출력이 몇 천 프로까지 뛰었다. 1만%까지 7~8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병섭 소장이 제어봉 측정시험 과정을 손 모양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9.5.21/그린포스트코리아
한병섭 소장이 제어봉 측정시험 과정을 손 모양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9.5.21/그린포스트코리아

한 소장은 “설계상으로는 제어봉을 다 뽑아도 400% 이상은 출력이 안 올라간다고 해놨지만, 운전원 고의든 테러든 실수로 다른 안전 계통이 미흡한 경우든 다양한 복합사고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며 “원전은 언제든지 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수로인 한빛원전의 경우 중수로인 체르노빌처럼 온도가 올라가면서 출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은 일어나기 힘들다. 온도가 상승하면 출력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중수로와 반대로 경수로 원전은 온도가 떨어졌을 경우 언제든 출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주장은 반쪽 입장만 소개한 셈이다.

한 소장은 “경수로 원전은 반대로 온도가 떨어지면 출력이 증가된다. 출력이 10%인데 100%를 꺼내면 온도가 떨어져 출력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핵공학자가 봤을 때 한수원 측의 답변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운전제한조건 규정 불명확… 사태 키워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제어봉 인출 과정에서 계산 실수였을 거라고 한 소장은 추측했다. 제어봉을 꺼낼 때 일어날 수 있는 출력 폭증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자로 중성자 특성상 출력이 높을 대는 출력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다. 태울 게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출력이 낮을 때는 반응이 일어날 재료가 많아 급속도로 출력이 증가하게 된다.

체르노빌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수원 원자로 운영 규정을 보면 ‘열출력이 정격 열출력의 5% 이하’ 일 때는 운전제한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 이번 사태는 운전제한조건 중 하나인 ‘제어봉 정렬한계’에 해당되지만, 열출력에 대한 규정밖에 없어 원자로가 12시간 가까이 중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 소장은 “열출력이 5% 미만에서 100%나 심지어 10000%까지 뛰어도 발전소를 정지하라는 내용이 안 들어있다. 5% 미만에서 5% 이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안전조치도 없다”면서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등을 보며 대비했어야 하는 규제기관이 제대로 된 대비를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 규정 자체가 열출력으로만 구성돼있는 점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열출력뿐 아니라 노심출력과 전기출력이 있다는 점이 반영되지 않아서다. 3가지 출력 중 하나라도 5%가 넘는다면 원자로 가동이 중단돼야 하지만 규정에만 따를 경우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권한을 갖고 있는 원안위 위원회와 사무처 관료가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 판단 능력이 없다”면서 “특별사법경찰을 파견해 무자격자가 조작했다는 점을 따지겠다는 데 이상한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seotive@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