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숲도숨' 프로젝트 기획자 정지윤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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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의 문화예술분야 운영진이자 '도숲도숨' 프로젝트를 기획한 정지윤 작가가 교육현장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사진=권오경기자)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어느새 자연은 무성한 초록빛이나 햇살 따위가 아닌 잿빛 구름과 플라스틱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됐다. 모든 면의 긍정적인 모습만 볼 것 같은 아이들마저 ‘환경오염으로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을 상상한다.

지구를 살릴 ‘명의’는 이 땅 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다. 특히 지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과 맺는 추억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동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속 주인공 '제제'는 라임 오렌지 나무와 함께 성장했다. 끝내 나무의 밑동이 잘려나갈 때, 제제의 마음속엔 연민과 아쉬움, 분노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어떠한 접점도, 아무런 추억도 공유하지 않는 현실속 아이들에겐 제제가 느낀 보호 의식은커녕 생태 감수성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다.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의 문화예술분야 운영진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정지윤씨는 바로 이러한 생태 감수성이야말로 환경보호의 첫걸음이라고 봤다. 이는 정 작가가 ‘도숲도숨’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숲도숨은 ‘도시의 숲을 찾아서 도시 안에서 지친 영혼에 숨을 넣어주자’의 줄임말로, 자연과의 교감을 우선시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도숲도숨' 프로젝트엔 자연이 더이상 '무명'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물건이나 동물에 이름을 붙이면서 애착과 존재 의미가 생겨나듯, 저마다의 애칭으로 자연을 불러준다면 이 역시 각자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생태 감수성 육성에 결정적 요인인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교육방식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경험과 생각이 다르듯 각자가 자연과 맺는 관계나 추억역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이 각자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면 '지구가 아파요' '플라스틱 쓰레기로 바다가 오염됐어요' 등의 교육은 진부해진다. 정 작가는 "아이들이 도시숲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우치려면 기존의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면서 “한창 자연 품에서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도시 속 미세먼지를 피하려 외출을 자제하고, 자연과 교감할 기회를 빼앗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태 감수성의 부재야 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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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하늘색으로 그려넣은 건물이 창문없는 아파트다. 옆에 있는 생수 페트병은 지구에 마지막 남은 대피소라고 한다. (사진=정지윤 작가)

생태 감수성을 기를 기회조차 빼앗긴 아이들을 대상으로 정 작가는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도숲도숨' 생태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현장에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작품이 많이 나왔다. 전지 6장 주위를 둘러앉은 28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잔혹했다. 바다엔 플라스틱이 범람했고, 숲은 검은색과 회색으로 뒤덮여있었다. 한편엔 장례식장과 무덤도 보였다. 이를 그려넣은 학생은 "환경오염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를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학생은 창문이 없는 아파트를 보여주면서 “미래엔 미세먼지 때문에 아파트에 창문이 없다”는 설명을 했다고 정 작가는 전했다.

대부분의 그림 속 자연은 ‘죽음’ ‘오염’ 혹은 ‘마지막’을 상징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한 학생은 덩그러니 걸려있는 사과 한 알을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학생은 생수 페트병을 전지 위에 놓고 지구에 마지막 남은 대피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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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장례식장과 무덤 옆에 사과 한 알이 힘겹게 열려있다.(사진=정지윤 작가)
아이들의 그림을 본 정 작가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연은 휴식과 여유의 공간으로 대변됐는데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미세먼지나 해양 플라스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면서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린 '산'은 이들의 낮은 생태 감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나무나 풀, 꽃 등보다 등산로를 둘러싼 울타리를 더욱 섬세하게 그렸다. 산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건 쉼터였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에 시작해 5월까지 이어지는 도숲도숨 프로그램은 환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이 같은 부정적 시각을 친숙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꾸고자 한다. 아이들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대지미술’(자연물에서 창작의 재료를 가져와 만드는 방식)을 통해 도화지가 아니라 땅에 창작물을 만들고, 물감이 아니라 돌이나 떨어진 나뭇가지를 채집하며 자연과 교감하게 된다.
 
정 작가는 "아이들이 오감을 통해 자연을 느꼈으면 좋겠다"면서 "생태체험은 아이들의 감수성에 ‘인식의 그물’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나야 이에 대한 감성과 보전의식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한 번의 교육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진 않는다. 우선 자연이 내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 그 존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많은 아이들이 경험을 기반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생태체험을 통해 차차 인식의 그물망을 넓혀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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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작가가 기획한 '도숲도숨' 프로젝트는 재단법인 숲과 나눔의 지원을 받았다.(사진=정지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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