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알바천국 CF 화면캡쳐]
[사진출처=알바천국 CF 화면캡쳐]

 

올해 초 방영된 ‘알바천국’의 TV광고는 ‘알바는 딱 알바답게’라는 메인 카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두 편으로 나뉘어 전파를 탄 이 광고의 첫 편은 알바를 고용한 사장의 입장이 인식의 출발점이다. ‘알바도 프로정신을 가지고/ 선수처럼 기계처럼/ 쉬지 말고 빈틈없이 완벽하게/ 계속해서 일만 하기를 바라는’ 고용주의 기대와 의욕이 빠르게 바뀌는 장면마다에 철철 넘친다.

광고 속 알바가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가 됐을 무렵, 이 기대가 망상임을, 망상이어야 함을 알리는 반전의 한 마디가 여주인공(전소미)의 완벽한 표정연기와 함께 화면을 메운다. “아니 그건 님 생각이고.” 이 광고가 설득력을 확보하는 건 바로 이 카피 때문이다. 알바니까 딱 그만큼만 일하면 되는 ‘상식’을 망각한 고용주의 ‘몰상식’을 이 카피는 한 방에 박살낸다. 입장에 따라 누군가에 거는 기대가 몰상식이 되기도 하고, 또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망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말부터 반년 가까이 스무 차례의 촛불집회를 통해 무능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때 우리는,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라진 세상이란, 과거 정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불의와 반칙, 썩은 관행들이 뿌리째 뽑히고 상식이 상식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나라를 갈망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정의나 기회균등, 상식 등의 가치는 진보진영의 푯대이니까. 아니,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이 박근혜 정부가 한 것과는 반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은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 적폐청산이라는 피 냄새 풍기는 이름을 붙일 것도 없이. 너무나 간단해서 크게 머리 쓸 일조차 없을 줄 알았던 새 정권의 개혁은 그러나 촛불민심으로부터 이제는 한참 이탈했다. 이쯤에서 알바천국의 카피가 작렬한다. “아니 그건 님 생각이고.”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양호’하다는 반론도 있다. 무엇이 얼마나 비교적 양호한 지 알 길이 없지만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인사’로 불리는 낙하산 인사의 사례만 보더라도 결코 전 정권들에 비해 양호하지가 않다. 오죽하면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10월 대변인 공식논평을 통해 “대통령이 공수부대 출신이라 그런지 낙하산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면서 “낙하산 인사가 미세먼지만큼 심각한 재난”이라고 개탄했을까. 물론 캠코더인사는 현재진행형이며, 연일 뉴스를 통해 낙하산 중계방송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은 절망을 넘어 수치심을 느낄 지경이다. 인사청문회를 우습게 아는 후보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지켜봐야 하는 것도 수치스럽고, 전세살이가 지겨워 26억원짜리 상가건물을 매입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노후준비’에서 국민들은 치욕을 느낀다. 우리가 촛불로 바꾼 세상은 무엇인가? 이쯤에서 알바천국의 광고카피 다시 작렬.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고? 아니 그건 님 생각이고.”

알바천국의 이 광고 시리즈 두 번째는 고용주의 시선에서 알바를 본다. “전 알바니까/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친구 오면 외출하고/ 안 보면 개판 치고...” 알바니까 대충 시간 때우고 시급이나 타 가면 된다는 생각이 ‘개판 치는’ 강력한 동인(動因)이다. 촛불혁명의 덕분으로 정권을 잡은 현 집권세력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과거 정권 보다 잘하면 된다는 생각, 즉 ‘비교우위’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새로운 정권에 요구한 것은 ‘절대성’이다. ‘낙하산 인사가 상대적으로 적다가 아니라 완전히 근절했다’는 선언과 실천이다. 인사검증에 실패했으면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람과 시스템을 바꾸는 뼈 깎는 각성이다. 하지만 이전 정권보다 나아졌다는 구차한 변명조차 이제는 쏙 들어갔을 정도로 정부여당의 정치행위는 ‘정당성(正當性)’에서 파산했다. 그럼에도 여당 대표가 '내년 총선 260석 확보에 20년 장기집권 구상'을 아주 편하게 얘기한다. 예의 광고카피 마지막으로 작렬. “아~니, 그~건, 니(~임)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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