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티-신의 불을 훔친 인류 최초의 핵실험

조너선 페터봄 지음 | 이상국 옮김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10일 출간 | 160쪽 | 과학이론
조너선 페터봄 지음·이상국 옮김·서해문집·2013년 12월 10일 출간·160쪽·과학이론

 

이 책의 한 단락: 핵발전소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며 세상을 밝혀주고 있다. 싸고 깨끗한 에너지, 뭔가 잘못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자유한국당, 조선일보가 원전 사수에 바쁜 모양새다. 한국당 ‘탈원전 블랙홀’은 미세먼지부터 강원도 산불까지 현 정부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탈원전 탓으로 흡수하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보도 내용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전기요금이 올라 가계 부담이 늘어날 것이며, 값 싸고 깨끗한 원전은 사실 다른 에너지원보다 안전하다’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원전 공포를 부추기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라는 핵공학과 학생들의 행보까지 치밀하게 다룬다. 맞다. 핵에너지는 안전하고 깨끗하다. 잘못되기 전까지.

◇원자핵 발견이 핵폭탄을 만들다

퀴리 부인으로 알려진 프랑스 화학자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는 19세기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다. 두 원소는 신기한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퀴리 부부는 이 에너지를 ‘방사능’이라 부른다. 

우라늄 같은 일부 원소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하다. 불안정은 안정을 꿈꾸기 마련. 우라늄 역시 안정적인 원소로 가기 위해 스스로 분열한다. 이를 핵분열이라고 하는데 이때 2억 전자볼트나 되는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우라늄 1kg 붕괴 시 발생하는 에너지는 고성능 폭약 트리니트로톨루엔(TNT) 2만톤 폭발과 맞먹는다. 핵분열 발견은 X-ray, 핵발전 등 핵에너지와 관련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원자핵을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리더퍼드가 핵을 “무한대의 에너지원”이라고 부른 이유는 소량으로 방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다. 

핵분열의 핵심은 연쇄반응이다. 하나의 원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면 주변 다른 원자도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이상적인 조건을 ‘임계치’라 한다. 원전가동시 ‘임계도달’은 연쇄반응 조건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원자폭탄은 '초임계치' 상태를 만들어 기하급수적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살상무기다. 이 책 ‘트리니티’는 핵분열 연쇄반응을 도미노에 비유하는데, 핵발전 임계치가 한 개의 도미노가 한 개의 도미노를 쓰러트리는 것이라면, 핵폭탄 초임계치는 한 개의 도미노가 두 개를, 두 개의 도미노가 4개를 쓰러트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한 나라에 원전이 있다는 건, 가공할 핵무기 제조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원자력계가 에너지 보안을 내세우며 정보 은폐를 공공연하게 하는 건 최초 핵분열 연구가 군사 무기 제조를 전제로 해서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미국의 ‘맨허튼 프로젝트’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땅속에 자던 핵에너지를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현재는 보안을 빌미 삼아 그들만의 뇌물산업으로 전락, ‘핵피아’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원자력 시대의 개막...뼈도 못추리는 위력

1945년 7월 17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영국과 미국이 공동연구한 이 비밀 프로젝트 임무에 투입된 인원은 13만명, 돈은 자그만치 20억달러다. 뉴멕시코 사막에서 진행한 최초의 핵실험의 암호명은 ‘트리니티’. 제2차 세계대전을 하루빨리 종식하고 싶던 미국은 B-29 폭격기 ‘에볼가 게이’에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 싣고 일본으로 향한다. 

수많은 후보지가 있었지만 1945년 8월 6일 이른 아침 원자폭탄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히로시마는 산업도시이자 통신중심이었고, 일본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엄청난 섬광과 폭발이 일어났다. 인근 온도가 4000도에 육박하고 사람들은 뼈도 남지 않고 그냥 녹았다. 이어 엄청난 열풍이 주변을 휩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사능을 가득 품은 검은 비가 쏟아졌다. 당시 목격자 밥 브럼바이 승무원은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이 정말 후회된다.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었다”고 ‘제2차세계대전서’에서 술회한다. 

원폭 후 히로시마 중심가 7㎞ 지역 내 모든 것들은 황폐해졌다. 예상대로 폭파했고, 기대했던 위력이었다. 히로시마에서만 군인 2만여명, 민간이 10만여명, 조선인 3만여 명 정도가 사망했다. 3일 후 미국은 나가사키에 한 발 더 투하했다. 

거액이 투입된 맨허튼 프로젝트는 과학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다시 외교와 전쟁의 영역으로 옮겨왔다. 그토록 많은 인력, 에너지, 자본을 투입해서 만든 폭탄을 과연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트리니티’ 저자 조너선 페터봄은 “연쇄반응은 시작됐다. 태울 것이 남은 이상 불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히로시마는 폭격 대상인 동시에 서구의 거대한 공학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장소였다. 

◇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몸은 붕괴된다
 
핵폭발 후 2주가 지난 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 반경 1.5km 내 사람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수수께끼와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어났다. ‘질병X’라 불린 병명은 피폭. 원인을 몰랐던 질병X는 방사선의 극심한 이온화 현상임이 곧 밝혀졌지만, 방사선 노출에 뾰족한 치료 방법은 지금도 없다. 세포를 뚫고 지나간 감마선의 영향으로 DNA가 붕괴되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몸은 변이를 일으킨다. 암은 돌연변이 세포다. 

1950년대 중반 두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돈이 있고 자원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떤 나라든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고, 이것은 인류 문명을 몇 번은 파괴할 정도의 위력이라는 것. 북한 비핵화에 전세계가 관심을 쏟는 이유는 후자가 크다. 불편한 평화는 MAD(상호확증파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지금, 원자폭탄의 역사를 다시 꺼내는 이유

핵발전소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며 세상을 밝히고 있다. 싸고 깨끗한 에너지는 사실 문명을 몇 번 파괴하고도 남는 힘을 품고 있다. 맨허튼 프로젝트의 유산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세상은 1945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위협이 상존한다. 노심용해, 낙진, 임계질량, 그라운드 제로는 인류의 불안을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다. 인류는 스스로를 몰살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자들에게 받았고, 각국이 행한 핵실험 흔적은 일정량의 방사성 물질을 사람들 몸에 남겼다.

원전은 핵분열을 이용하는 발전소다. 지금 현재도 땅과 물은 핵실험 폐기물과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누출된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까지 그 위험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보수 언론, 한국당, 핵산업계는 "값싸고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한다. 국민 안전은 정쟁이 돼서도, 이권이 돼서도 안 된다. 핵 역사는 아직 미완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쓰이고 있다. 비핵화는 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탈원전은 비핵화의 시작이다. 

◆ 신간소개

 

'내가 사랑하는 나무의 계절'은 꽃망울을 터트려 가장 먼저 봄을 알리고, 여름엔 무성한 잎을 드리우며,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맨 몸으로 추위와 맞서는 나무의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책이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다. 매우 느린 속도로 자라지만 가장 높이, 가장 크게 성장한다. 서정적인 글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나무의 사계절을 담아낸 이 그림책은 크리스 버터워스가 글을 쓰고, 샬럿 보크가 그렸다. 나무의 성장과 변화를 스스로 느끼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책.<달리·1만3000원>

 

 

'아름다움의 진화'는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 자연사로 30년 이상 수리남과 안데스산맥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연을 관찰한 리처드 프롬이 썼다. 이 책은 ‘성선택’이라는 다윈의 잊힌 이론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개념만 가지고는 결코 오롯이 설명해낼 수 없다. 저자는 도저히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의 방식이 제각기 진화해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동아시아·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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