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갑질’과 조 회장 별세까지
아시아나 박 회장 부실경영으로 매각

[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울상이다. 여름 성수기 대비로 바빠야 할 4월인데,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침울한 분위기다.

 

(대한항공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대한항공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부끄러운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지난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항공업계의 정점에 있는 오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업계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은 몇 년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2014년 12월 발생한 유명한 ‘땅콩회항’사건이 시작이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 준 승무원의 태도에 난동을 부리며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재벌 일가의 갑질과 안전불감증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2018년 3월에는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욕설을 하고 물을 뿌리는 일명 ‘물컵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그녀의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경비원, 가사도우미,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폭언과 욕설 등 ‘갑질’을 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에 불을 지폈다.

또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부정입학으로 인하대학교 졸업을 취소당했고 뺑소니와 폭행 의혹까지 받는 등 일가 전체가 곱지 않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조 회장 본인도 270억원을 배임‧횡령한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밀수입‧탈세 의혹도 한몫 했다. 지난 1년 동안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 계열사가 압수수색을 받은 횟수만 18회에 달한다.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 대한항공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150대 이상의 항공기를 운용하고, 120개 이상의 다양한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대한항공이 주도해 만들어진 항공사 동맹 스카이팀(SKYTEAM)은 19년만에 175개국에서 매일 1만4500편의 항공기를 운항하는 대형 단체가 됐다. 최대 800명까지 태울 수 있는 초대형 항공기 A380을 도입하는 등 사업 부문도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국민적 사랑을 받은 것은 단지 ‘잘 나가는’ 항공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항공은 대한민국의 국책항공사다. 국책항공사(Flag carrier)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제1의 항공사를 말한다. ‘우리의 날개’라는 짧은 슬로건 안에는 국책항공사로서의 자부심, 국민들의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 일가의 각종 사고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가 나라 이름에 먹칠을 했다”며 자기 일처럼 부끄러워했다. 심지어 “대한항공의 국적기 지위를 박탈하라”, “대한항공의 이름을 한진항공으로 바꿔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런 여론은 결국 조양호 회장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게 된 것이다. 대한항공 주주인 국민연금은 ‘오너리스크’를 초래한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직을 계속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 회장의 직접적인 사인(死因)은 폐질환이다. 지난해부터 폐섬유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스트레스로 병이 악화됐을 거라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조 회장이 떠난 후에도 한동안 대한항공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지만 지분 문제와 17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산이 부서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시급하다.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이 가진 가치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아시아나항공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제왕적 경영의 폐단,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발전과 1만여 임직원의 미래를 위해 매각을 결정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5일 긴급 이사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확정했다. 1988년 설립돼 31년 간 전 세계의 하늘을 날아다닌 아시아나항공이 주인의 손을 떠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쌍벽을 이루는 대한민국의 제2항공사다. 국내외 80개 이상의 노선을 운영하며 세계적인 위상을 구축하고 있었다. 항공사와 공항의 품질을 평가하는 영국의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최고의 항공사로 평가받은 대한민국 유일의 ‘5성급’ 항공사이기도 하다. 2010년에는 톱100 항공사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비스는 아시아나”라는 말이 돌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안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액은 6조2012억원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 매출액의 60%를 차지했다. 자산 규모 역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6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떠나면 금호그룹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막대한 리스크를 알면서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하게 된 것은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오래 전부터 모회사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실 경영으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결정타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에만 6조6000억원이 투입돼 ‘무리한 확장’이라는 빈축을 샀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금호고속,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의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박 전 회장은 온갖 ‘무리수’ 끝에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금호타이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논란을 일으킨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의 원인도 박 전 회장이 제공했다. 기존 기내식 공급업체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LSG)에 계약 연장을 하는 대신 16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1600억원은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었다. LSG가 이를 거절하자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공급업체를 변경했다. 

문제는 새롭게 선정된 업체의 규모가 터무니없이 작았다는 데 있다. 기내식을 싣지 못한 채 이륙하는 항공기가 속출했다. 승객들은 물론이고 안전요원인 승무원들조차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받지 못했다. 끝없는 납품 압박에 시달리던 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이 와중에 박 전 회장이 탑승한 항공기에는 기내식이 제공된 사실이 알려져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박 전 회장이 결국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런 가운데 경영난은 더욱 심화됐다. 지난달 22일 아시아나항공은 외부감사에서 감사범위제한 ‘한정’ 판정을 받았다. 아시아나항공의 당기순손실은 1958억원, 부채비율은 649%로 심각한 상태였다. 결국 박 전 회장은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달 10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채권단에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이 자구계획은 오너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3년 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겠다는 조건도 달렸다.

하지만 채권단은 “사실상 3년의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박 전 회장은 아직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못했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5일 긴급 이사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했다.

채권단은 박 전 회장을 완전 배제하고 확실한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인수자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제왕적 경영으로 너덜너덜해진 아시아나항공이, 다시 한 번 날개를 펴고 비상할 수 있을지 항공업계와 국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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