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뉴스'-디지털 저널리즘, 위기의 실체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박영흠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02월 07일 출간 | 148쪽  |  저널리즘
박영흠 지음·스리체어스·2019년 02월 07일 출간·148쪽·저널리즘

 

이 책의 한 단락: 좋은 언론을 키우려면 온 사회가 필요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입사한 지 이틀만에 수습기자가 받아든 업무 내용에 기업 이름들이 적혀 있다. 어리둥절한 수습에게 사수는 광고를 받는 업체와 광고를 끊은 이른 바 '괘씸한 업체'를 알려준다. 비판만 한다고 광고를 잘 받는 건 아니다. 완급조절이 관건이다. 전문용어(?)로 표현한다면 ‘상반기엔 좀 빨다가 하반기에 조져야’ 하는 게 업계 룰이다. ‘조질 거면 세게 조져야지 어설프게 조지면 광고 끊긴다’는 업계 지침을 저널리즘 정신보다 먼저 배운 수습기자. 사라지지 않는 언론계의 구습이다. 

#또 다른 기자는 분명 기자모집에 응시했는데 사수가 타사 기사의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방법을 알려준다. 방법은 간단하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하나를 클릭한다. 출력된 기사 중 맘에드 드는 것을 복사해 당사 프로그램에 붙여넣는다. 완전히 똑같으면 포털이 표절로 인식해 기사 수집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복붙’을 마치면 글을 조금 수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어뷰징’이라고 한다. 자극적일수록 트래픽이 많아지니 고인까지 능욕하며 조회수를 올린다. 연예인 노출이나, 공인의 흑역사는 어뷰징의 좋은 먹이감이다. 저널리즘 정신보다 복붙을 먼저 배운 수습기자. 트래픽에 따라 광고료를 챙기는 어뷰징은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신종 악습이다. 

기업으로서의 언론사가 어떻게 수익을 극대화 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쏟는 동안 저널리즘은 실종됐고, 공적 영역에서의 책무를 잊은 기자는 취재력 없는 기레기로 전락했다. 조중동처럼 유명 보수언론은 물론 알만한 진보언론까지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온라인팀을 신설해 어뷰징에 가담했거나 하고 있다. 네이버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3년간 퇴출 행보를 나섰지만, 기득권 매체에는 솜방망이 처벌만 하는 등 위원회가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포털이 전재료를 지급하는 최상위 제휴 단계인 콘텐츠제휴(CP)를 맺기 위해 언론사의 보도지침이 변경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뉴스의 품질과 저널리즘의 품격을 포기한 만큼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지금의 뉴스’ 저자 박영흠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뉴스는 상품의 형태로 유통된다. 뉴스는 기자들의 임금 노동을 통해 생산되고, 이용자들이 직접 유료로 구매하거나 광고주가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로 소비가 이뤄진다. 

뉴스가 처음부터 상품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저잣거리의 소식을 알려주던 보부상,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이 돈을 벌기 위해 뉴스를 전한 건 아니다. 저자는 초기 뉴스는 종교적 행위이자, 공동체를 위한 호혜였다고 설명한다. 

인쇄신문도 시작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수단이었지 상품은 아니었다. 당파지는 주로 후원금으로 운영됐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자 19세기 초 신문은 상업적 대중지로 변화를 꿰한다. 신문이 이윤창출 도구로 탈바꿈 한 배경에는 제조업의 폭발적 성장과 대중의 탄생이 있었다. 기업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소개할 수단이 필요했고, 기업의 요구를 충족신킨 것이 바로 신문이었다. 임금을 대가로 한 취재 노동 기자가 직업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신문은 당파지에서 부호들의 계급 선전물이 됐고, 독자들은 등을 돌린다. 20세기 초 미국 저널리즘은 생존을 위해 사주와 보도국을 분리하고 신문윤리강령을 만든다. 

◇저널리즘, 사회 계약을 맺다

윤리강령에 따라 미디어 소유주는 정치적 이익을 포기한 대신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고, 뉴스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아닌 공동체에 봉사하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자로 거듭난다. 기자는 주권자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공적 이슈에 대한 정보를 공동체에 제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권력을 감시·견제하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은 저널리즘과 시민사회가 맺은 암묵적 약속이며 이는 독재 정권에서 언론 탄압을 받은 한국사회도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다만 이러한 사회 계약이 미국에서는 독점적 시장과 언론사 소유주의 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이뤄졌다면 한국에서는 정치권력만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순치 언론을 만드는 사주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족했다. 때문에 국내의 언론 자유화는 "반만 성공한 셈"이라고 저자는 평가했다. 

현재 국내 언론도 건설사나 정치인이 소유한 경우가 많지만 발행인들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편집상의 의사 결정이 상업적 목적이나 계급적 이해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것 처럼 보여야 대중이 등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 디지털 저널리즘

디지털 기술 발달로 소비 플랫폼이 인터넷으로 옮겨가자 유력 매체들을 포함한 뉴스 미디어들은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며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16대 대선 당선에는 네티즌의 힘이 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여론환경에서 인터넷은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었고, 공적 가치나 시민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진짜 ‘민주적 장소’로 평가되기도 했다. 

새로운 공론장 역할을 했던 디지털 공간이 상업적 시장으로 역전하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불과 5년도 걸리지 않았다. 포털의 뉴스 제휴를 시작으로 언론사는 수익 창출을 위한 트래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공론장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이제 '누구나'가 아니라 '아무나' 뉴스를 생산한다. 이에 대한 역풍으로 포털에는 어뷰징을 넘어 가짜뉴스까지 판치고 있다. 오죽하면 팩트체크 전문 매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 책은 ‘지금의 뉴스’를 그대로 방치하면 민주주의의 한 축인 저널리즘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민 저널리즘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혁명을 이뤄낸 저력도 있다. 4차 산업의 길목에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저널리즘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궁극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 신간소개

 

◇'나무의 시간'  샤토 브리앙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따른다”라고 했다. 존 에블린은 “모든 물질 문화는 나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나무를 떼 놓고 말할 수 없다. 저자 김민식은 나무를 빌미로 톨스토이의 소설과 고흐의 그림,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던 느티나무 좌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60주년 기념 마차 속에서 권리장전을 끌어내는 이야기꾼이다. 이 책은 브랜드 에르메스가 사과나무로 가구를 만든 이유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나무를 심는 까닭,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놓인 테이블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선사한다.(브레드·1만5000원)

 

 

◇'재난을 뛰어넘다'  재난은 더 이상 자연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재난위험관리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재난을 자연현상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저자 박정혁은 20여년간 국제개발과 재난위험관리 분야의 전문가로 일을 해왔으며 지금도 현장에 종사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난위험관리의 경각심으로 불러일으키기 위해 구성됐다. 재난위험관리의 기본개념을 정리했으며 재난을 사회과학 시점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재난으로 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지는 외국의 경험과 사례를 소개하며 재난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이해는 재난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에게 필수요건이라 강조한다.(바른북스·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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