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정의당 지속가능한 생태에너지 본부장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도시공원일몰제에 반대하며 국공유지 우선매입을 요구하고 있는 이현정 정의당 비례대표(박소희 기자)/2019.03.17/그린포스트코리아
도시공원일몰제에 반대하며 국공유지 우선매입을 요구하고 있는 이현정 정의당 비례대표(박소희 기자)/2019.03.12/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현정 정의당 지속가능한 생태에너지 본부장이 마중을 나와 있다. 그를 따라 사무실을 지나쳐 회의실로 들어섰다. 오래된 정수기, 곳곳에 쌓여 있는 서류, 낡은 책상들. 세련된 맛이라곤 없는 수더분한 사무실 풍경이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 정의당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그의 얼굴에는 4.3 보궐선거를 치르며 울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창원에서 여영국 의원이 당선되며 정의당은 고(故) 노회찬 의원의 유고로 잃었던 한 석을 되찾았다. 축하한다는 말을 “너무 울어서 못생겨졌다”는 말로 갚는 이현정 본부장. 그가 물었다. "미세먼지, 기후변화, 진폐증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악순환

탄광촌 노동자들은 십수 년 탄가루를 마시다 진폐증을 앓았다. 노동자들의 폐를 제물 삼아 석탄을 캤다. 그렇게 캔 석탄을 태우면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산화탄소는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다.

지금의 경제성장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이뤄진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림자도 크다. 석탄 1톤을 태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3.5톤. 1800년에는 280ppmv였던 이산화탄소양은 산업화를 거치며 2000년 380ppmv로 증가했다.

‘탄소문명’이 내뿜은 온실가스에 지구는 1도가량 뜨거워졌다. 그 결과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그 결과 극지방과 유라시아 대륙 간 온도 차가 감소했다. 그 여파로 유라시아 대륙의 풍속 감소와 대기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 재난으로 선포된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은 대기 정체 영향이 크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화석에너지에 의해 야기된 환경문제라는 것.

 

지난달 13일 진행된 부산·울산·경주 지역 고준휘 핵폐기물 간담회 모습(이현정 본부장 제공)
지난달 13일 진행된 부산·울산·경주 지역 고준휘 핵폐기물 간담회 모습. (이현정 본부장 제공)

◇ 에너지 전환은 사회의 체질 개선..."천천히, 제대로"

인류가 화석연료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가장 처음 대체에너지로 내세운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처리 불능의 고준위 폐기물 등으로 핵발전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국내는 시작단계지만, 세계는 태양열·지열·풍력·조력 등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는 추세다. 이현정 본부장은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할 것인가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 직결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원을 바꾸는 일은 그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단순히 화석에너지에서 자연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형발전소 중심으로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이 독점 수급하는 시스템을 지역자립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에너지 생산 방식은 지역의 희생을 요구한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 대기 질은 최악이다. 원전 밀집 지역주민들은 갑상선 암에 시달리기도 한다. 먼 거리에서 전기를 수송하기 위해 설치하는 송전선로는 번번이 지역갈등을 일으킨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대표적이다.

재생에너지는 크게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 어떤 단위로 생산하느냐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이 본부장은 “태양광이나 풍력이 무조건 옳은가? 아니다. 산림을 훼손하며 들어서는 태양광이나 풍력은 바람직한 에너지원으로 볼 수 없다. 영양 풍력단지 등이 그렇다. 에너지원을 어디에 자리 잡느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이라면서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염려했다.

재생에너지가 바람직한 에너지원이 되려면 천천히 제대로, 그 지역이 수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선택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건에서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에너지 불평등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에너지 전환의 본질이다.  

지난 2월 23일 가진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 발족식. 이현정 본부장은 당내 생태에너지본부를 운영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 위원회 발족이라고 했다.(이현정 본부장 제공)
지난 2월 23일 가진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 발족식. 이현정 본부장은 당내 생태에너지본부를 운영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 위원회 발족이라고 했다.(이현정 본부장 제공)

◇ 무엇보다 시급한 건 도시숲 사수

그는 여섯살 때 전남 고흥에서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오고 난 뒤 천식을 앓았다. 당시 서울 대기는 지금보다 나빴는데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 진단이 “돈 많이 벌어서 공기 좋은 곳으로 이민 가는 수밖에 없다”였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좋았지만, 그의 몸은 도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아하는 도시를 제 몸이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어서다. 하지만 곧 천연 공기청정기인 도시숲이 사라질 위기다. 

도시숲은 미세먼지 저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도심과 도시숲에서 미세먼지 수치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도심에 비해 숲속 미세먼지는 25.6%, 초미세먼지는 40.9%로 낮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도심 녹지 조성이 ‘탈석탄’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도시공원 가운데 약 53%에 해당하는 504㎢ 면적이 전국에서 사라질 위기다. ‘도시공원일몰제’가 2020년 7월부터 시행돼서다.

생성된 먼지는 대기에 의해 순환해야 한다. 습지나 숲이 많으면 먼지가 흡착돼 재비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미세먼지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간을 위협한다.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은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긴 근대화의 업보다. 

"생태운동을 이상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순환하는 자연이 오히려 과학적"이라는 이현정 본부장.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를 한 그는 물과 토지이용 전문가다. 사실 전문가로 살려고 했던 그가 원내 목소리가 된 계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크다. MB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은 그를 책상에서 강으로 달려 나오게 했다. 

그는 '환경보다 생태'라는 말을 선호한다. 영어 environment(환경)의 environ은 '둘러싸다'는 의미다. 한자도 고리 '환(環)'을 쓴다. 모두 인간을 둘러싼 어떤 것을 말한다. 결국 인간을 중심에 놓는다. 생태는 관계에 주목한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라는 인식은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닌 관계로 보게 한다. 일방적인 관계는 깨지기 쉽다.

2018년 1월 말부터 당내 생태에너지본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탈핵 운동 현장에 있으랴, 도시공원 일몰제 반대 투쟁에 나서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정의당에서 일당 백을 하고 있는 그에게 소망이 있다면 당내 녹색파를 만드는 일. 당원을 대상으로 생태도시 특강도 준비중이다. 

그는 “생태에너지 본부장을 맡으며 가장 보람된 일은 당내 동물복지위원회 발족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내에서도 환경은 소수다. 정의당 내 녹색파 형성을 일단 올해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녹색 파장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얘기했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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