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이 우아하게'-도시에서 더 빛나는 초 절전 5암페어 생활기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사이토 겐이치로 지음 | 이소담 옮김 | 티티 | 2015년 08월 03일 출간 | 180쪽 | 환경문제
사이토 겐이치로 지음·이소담 옮김·티티·2015년 08월 03일 출간·180쪽·환경문제

 

이 책의 한 단락 : 반대만 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전기를 펑펑 쓰는 생활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수상이 원전을 재가동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꼽은 변명은 "국민 생활을 지킨다"였다. 밤을 밤으로 두지 않고,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을 용납하지 않는 생활을 즐기는 동안에는, 수상에게 "당신들이 원하니까 재가동하는 겁니다"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시험대에 서 있다. 후쿠시마에서 겪은 재해와 도쿄에서 들은 수상의 말 덕분에 나는 드디어 '누군가가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쳤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가는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밤이면 휘양찬란한 불빛으로 옷을 갈아입던 도시가 검은 상복을 입은 듯 캄캄했다. 도쿄도, 가나가와도, 지바도, 사이타마도 불을 끄고 수도권의 전력을 생산하던 후쿠시마를 걱정하는 듯 했다. 

그로부터 반년, 도시는 후쿠시마를 까맣게 잊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밤은 다시 화려해졌다. 일본 수상은 국민 생활을 위한다는 이유로 원전 재가동을 결정했다. 전기를 펑펑 쓰고 있으니 반대 할 명분이 없었다.  후쿠시마 현장을 취재했던 아사히신문 소속 기자 사이토 겐이치로는 수상의 결정을 듣던 날 원전 사고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 일본 기자가 절전을 결심한 까닭

사고 당시 "수습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던 도쿄전력 상무가 기자회견장을 뜨려고 했을 때 한 신문기자가 물었다. "후쿠시마에 희망은 있습니까?" 그때 상무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상무는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엉망이 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기자는 그때 직감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도쿄전력 간부조차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사고를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 비상사태는 계속된다.'

국민은 국가와 전력회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그들이 불리한 사실은 숨긴다는 것을 알았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삶의 터전과, 재산,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대도시는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전기를 펑펑 썼다. 무섭도록 무심한 욕망을 핑계로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결정했다. 

기자는 후쿠시마 사람들의 고통을 본 이상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초절전 5암페어(Å) 생활기 ‘전기 없이 우아하게’의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다. 

◇ 전기와 헤어져도 살 수 있다

전력회사나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사이토는 집에서 사용하는 전류 양을 5Å로 제한하기로 한다. 조건은 지치지 않게 무리하지 말 것. 일본의 주부전력, 도쿄전력 등 일부 전력회사는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전류 계약을 할 수 있다. Å를 낮추면 기본요금이 낮아지는데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5Å 계약은 전자레인지나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초절전형이다. 

2013년 12월 전기 사용량은 2킬로와트시(kWh). 1000와트(W)를 쓰는 에어컨을 110볼트(V) 전압에서 2시간 정도 사용한 수준이다. 여름은 선풍기나 돗자리로 생활하고, 겨울엔 단열 용품들과 조개탄 화로 등으로 난방했다. 집 안에는 전원을 꽂아두는 가전제품이 하나도 없다. 집을 비울 땐 아예 차단기를 내려도 될 정도다. 

세탁기는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처럼 쓴 건 아니다. 전력측정기를 꽂은 채로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탈수할 때 전력 소모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표준 설정이 아닌 수동 설정으로 탈수를 짧게 마친다. 

5Å 생활은 극한 체험을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제값을 주고 샀다. 선풍기, 전력측정기, 휴대용 냉장고 등이 그것이다. 전기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태양광 패널을 베란다에 설치했다. 그날은 스스로 '건강제1전력'(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지음) 발전소장으로 취임(?)한 날이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몸소 겪은 저자는 도시의 편리가 일부 지역의 희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되고 절전을 선택한다. 도쿄전력 상무의 눈물로 알 수 있듯이 인류는 핵을 감당할 능력이 사실 없다. 이토록 위험한 전기, 지금처럼 펑펑 써도 될까? 

◆ 신간소개

 

◇ '한국 요괴 도감' 고대의 기담부터 현대의 도시전설까지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요괴 세계를 풀어낸 책. 저자 고성배는 일본 퇴마 만화를 보며 ‘왜 우리나라의 괴물을 정리한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다가 직접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괴물들을 수집해 정리했다. 그렇게 출간한 독립출판물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으며 화제가 됐고, 이후 다양한 괴물·요괴 콘텐츠가 소개되는 데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한국 요괴 도감'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고문헌과 다양한 민담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괴물, 귀신, 사물, 신을 소개한 책이다. 각 괴물의 출몰 지역과 시기, 특징, 기록된 문헌을 통해 총 218종의 괴물을 소개한다. '한국 요괴 도감'을 통해 지금까지 봉인돼 있었던 신비한 괴물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위즈덤하우스·2만2000원)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도시를 잘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자기만의 공간, 미래에 대한 계획, 애정을 쏟을 대상, 경제적인 안정 등. 하지만 도시는 그 자체로 조건이다. 변화하는 환경이라는 조건이다. 잘 살고 싶은 마음과 환경이 꼭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도무지 괜찮지가 않다. 도시는 완벽한 휴양지가 아니다. 완벽하게 무의미하게 살 수 없다.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아스팔트에 발붙이고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이 책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의 첫 번째 에세이다.  곳곳에 부끄러움과 자아도취가 배어있는, 무엇보다 솔직한 글에는 욕망의 도시에 발붙이고도 균형을 잃지 않고, 시시한 어른으로 늙지 않으려 삶을 열심히 살아낸 흔적이 가득하다.(웨일북·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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